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커 프로젝트

한옥의 생명은 인간적 비례와 풍경의 변화에 있다

한옥으로 지은 느티나무 어린이집

  •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사진=조영철 기자 korea@donga.com

    입력2018-08-21 10:5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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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소 서울 성북구 흥천사길 29

    • 준공 2015년 2월

    • 설계 김용미

    • 수상 2015년 국토교통부 선정 ‘올해의 한옥상’

    “한옥은 밖에서보다는 안에서 봤을 때 더 예쁩니다. 같은 집 안에서 창마다 서로 다른 풍경을 마주할 수 있어서입니다. ㄱ자 구조의 한옥을 생각해보세요. 담벼락 하나로 안마당과 바깥마당이 구분되고, 또 뒷마당까지 3개의 서로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거기에 대문이라도 있으면 대문 밖 바깥 풍경까지 4개의 공간 층위를 한집에서 만끽할 수 있습니다. 그 구조가 ㄷ자가 되고 ㅁ자가 되면 풍경 층위가 또 달라집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 흥천사(興天寺) 대지에 세워진 ‘느티나무 어린이집’은 서울시 최초의 한옥어린이집이다. 흥천사가 땅을 내놓고 성북구에서 세운 구립어린이집인 이곳은 주변 사찰 건축과 조화를 이루고자 한옥 설계 공모를 했다. 이 공모에 당선된 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의 김용미 대표는 남산골한옥마을 서울남산국악당과 전남 해남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 설계로 두 차례나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최근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면세점 대지에 들어설 지하 1층, 지상 2층의 한옥호텔도 설계했다. 

    그런 김 대표가 강조한 한옥의 첫 번째 매력은 공간의 중층성이다. 그의 설명을 듣고 느티나무 어린이집을 둘러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설계도면상으론 지하 1층, 지상 2층의 3층 구조다. 하지만 멀리서 건축을 보면 기와지붕을 한 단층가옥 같다. 또 각층에 있으면 저마다 1층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그 풍광이 모두 다르다. 최대 6m 고저 차가 있는 경사지에 비스듬히 지어졌기 때문이다. 

    흥천사는 조선 태조의 두 번째 정비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인 정릉(貞陵)의 원찰로 지어졌다. 170칸이나 되는 큰 절이라 조계종의 본산 역할을 했지만 연산군 때 화재로 불탄 뒤 선조 때 현 자리로 옮겨지면서 신흥사(神興寺)로 개명됐고, 1865년 대원군이 중창하며 다시 흥천사가 됐다. 

    이 흥천사는 북한산자락 계곡에 위치한다. 그 사찰 주변으로 22가구가 무허가주택을 짓고 살던 언덕배기 땅에 느티나무 어린이집이 들어섰다. 그래서 정문은 1층에 있지만 흥천사 경내에서 진입하는 정문은 지하 1층에 자리하고 있다. 기와지붕 아래 위치한 2층에도 ㄷ자 형태의 툇마루와 마당이 있다. 그래서 각층이 단층 같은 느낌을 준다.



    인근 고층아파트에서 촬영한 느티나무 어린이집. 지하 1층에 우레탄이 깔린 앞마당, 지상 1층의 가운데 ㄷ자형 안마당, 지상 2층의 ㄱ자형 안마당을 확인할 수 있다.

    인근 고층아파트에서 촬영한 느티나무 어린이집. 지하 1층에 우레탄이 깔린 앞마당, 지상 1층의 가운데 ㄷ자형 안마당, 지상 2층의 ㄱ자형 안마당을 확인할 수 있다.

    지하 1층에서 지상 1층으로 올라가는 통로를 따라 설치된 기와담장.

    지하 1층에서 지상 1층으로 올라가는 통로를 따라 설치된 기와담장.

    느티나무 어린이집 정문. 왼편 계단으로 내려가면 흥천사 경내와 접한 지하 1층 정문이 나온다.

    느티나무 어린이집 정문. 왼편 계단으로 내려가면 흥천사 경내와 접한 지하 1층 정문이 나온다.

    지상 1층의 ㄷ자 구조 툇마루. 처마지붕 너머 파란 하늘이 보인다.

    지상 1층의 ㄷ자 구조 툇마루. 처마지붕 너머 파란 하늘이 보인다.

    층마다 마당이 있는 3층 한옥

    지하 1층의 앞마당. 왼편에 놀이터가 있고 오른편으로 연잎이 무성하다.

    지하 1층의 앞마당. 왼편에 놀이터가 있고 오른편으로 연잎이 무성하다.

    느티나무 어린이집 교실의 천장. 서까래와 대들보 구조 사이로 네모난 목조구조물이 눈길을 끈다. 천장형 에어컨과 실외기를 연결해주는 파이프, 각종 전선류, 스프링클러 등 소방장비를 갈무리하기 위해 김용미 대표가 고안한 부자재다.

    느티나무 어린이집 교실의 천장. 서까래와 대들보 구조 사이로 네모난 목조구조물이 눈길을 끈다. 천장형 에어컨과 실외기를 연결해주는 파이프, 각종 전선류, 스프링클러 등 소방장비를 갈무리하기 위해 김용미 대표가 고안한 부자재다.

    아이들 안전을 위해 난간이 설치된 목조계단.

    아이들 안전을 위해 난간이 설치된 목조계단.

    한옥의 좁고 긴 구조를 살린 복도.

    한옥의 좁고 긴 구조를 살린 복도.

    복도를 지나면 유리창문을 통해 추녀와 툇마루가 설치된 1층 안마루와 바깥 경치를 볼 수 있다.

    복도를 지나면 유리창문을 통해 추녀와 툇마루가 설치된 1층 안마루와 바깥 경치를 볼 수 있다.

    한옥의 낮은 창 아래 덧창을 덧대 햇살과 바깥 풍광을 실내로 더 끌어당겼다.

    한옥의 낮은 창 아래 덧창을 덧대 햇살과 바깥 풍광을 실내로 더 끌어당겼다.

    전통한옥은 목조기둥과 흙벽을 쌓은 뒤 그 위에 기와와 흙을 올려 그 무게로 지탱하는 구조다. 그래서 복층화가 어렵다. 설령 복층으로 지었다 해도 2층에 마당을 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어떻게 2층에 툇마루와 마당이 자리할 수 있을까. 지하 1층 전체와 지상 1층의 일부를 콘크리트철골구조로 지었기 때문이다. 각층 내부에서 보면 한옥 마당 구조지만 실상은 콘크리트 판상 위 옥상에 해당하는 공간에 ㄷ자 형태의 툇마루와 마당을 설치한 것이다. 

    따라서 이 어린이집은 100% 한옥 건축이 아니라 한옥식 설계가 50% 이상 가미된 ‘융·복합 한옥’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만 0~5세 어린이 90명과 보육교사 10명 등 100명의 인원이 머무르는 공간을 전통한옥 건축 방식으로 짓기엔 한계가 너무 많았다. 규모 7의 지진을 견딜 수 있는 내진설계,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 스프링클러, 단열재…. 특히 보육교사가 한눈에 아이들을 살필 수 있는 넓은 사각형의 교실이 요구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했다. 또한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관급공사의 예산에 맞추기 위한 ‘전략적 선택’의 산물이었다. 

    그렇다고 외관만 한옥일 뿐 실상은 양옥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한옥의 하드웨어보다 그 소프트웨어를 최대한 살리려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두에 한옥은 밖에서보다 안에서 볼 때 더 예뻐야 한다고 했는데, 이 어린이집이 그렇다. 

    층마다 외부와 연결되는 툇마루와 마당이 있어서만이 아니다. 한옥 구조의 낮은 창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더 낮췄고, 가능한 한 여러 곳에 창을 설치했다. 그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면 북한산자락의 녹음은 물론, 토마토와 화초가 자라는 저마다 다른 안마당 풍경이 펼쳐진다. 또 층마다 설치된 2개 출구 중 하나에 곡선을 그리며 굽이치는 야트막한 담장이 포근하면서도 정겨운 풍경을 빚어낸다.

    ‘인간적 비례’가 살아 있는 건축

    툇마루에 앉으면 한옥의 처마와 추녀 구조를 한눈에 익힐 수 있다.

    툇마루에 앉으면 한옥의 처마와 추녀 구조를 한눈에 익힐 수 있다.

    2층 마당의 처마.

    2층 마당의 처마.

    지상 1층 안마당과 지하 1층 안마당 사이 기와담장.

    지상 1층 안마당과 지하 1층 안마당 사이 기와담장.

    1층 처마 옆으로 보이는 누워 있는 부처 형상의 와불암.

    1층 처마 옆으로 보이는 누워 있는 부처 형상의 와불암.

    어린이집 앞마당 담장을 따라 심어진 연잎과 연꽃.

    어린이집 앞마당 담장을 따라 심어진 연잎과 연꽃.

    수령이 350년이나 된다는 흥천사 앞길의 느티나무와 그 이름을 따서 지은 어린이집의 초저녁 풍경. [박영채]

    수령이 350년이나 된다는 흥천사 앞길의 느티나무와 그 이름을 따서 지은 어린이집의 초저녁 풍경. [박영채]

    “한옥 아름다움의 정수는 비례의 아름다움에 있습니다. 주변 자연을 압도하며 잘난 척하는 모습이 없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겸손하면서도 인간적 규모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리기 때문에 오래 볼수록 친근하고 정겨운 풍경을 빚어내는 거죠. 문제는 현대에 이르러 그 휴먼 스케일이 과거에 비해 더 커졌다는 데 있습니다. 과거 한옥의 한 칸(기둥과 기둥 사이 거리)이 2.4~2.7m였다면 요즘 한 칸은 3m가 훌쩍 넘습니다. 그럼 거기에 맞춰 천장 높이나 부재 크기도 달라져야 비례미가 살아나는데, 너무 전통만 고집하는 탓에 기형적 형태가 될 때가 많거든요. 느티나무 어린이집이 100% 한옥이 아님에도 전통한옥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은 전통적 비례미를 현대적 휴먼 스케일에 적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도심 속 사찰이 된 흥천사 주변에는 고층아파트가 즐비하다. 그렇지만 흥천사 경내 깊숙한 곳에 자리한 느티나무 어린이집에선 그 고층아파트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바로 옆에 있는 ‘삼각선원’과 조화를 이루는 한옥 구조라 결코 튀지도 않는다. 그렇게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인간적 규모를 지키려는 노력은 이곳을 이용하는 어린이와 학부모가 가장 먼저 알아봤다. 

    “우리 어린이집은 스쿨버스를 운행하지 않아요.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사찰 경내까지 걸어와야 하는데 눈이나 비라도 오면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죠. 그런데 우리 부모님과 아이들은 오히려 이를 은근히 즐기는 분위기예요. 어린이집까지 산책하듯 걸어오면서 계절의 변화를 자연과 함께 느낄 수 있다면서요.” 

    정용기 느티나무 어린이집 원장의 설명이다. 이 어린이집의 이름은 흥천사 경내로 들어서기 직전에 서 있는 수령 350년의 느티나무(서울시 지정 보호수)에서 따왔다. 옛날 이 동네의 서낭당 구실을 했다는 이 나무에서부터 어린이집까지 족히 500m는 될 거리를 함께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부모와 아이들이 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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