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싸우다 폭력에 물들다
처음부터 영화 제목이 궁금했다. 허트 로커(Hurt Locker), 직역하면 상처 가득한 사물함. 미군 속어로는 ‘남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남겨주는 어떤 것’이란 뜻이란다. ‘허트 로커’는 제목처럼 영화 중반부까지 참을 수 없는…
201004272010년 04월 20일교실이 변해야 교육이 변한다
‘뭐, 이렇게 정교하게 연출한 영화가 다 있지?’ 영화학자인 남편과 영화평론가인 내가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보는 방법이나 영화에 대한 감수성이 극과 극인 우리 부부가 이 영화의 촬영 기법에서만큼은 의견이 일치했다. 로랑 캉테 감독의…
201004132010년 04월 08일가슴 시린 멜로? 어설픈 치정극?
‘누구예요, 당신?’ 정체성 혼란에 관한 영화의 단골 클리셰는 ‘쌍둥이’ 혹은 ‘도플갱어’인 주인공을 내세우는 것이다. 그건 ‘올드보이’의 ‘넌 누구냐?’와는 또 다른 플롯의 꽈배기와 반전 속에서 인간 내면의 다중성도 즐길 수 있기…
201003302010년 03월 23일아랍인, 감옥에서 인생을 배우다
한 소년이 첫 번째 살인을 명령받았을 때는 부들부들 손을 떨었지만, 두 번째 살인 지령 때는 자신만의 지략으로 조직의 보스가 된다. 남들은 학교에서 인생을 배울 기간인 6년 동안 아랍인 말릭은 감옥에서 인생을 배운다. 자크 오디아르…
201003162010년 03월 10일“게이, 커밍아웃” 외친 용감한 우유 씨
Thanks Harvey! 미국 샌프란시스코 카스트로 거리에는 무지개색 국기(게이들의 심벌임. 여러 가지 색깔을 모두 포용한다는 뜻)들이 붙어 있는 가운데 ‘고마워, 하비’라는 표어가 유독 눈에 띈다. 하비 밀크. 이 미스터 우유 …
201003022010년 02월 24일고단한 노동자에게 온 ‘아기천사’
프랑스의 악동 감독, 프랑수아 오종은 죽었다. 배신, 질투, 동성애, 살인 등 인간의 독버섯 같은 욕망을 다뤘던 오종은 이제 없다. 오종의 신작 ‘리키’는 그가 맹렬히 비난하던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따뜻이 감싸며 스릴러와 판타지를 넘…
201002092010년 02월 04일깨물어주고 싶은 풋풋한 사랑
기이하게도 요즘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대세 중 하나는 남자들이 실연의 상처에 더 아파하고 목을 맨다는 것이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존 쿠색이나 ‘키핑 더 페이스’의 에드워드 노튼처럼, 톡톡 튀는 배경음악에 실연당한 남자…
201001262010년 01월 21일신나고 에지 있는 삶이란?
영국 작가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팀 버튼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을 때, 전 세계는 ‘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릿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었다. 팀 버튼의 판타지는 ‘인생은 한 상자의 초콜릿’ 같은 은유가 아니라, 정…
201001122010년 01월 06일빛보다 찬란한 소리의 성찬
13개의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은 영화가 있다. 만듦새는 소박하지만,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뭔가가 있는 영화.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거기에 빠져들다 보면 그 평범함 속에서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는 영화.크리스티아노 …
200912292009년 12월 23일달 채굴 기지에서 만난 클론
달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이 다 벗겨졌는데도 영화 ‘더 문(The Moon)’ 속의 달 기지는 신비롭다. 100분 내내 모든 장면에 배우 샘 록웰이 혼자 나와 자신의 탄생에 대한 비밀을 벗겨가는 미스터리한 구조인데도 영화는 흡인력 만…
200912152009년 12월 10일눈만 자극하는 ‘할리우드 오버 액션’
1998년 지구 멸망 시나리오가 가속화했을 때, 할리우드는 아주 신이 났다. ‘딥 임팩트’니 ‘아마겟돈’이니 하는 영화는 죄다 혜성 충돌을 상정하며 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으니까. 바로 그해 롤런드 에머리히 감독은 재난영화 대신…
200912012009년 11월 30일LA 뒷골목에 흐르는 영혼의 선율
뉴스는 살아남지만 페이퍼는 죽어가는 시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칼럼 소재를 찾아 동분서주하던 기자 스티브 로페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어느 날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얼굴에 커다란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바로 그날, 길거리의 특…
200911172009년 11월 13일이런 대통령을 원한다
대통령을 ‘각하’라 부르며 “차렷! 경례” 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 대통령, 우리의 대통령은 TV 드라마를 보고 라면을 먹고 부부싸움을 한다. 장진 감독의 신작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상상만 해도 즐거워지는 3명의 유쾌한 대통령…
200911032009년 10월 28일다시 찾아온 연한 연둣빛 사랑
영혼을 가진다는 것은 비밀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랑의 영역에서 사랑의 비밀이란,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이유’가 아니라 왜 하필 그 ‘시간’에 그 혹은 그녀를 만났는가 하는 것이다.허진호 감독의 다섯 번째 작품 제목인 …
200910202009년 10월 16일서사와 직설화법의 부담스러움
박진표 감독의 영화 세상에서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게 운명이고, 그게 사랑이다. 주인공들을 갈라놓는 것 혹은 시험하는 것은 대개 돌이킬 수도, 어떤 희망의 끈을 가질 수도 없는 엄혹한 질병이나 유괴다. 반면 허진호의 영화 세상에…
200909292009년 09월 23일국민 엄마 버전 ‘살인의 추억’
감독은 대사의 앞뒤 연기 지문에 그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라고 썼다. 그 지문을 읽은 배우는 기가 찼다. 대체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란 무엇일까’ 싶어서. 그러나 김혜자의 얼굴은 그 표정을 담아냈다. 갈대밭에서 이병우가 작곡…
200906092009년 06월 03일영화 품은 소년들의 영화 만들기
‘나이트메어’ 시리즈로 유명한 감독 웨스 크레이븐은 어린 시절 부모가 허락한 유일한 장르, 디즈니 영화를 보는 것으로 날을 지새웠다고 한다. 이 독실한 기독교 집안은 어린아이들에게 폭력이나 성이 난무하는 사악한 영화 따위는 엄금이라…
200905262009년 05월 20일살얼음판 위로 미끄러지는 일처일부제
어떤 남자는 아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영화 ‘블랙 아이스’(감독 페트리 코트위카)의 주인공 레오는 아내의 생일날 아내 사라에게 “기타 통 속의 콘돔 2개는 어디로 갔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콘돔을 풍선처럼…
200905122009년 05월 08일질기디질긴 애증의 뒷골목 가족사
빌어먹을. 폭력은 세습되고, 핏줄은 더럽고, 이 세상 어딘가는 시궁창일 뿐이다. 그는 스파이더맨이 아니다. 그렇다고 물가를 맴도는 악어가 될 수도 없다. 그가 사는 곳은 먼지 풀풀 날리는 도시의 뒷골목. 한 무더기의 돈다발을 찔끔찔…
200904212009년 04월 16일老부부가 그린 찬란한 봄의 슬픔
하나미(花見). 꽃구경(‘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의 원제목). 꽃. 꽃보다 남자. 일본어로 꽃은 하나. 이와이 순지의 영화 ‘하나와 앨리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하나비’. 하나비(花火)의 원뜻은 ‘불꽃놀이’. 고레다 히로카즈의…
200904072009년 04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