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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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흔들리는 북한 엘리트 사회

北 경제 엘리트 3人의 고백 “김정은, 결국 ‘이란의 길’ 걷게 될 것”

“김일성 일가 난공불락 성 아니다”…“핵·미사일 의존은 충분한 대가 받기 위한 장기 포석”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6-08-29 17: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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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기간 전해진 ‘주영(駐英)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망명’ 소식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영국 언론 ‘선데이 익스프레스’가 상세히 보도한 태 공사의 망명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첩보영화를 보는 것처럼 드라마틱했다. 태 공사의 망명 과정에 영국과 미국 정보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北 엘리트들의 ‘김정은 불신’

    ‘선데이 익스프레스’ 보도에 따르면 태 공사의 망명 동기는 ‘가족’ 때문으로 분석된다. 태 공사는 탈북을 결정하기 두 달 전쯤 영국 한 골프장에서 영국 정보기관 담당자들과 처음 만나 귀국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냈다. 부인 오혜선 씨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게다가 태 공사의 작은아들 금혁 군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입학을 앞둔 수재였다. 우리 국가정보원(국정원)도 국회에서 “최근 북한이 ‘25세 이상 외교관 자녀 귀국령’을 내렸는데 이것이 태 공사 가족이 망명한 이유”라고 밝혔다. 영국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란 아들이 유수 대학 진학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갑자기 북한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자 태 공사 부부는 평소 마음속으로만 갖고 있던 ‘탈북 희망’을 실행에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10년간 영국에서 활동한 태 공사가 가족을 지키려고 한국에 왔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필자는 3월 중국의 한 대북 사업가가 흥분 속에 전해준 소식이 떠올랐다. 북한 엘리트 인사들이 대놓고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다닌다는 얘기였다. 베이징 특파원 시절 여러 북한 인사를 만나 그들의 특성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이러한 발언은 필자에게도 놀라운 것이었다.

    대북 사업가 B씨는 중국과 러시아 등에서 대규모 사업을 하는 북한 인사들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인이다. 2월과 3월 B씨는 북한의 경제 분야 엘리트 인사 3명과 각각 따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들의 연령대는 40대와 50대로 모두 장기간 해외 파견 근무 경험이 있다는 공통점을 가졌고, 해외사업으로 북한 상류층에 해당하는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이들은 B씨와 개별 만남에서 먼저 김정은 체제에 불신을 드러냈다. “김씨 일가가 언제까지 가겠는가. 김일성 일가는 난공불락 성이 아니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우리도 사람이고 생각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김씨 일가를 추종하는 일반 인민과 다르다. 고위층에 있으면서 알 것 다 아는 인사는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들은 북한 체제에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로 해외 문물을 경험한 사람이 그만큼 많아진 점을 꼽았다. 아무리 충성심 강한 주민이라도 해외로 나오면 얼마든 접할 수 있는 인터넷과 위성방송 덕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실체를 알 수 있게 됐다는 것. 특히 북한 사업가들이 모여 있는 단둥과 베이징에서는 위성방송을 볼 수 있는 장비가 불티나게 팔린다. 해외로 나온 북한 인사들이 인터넷과 위성방송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되고, 이것이 입소문을 거쳐 북한 내부로 퍼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

    B씨와 만난 북한 인사들은 북한 미래와 관련해 이란과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이란은 2002년 8월 반정부단체가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의 존재를 폭로하면서 서방 국가들과 핵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이후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하고자 서방과 이란은 협상을 전개했다. 그리고 협상 13년 만인 지난해 7월 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란과 주요 6개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협상 타결에 성공했다. 이란이 핵 개발 프로그램을 더는 가동하지 않는 대신 이란에 내려진 각종 경제제재 조치를 해제하는 방식이었다.

    북측 인사들은 북한이 현재 핵, 미사일 같은 무력에 의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란처럼 핵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충분한 대가를 받아내기 위해서”라고 언급했다. 현 상태에서 그대로 주저앉으면 대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핵과 미사일을 완벽하게 보유해 몸값을 최대한 올리려 한다는 것. 굴종적인 모습이 아닌, 자신의 존엄을 지키면서 당당하게 체제 보장 약속과 지원을 받으려 한다는 뜻이다. 이들이 입을 모아 “김정은 정권의 최종 목표는 전쟁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현 단계에서 김정은 정권이 과거로 회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미 많은 북한 사람이 ‘돈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김정은이 강경 일변도 대외정책을 펼치는 데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놨다. 한 인사는 “북한처럼 작은 나라가 세계 강대국을 상대로 큰소리치며 당당하게 나가는 것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라는 반응을 보였고, 다른 인사는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젊은이가 자기 명을 재촉하고 있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섣부른 ‘북한 붕괴론’의 함정

    비록 해외에 있다 해도 평소 북한 엘리트들은 속내를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자신의 발언이 언젠가는 추적돼 일가가 모조리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에 나와 있는 북한 엘리트는 3명이 있을 때는 절대 속내를 얘기하지 않고 정말 믿을 만한 사람과 단둘이 있을 때만 관련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B씨는 이들에게 “가진 돈도 충분한데 북한에서 사는 게 답답하지 않느냐. 다른 나라로 망명해 살고 싶은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들은 “자신과 같은 기득권 세력은 생활이 안정돼 있어 굳이 망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서 “탈북 시 주변 지인들이 입을 엄청난 피해도 탈북을 막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북한 엘리트 계층 3명의 속내를 들은 이후 B씨는 이들보다 약간 낮은 급의 엘리트들에게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는지 넌지시 물어봤지만 일제히 손사래를 치며 답변을 거부했다고 한다. B씨는 아주 가까운 사이인 북한 지도층 인사가 자신과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목소리를 낮춰 조심스럽게 얘기한 내용에 소름과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북한 사람들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이처럼 솔직하게 김씨 일가를 비판한 경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는 것. B씨는 김정은 시대를 맞아 북한 내부 엘리트 계층에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렇게 가다간 북한에서 내란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태 공사의 망명과 관련해 청와대에서 북한 정보를 다뤘던 한 인사는 “정부가 밝히지는 않았지만, 현재 태 공사 외에도 북한 엘리트 여러 명이 이미 탈북한 상태”라고 전했다. 태 공사의 망명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는 수십 년간 되풀이되던 ‘북한 붕괴론’이 또다시 회자되고 있다.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 엘리트의 잇단 탈북은 분명히 함의하는 바가 크지만, 이를 북한 붕괴와 직결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자 북한을 더욱 자극해 남북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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