![1918년 제작된 미국의 자폭무인기 ‘케터링 버그’. [사진 제공 · 미 육군]](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5b/d2/66/c3/5bd266c311d5d2738de6.jpg)
1918년 제작된 미국의 자폭무인기 ‘케터링 버그’. [사진 제공 · 미 육군]
많은 이가 무인비행기가 프로펠러로 움직이는 작은 비행체라 윙윙대는 벌을 연상케 한다고 해 애칭으로 불리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식 명칭으로 굳어졌으리라 추론한다. 하지만 초기 드론은 프로펠러가 아니라 고정 날개가 달린 비행체였다. 프로펠러 회전익으로 나는 멀티콥 형태의 드론은 21세기가 돼야 등장한다.
170년 된 드론의 역사
![1941년 최초의 성공적 무인기 ‘여왕벌’의 비행을 참관한 윈스턴 처칠. [사진 제공 · 영국전쟁박물관]](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5b/d2/66/df/5bd266df20dfd2738de6.jpg)
1941년 최초의 성공적 무인기 ‘여왕벌’의 비행을 참관한 윈스턴 처칠. [사진 제공 · 영국전쟁박물관]
진정한 무인기 개발은 1903년 라이트형제가 비행기를 개발한 후 여기에 헤르츠의 무선통신기술을 접목한 시도를 통해 본격화한다. 특히 세르비아 출신 미국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1856~1943)가 무선보트와 무선자동차에 이어 무선비행기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 큰 기여를 했다. 현재 자율주행차 개발의 선두주자인 일론 머스크의 회사명이 테슬라인 것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테슬라의 무인기 구상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과 영국에서 구체화된다. 가장 유명한 것은 1918년 미국 발명가 찰스 케터링(1876~1958)이 제작한 ‘케터링 버그’로, 무선조종으로 폭탄을 싣고 120km가량을 날아가 자폭하는 소형 복엽기다. 당시엔 ‘공중 어뢰’로 불린 자폭무인기들은 순항미사일의 원조로도 꼽히지만 실전배치될 무렵 전쟁이 끝나는 바람에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1925년 영국에서 개발한 ‘라링스’(Larynx·링스 엔진을 장착한 장거리포의 약자)는 구축함에서 탄도미사일처럼 발사된 뒤 무선조종을 통해 목표물에 적중하도록 설계된 단엽기 형태의 무인기였다. 당시 그 어떤 비행기보다도 빠른 시속 321km까지 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현 탄도미사일에 더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역시 7대만 시험제작됐을 뿐 실전배치되지는 못했다.
이후 탄도미사일이 오늘날 형태에 가깝게 개발되면서 영국은 무인기 기술을 해군 군함의 방공포격 훈련용 무인표적기 개발에 적용한다. 그 첫 작품이 1932년 페어리(Fairey) 항공사의 복엽 정찰기 ‘페어리 Ⅲ’를 무선조종이 가능한 무인기로 개조한 ‘페어리 퀸’이었다. 페어리 퀸은 모두 3대가 제작됐는데 시험비행 과정에서 2대가 추락하면서 개발이 무산됐다.
수벌의 운명을 빼닮다
![1945년 드론 공장에서 프로펠러를 조립 중이던 메릴린 먼로. [사진 제공 · 미 육군]](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5b/d2/66/fc/5bd266fc1ca5d2738de6.jpg)
1945년 드론 공장에서 프로펠러를 조립 중이던 메릴린 먼로. [사진 제공 · 미 육군]
불나방은 하빌랜드의 항공기 가운데 가장 오랜 생명력을 자랑해 요즘도 연습용 비행기로 사랑받고 있다. 여왕벌 역시 ‘최초의 성공적 무인기’라는 평가를 받으며 470대나 생산됐다. 영국 해군은 이를 토대로 1935년 비행 중인 여왕벌을 쏴 맞히는 해상 훈련을 실시했다. 이를 참관한 사람 가운데 미국 해군 제독 윌리엄 해리슨 스탠들리(1872~1963)가 있었다. 그는 1936년 미국으로 돌아와 비슷한 무인기 개발 착수를 지시한다.
그 개발을 맡은 미 해군 항공국의 델마 파니 소령은 1936년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드론’이란 표현을 처음 사용한다. 영국 해군 여왕벌의 짝이 될 수벌이라는 의미에서 썼는지, 아니면 당시 드론이 일벌의 대명사처럼 쓰였다는 점에서 수많은 일벌의 어미인 여왕벌에 대한 경의의 의미로 썼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 첫 성과로 1938~ 39년 복엽기인 ‘커티스’와 ‘스티어맨’을 개조한 무인표적기가 미 해군 방공포격 훈련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훈련을 참관한 미 육군과 공군에서도 무인표적기 도입을 결정하면서 드론이란 용어도 확산되기 시작한다. 특히 영국 출신 영화배우 레지널드 데니(1891~1967)가 세운 ‘라디오플레인’은 1만5000대의 무인표적기를 미군에 공급했다. 1945년 라디오플레인 공장에서 부품 조립과 스프레이칠을 하던 여공을 모델로 한 전시 여성 동원 홍보사진이 촬영된다. 당시 모델로 발탁된 18세 여공 노마 진 도허티가 훗날의 메릴린 먼로다.
수벌은 오로지 여왕벌과 교미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래서 유전자도 절반만 지니고 있고, 일벌이 지닌 침도 없어 짝짓기가 끝난 뒤엔 용도 폐기된다. 그래서 수명이 3~4개월에 불과하다. 초기 드론 역시 방공포격의 움직이는 표적이 돼 산화하는 게 존재 이유였다. 사람을 태울 필요가 없었기에 무게가 절반 이하에 불과했고 무장할 필요도 없었다. 드론이 드론으로 불리게 된 진짜 이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