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노동개혁’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기성세대가 고통을 분담하고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방안으로 임금피크제를 제시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청년 취업 증가?
임금피크제는 노동자가 특정 연령에 도달하면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를 가리키는 말.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면 회사를 일정 기간 이상 다닌 노동자의 급여가 후배보다 낮아지게 된다. 기업이 이를 통해 절감한 비용으로 신규 인력을 채용하면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이후에도 8월 12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올해 안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는 공공기관은 임금을 깎겠다”고 밝히는 등 임금피크제 시행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청년실업 문제의 심각성은 상당수 국민이 공유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실업률은 9.4%로, 1999년 7월(11.5%) 이래 가장 높다. 실제 상황은 이보다 더 나쁘다는 걸 보여주는 조사 결과도 많다. 통계청 자료의 경우 조사 대상이 아르바이트만 해도 취업자로 분류한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이를 보완해 ‘주당 18시간 미만 노동자’ 등을 ‘실질적 실업자’로 포함해 집계한 5월 서울시 청년(15~29세)의 ‘실질실업률’은 31.8%에 이른다. 3명 중 1명이 실업 상태인 셈이다.
문제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바로 청년 취업이 증가하느냐 하는 점이다. 재계는 ‘그렇다’는 의견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4월 국내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이를 통해 발생하는 재원으로 2016~2019년 18만2300여 개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유관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도 임금피크제 도입 시 기업 인건비 부담이 26조 원 절감돼, 29세 이하 정규직 31만 명을 신규 채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가 이에 대해 고개를 젓는다. 우리나라의 실질 정년을 감안하지 않은 연구라는 이유에서다. 경총과 한국경제연구원은 노동자가 60세까지 일하는 것을 전제로 임금피크제의 이익을 계산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동자 가운데 상당수는 정년 이전에 퇴직하는 게 현실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38세 퇴직, 45세 정년, 56세까지 일하면 도둑)라는 단어가 유행할 만큼 조기 퇴직이 확산된 결과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0년 펴낸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근로생애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가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평균 53세(남성 55세, 여성 51세)였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및 고령층 부가조사’에서도 우리나라 노동자가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 연령은 2014년 기준 49세(남성 52세, 여성 48세)에 불과했다. 40대 후반~50대 초반은 일반적인 임금피크제 설계에서 노동자 임금이 삭감 단계에 접어들기 전 연령이다.
“노사협의 사안에 왜 정부가 뛰어드나”
일각에서는 임금피크제의 적용을 받는 베이비붐세대 일자리는 주로 전통적 제조업에 해당하는 반면, 청년 신규 채용이 요구되는 일자리는 서비스업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아 두 세대의 일자리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히려 임금피크제의 장점은 사용자가 신규 인력을 채용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임금 부담이 적은 고령의 노동자를 계속 고용하도록 유인하는 데 있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한 교수는 “기업이 젊은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산전후 휴가, 자녀교육비, 주거보조금 등 각종 복지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노동자를 계속 쓰면 이런 비용 없이 양질의 노동력을 운용할 수 있지 않나. 그것이 임금피크제의 실제 효과”라고 밝혔다. 즉 중·장년세대가 청년세대를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는 게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 임금 삭감을 감수하도록 하는 것이 임금피크제라는 뜻이다. 단 정년 연장으로 중·장년세대의 경제 활동이 안정화되고, 그것이 소비를 늘려 경제가 활성화되면 결과적으로 청년 채용 증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은 각종 연구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의원이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로부터 받아 공개한 ‘공공기관 임금피크제에 따른 채용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은 기관의 채용률이 도입한 기관보다 오히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기업의 정년실태와 퇴직관리에 대한 연구’ 등에서도 정년 연장과 청년실업률 완화 사이에 직접적인 인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당초 박 대통령이 대통령선거 후보 시절 내놓은 공약집에도 임금피크제는 ‘고용 안정과 일자리 지키기’ 방안에 포함됐다.
그렇다면 왜 정부는 지금 임금피크제 도입과 청년실업 해소를 연결 짓는 것일까. 이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정년 연장에 앞서 인건비 부담을 낮추려는 재계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의심한다. 2013년 국회를 통과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은 모든 기업의 정년을 단계적으로 60세까지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법 제19조의2는 ‘정년을 연장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의 사업주와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를 말한다)은 그 사업 또는 사업장의 여건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상당수 기업은 아직 노동자들과 이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상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자 과반의 동의가 없으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을 돕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는 게 일각의 해석이다. 임금피크제에 ‘청년 채용 확대’라는 ‘대의’를 끌어들여 노동계를 압박하고 나섰다는 시각이다. 노동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도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하도록 하는 ‘임금피크제 도입 지침’(가이드라인) 제정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준 국회입법조사처 사회문화조사실 환경노동팀장(사회학 박사)은 “정부가 행정지침을 통해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것은 위헌 논란이 발생할 수 있어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김 팀장은 “임금피크제가 고령자의 고용 연장과 청년 신규 고용 창출을 동시에 달성할 마법의 열쇠는 아니며, 고용시장에 미칠 영향이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만큼 정부의 속도 도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제는 ‘안정적 일자리’다
박종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60세 정년 시행에 따른 후속 조치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할 사안”이라며 “정부가 당초 입법 취지와 무관한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적까지 덧붙여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근로자가 근로계약상 근로를 정상적으로 제공할 수 있고 65세, 70세 이상이 돼도 근무에 지장이 없다면 임금을 삭감당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심리학자 레이먼드 커텔은 사람의 지능을 지식을 빨리 획득하고 상황에 효율적으로 적용하는 능력인 ‘유동성 지능(fluid intelligence)’과 경험·교육·문화 등에서 축적하는 ‘결정성 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으로 나누고, 후자의 경우 노년이 돼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경험이 필요한 일자리에서 고령자의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눈여겨볼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상당수 ‘청년실업자’가 임금피크제 대상이 되는 ‘부모세대’에게 기대 취업을 준비하는 현실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팀이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과 사회계층이동 조사 연구’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사교육은 대입을 위한 준비 과정에 그치지 않는다. 상당수 학생이 대학 입학 후 취업을 위해 사교육에 매달리고 있다. 특히 최근 취업시장에서 서류전형 폐지 등 대학 서열보다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확대되면서, 사교육을 통한 취업 ‘스펙’ 쌓기는 더욱 경쟁적인 상황으로 변했다. 이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부모의 경제력이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부모 학력에 따라 자녀의 해외연수 가능성이 큰 차이를 보였다. 대졸자 부모의 자녀는 중졸자 부모를 둔 또래에 비해 해외연수를 갈 가능성이 5.59배 더 높았고, 고졸자 부모 자녀의 경우도 중졸자 부모의 자녀들보다 해외연수 경험이 2.48배 높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세대의 경제력이 후퇴하면 자녀의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청년세대를 ‘먹여살려야’ 하는 부모세대가 ‘불안 고용’, 이른바 ‘프레카리아트’의 늪에 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불안정하다는 뜻의 형용사(precarious)와 노동자계급을 의미하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결합한 이 조어는 2003년 이탈리아 노동절 집회 때 거리 낙서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프롤레타리아트가 노동조합을 통해 거의 종신에 가까운 고용과 사회보험을 보장받은 것과 달리, 오늘날 프레카리아트는 만성적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는 특징이 있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남성 경제활동인구의 26.6%가 비정규직 노동자다. 여성은 39.9%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비정규직 종사자는 2007년 570만 명에서 2014년 608만 명으로 늘었다.
국제노동기구(ILO) 등에서 일한 가이 스탠딩 영국 소아스대 개발학과 교수는 저서 ‘프레카리아트 : 새로운 위험한 계급’에서 ‘많은 나라에서 적어도 성인 인구 4분의 1이 프레카리아트에 속한다’고 추정했다. 우리나라는 2014년 현재 전체 고용인구의 32.4%가 비정규직으로, 이 비중이 더욱 높은 편이다. 이들은 한 번의 실수로도 삶의 안정성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분노(Anger), 아노미(Anomie), 걱정(Anxiety), 소외(Alienation) 등 4가지 A의 감정을 경험한다는 게 스탠딩 교수의 분석이다.
임금피크제 대신 노동시간피크제
기존 노동시장에서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나고 청년 취업의 문은 좁은 환경에서 청년들은 아이 낳기를 멈추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 출산율은 재생산율 아래로 떨어진 상태. 노인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청년은 가파르게 감소할 일만 남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05년 총인구의 71.8%에 해당했다. 그러나 2016년 73.2%를 고비로 감소세로 접어들어 2060년에는 49.7%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40.1%로 높아지고, 0~14세 유소년인구는 10.2%로 줄어든다. 이때 기성세대가 ‘청년한테 일자리 희망을 주기 위해’ 일자리를 양보하고 물러날 경우 청년층의 연금 부담액은 막대하게 커질 수밖에 없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 ‘퀴즈쇼’에는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 제품도 레고 블록 만들 듯 다루는 세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 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할리우드 액션 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300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맞아, 너도 피아노 치지 않아? 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세대에는 저 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라는 대목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이러한 좌절을 없애주려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고,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노동계에서는 공공부문과 대기업이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노동시간피크제’를 도입하는 것 등을 대안으로 내세운다. 정년을 앞둔 장년층의 노동시간을 줄이면 재취업을 위한 준비를 사전에 할 수 있고, 줄어든 임금만큼 청년 고용도 늘릴 수 있다는 논리다.
요즘 거리에는 ‘노동개혁으로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이라는 현수막이 휘날리고 있다. 과연 지금 진행되는 ‘노동개혁’이 마무리되면, 청년들은 질 좋은 일자리에서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