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59)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문건을 11월 28일 ‘세계일보’가 보도한 뒤, 정씨와 문건 작성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조응천(52)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 간 폭로전이 시간이 갈수록 가열되고 있다.
문건에 등장하는 정씨와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은 1998년 박 대통령이 재·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할 때부터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인물들이다. 조 전 비서관은 공직기강비서관으로서 권력의 워치도그(watch dog·감시견)였음을 강조했다. ‘정윤회 문건’에 대해 실제 작성자, 유출자, 문건의 신뢰성을 놓고 격한 진실 공방을 벌이는 현 상황은 초유의 ‘비서들의 난(亂)’이다. 어느 한쪽이 처절하게 사라져야 끝나는 치킨게임이 됐다. 3인방과 함께 박 대통령의 대통령선거(대선) 캠프에서 일한 새누리당 관계자 A씨는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정윤회 씨가 판단 미스를 한 게 아닌가 싶다. 조 전 비서관과 정면승부를 하자는 거 같은데, 조 전 비서관은 잃을 게 없다. 반대로 정씨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3인방’과 관계있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잃을 게 많다.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정씨는 ‘오랫동안 만난 적 없다’고 했는데, 조 전 비서관을 통해 4월 두 사람의 통화 사실이 알려지니 국민은 ‘뭔가 있구나’ 하고 믿지 않나. 이 시점에서 3인방과 정씨가 함께 만난 사진이라도 나온다면 게임은 끝이다. 위험하다.”
# 문건 작성자와 유출자
‘정윤회 문건’은 박관천 경정이 대통령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을 때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에는 강원 홍천에 은거 중인 정씨가 2013년 10월부터 매달 두 차례 상경해 3인방을 포함한 이른바 ‘십상시(十常侍)’를 만나 국정에 대해 듣고 의견을 제시한다고 쓰여 있다. 후한 말 영제 때 정권을 잡고 조정을 농락한 환관 10명을 지칭하는 십상시는 2012년 대선 당시 박 대통령 캠프에서 핵심 구실을 한 실무 그룹을 지칭하는 용어로 처음 회자됐다.
이와 관련해 파문의 핵심인 정씨는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11월 29, 30일 박 경정과 통화했는데 ‘사실대로 얘기해라’고 하니 자기(박 경정)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타이핑한 죄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주장했다. 실제 문서 작성자로 조 전 비서관을 지목한 것. 정씨는 또 박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 가까운 조 전 비서관이 청와대 3인방과 갈등을 겪자 자신을 ‘3인방의 수장’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했다. 조 전 비서관은 박 회장이 1994년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될 당시 담당 검사였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은 정씨에 대한 조사를 지시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문건 작성자는 박 경정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사퇴한다는 얘기가 나와 이상했다. (김) 실장이나 (홍경식 민정)수석이 시킨 것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내가 알아보라고 했고, 박 경정이 비교적 정확한 얘기를 보고했다.”
조 전 비서관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도 박 경정에 대해 “내가 가진 가장 날카로운 이빨”이라며 그의 능력을 높이 샀다. 문건은 박 경정이 주도해 생산했다는 주장인 만큼 정씨의 말과 엇갈린다.
문건 유출은 박 대통령도 ‘국기 문란’으로 규정한 사안인 만큼 이번 파문의 쟁점 가운데 하나다. 청와대는 박 경정을 유출 당사자로 의심해 검찰에 고소했고, 박 경정은 “문건 유출자가 아니다”라고 일관되게 주장하면서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박 경정은 “유출된 것이 아니라 청와대 근무 당시 도난당한 것”이라며 내부 문건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조 전 비서관 역시 “(2월에 청와대를 나간) 박 경정이 아닌 제3자가 범인으로 지목된 보고서가 5~6월 초 민정수석실에 올라갔다”며 “아마 민정수석실은 박 경정을 범인이라고 대통령에게 이미 보고한 것을 나중에 뒤집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청와대는 문건 유출 범인이 박 경정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검찰에 고소한 게 된다.
그러나 청와대는 박 경정을 유출자로 결론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3~4월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생산된 문서를 근거로 언론 보도가 나와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2월 박 경정이 여러 문서를 출력해 나간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박 경정이 동료 경찰관을 통해 청와대에서 생산한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청와대 문건이 유출된 배경은 뭘까. 정씨는 “이번 사건이 터지고 이재만, 안봉근 비서관이랑 통화했다. 안 비서관이 ‘갈등이 있었다. 근데 그건 별거 아니다’라고 얘기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경험 없는 사람들이 민정 쪽에 있었고, 그 사람들이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3인방과 갈등이 있는 건 좋은데, 갈등 해결을 정상적으로 해야 한다”며 조 전 비서관 쪽을 겨냥했다.
조 전 비서관 역시 안봉근 비서관 등 청와대 3인방과 같이 업무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소개하며 구체적인 인사 갈등을 털어놨다.
“지난해 10월 말쯤 청와대에 들어올 예정인 경찰관 1명에 대해 검증하다 ‘부담’ 판정을 내렸다. 그랬더니 안 비서관이 전화해 ‘책임질 수 있느냐’고 했고, ‘문제가 있다. 어쩔 수 없다’고 대답했다. 한 달 뒤쯤 민정수석실 소속 경찰관 10여 명을 한꺼번에 내보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후임들이 다 단수로 찍어서 내려온 점이었다.”
조 전 비서관은 단수인사 배후를 안봉근 비서관의 제2부속실로 추정했고, 단수인사안 역시 자신의 반대로 없던 일이 됐다고 한다. 결국 박 대통령 최측근인 3인방과 민정수석실 간 인사를 두고 마찰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실제 올 들어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과 백기승 전 대통령국정홍보비서관이 사퇴한 것에 대해서도 박지만 회장 측과 정씨 및 청와대 3인방 간 권력 다툼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씨를 주축으로 한 반(反)박지만 세력이 친(親)박지만 그룹을 견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조 전 비서관은 박 회장과 친분이 있고, 두 인사 역시 박지만 인맥으로 분류된 터여서 이런 분석이 나돈 것이다.
정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억울해한다. 국정 개입 의혹에 대해 “싸구려 음모론”이라고 일축한다. 더 나아가 “허위문건을 공식문건화한다는 건 음해 차원을 넘어 정권의 전복”이라고 단언했다. 청와대 역시 문건 사실 여부에 대해 “찌라시(증권가 정보지) 수준”이라며 정씨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 문건 내용의 신빙성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은 문건 신빙성에 대해 “6할 이상이라고 본다”고 했고, “공직자들의 비위 등을 감찰하는 ‘감시견’ 구실을 했는데 나쁜 놈이 됐다.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이라고 했다. 검찰은 12월 4일 이들이 만났다고 알려진 서울 강남의 중식당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 속도를 내고 있다. 결국 문건 유출과 회동 여부는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문제는 정씨와 청와대 3인방에 관한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 전 비서관이 밝힌 것처럼, 3인방은 대체로 공공기관장이나 청와대 인사와 관련해 세인 입방아에 올랐다. 여기에 박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이 후광으로 작용하면서 의혹이 배가된다는 게 전·현직 청와대 인사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선캠프 시절 핵심 인사로 활약한 B씨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 자신은 부채가 없다고 하지만, 3인방 등은 선거를 치르면서 자금, 인력, 정책 등 모든 분야에 대해 부채를 진 사람이 많다. 이 부채를 인사로 해소하려다 보니 주변에서 ‘다 해먹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거다. 당정(黨政)에서 요청하는 인사도 한두 명이 아니고…. 문제는 공적인 인사 시스템을 통해 세련되게 풀어나가야 하는데 그 부분을 잘 못한 거 같다. 그러니 조 전 비서관도 ‘너무하네’하면서 인사 문제를 들고 나와 폭로전을 하는 거 아니겠나. 내가 잘 아는 3인방은 박 대통령 당선의 ‘부채 해결사’일 뿐이지 자신들의 세력을 만들어 정치를 하려는 스타일은 아니다.”
여기에 청와대 입성 이후 박 대통령의 3인방에 대한 신임이 오히려 더 커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수백 명의 청와대 직원이 박 대통령을 받들고 있지만, 오히려 이들을 경계하면서 3인방에 의지하는 부분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이어지는 B씨의 설명.
“박 대통령은 개인적 경험 때문에 믿을 건 오직 자신을 오랫동안 따른 3인방이라고 생각한다. 안봉근 비서관은 정무적 판단과 순발력을, 정호성 비서관은 메시지 전달과 정책 기획 능력을, 이재만 비서관은 조직과 최신 트렌드 분석 등에서 이미 인정받았다. 대선 당시부터 박 대통령이 자동차로 이동할 때마다 조수석에 앉는 수행비서(선탑)가 있었는데, 청와대 입성 후 두 달 만에 안봉근 비서관으로 바꾸기도 했다. 정호성 비서관은 업무가 많아 일주일에 한 번 집에 들어간다고 하소연한다. 그만큼 이들에 대한 대통령의 신뢰가 각별하다. 그러니 3인방 얘기와 국회의원 시절부터 이들을 이끈 정윤회 씨 얘기가 끊이지 않는 거다. 그렇다고 해도 만약 이 사건이 수사 과정에서 별건 수사로 진행된다면 정권에 치명적이다.”
# ‘대선 부채’ 해결 인사
박 대통령 대선캠프 출신인 전직 청와대 고위인사 역시 ‘주간동아’와 전화 인터뷰에서 “문건 내용에 대해선 신뢰하지 않지만 박 대통령과 3인방의 인사 문제가 ‘정윤회 문건 유출 공방’의 핵심”이라고 분석한다.
“‘정윤회 문건’ 포맷(형식)은 공식문건인 것처럼 작성됐지만, 내용은 감찰보고서라기보다 동향 파악 문건으로 보인다. 친인척 관리는 민정수석실에서 당연히 하는 임무인데, 박지만 회장은 자신을 관리하는 청와대 업무에 불쾌해하며 3인방 수장인 정씨가 시켰다고 오해했을 수 있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한 거 아니겠나. 문건에는 이른바 3인방이 한 달에 2번 한강을 건너 모임을 했다고 쓰여 있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이미 3명에게 각자 역할을 수행하라고 당부했고, 이들 역시 오해받을까 싶어 3명이 동시에 모이지 않는다. 문건에서는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가 김기춘 비서실장을 추천했다고 했는데, 최 전 대표는 ‘그런 적 없다’고 하더라.
3인방이 인사에 관여했다는 주장은 보기에 따라 다르다.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가장 잘 아는 그들이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데, 실제 내가 청와대 있을 때도 그런 적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3인방 추천 인사가 부적합하다고 해서 뺀 적도 많다. 견제도 있었지만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라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계속 3인방이 의심받는 것은 결국 대통령 인사 스타일 때문 아니겠나. ‘수첩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적 시스템보다 개인의 경험과 선호도에 따라 인사를 하니 3인방 영향력이 크게 비춰지는 거 같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59)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문건을 11월 28일 ‘세계일보’가 보도한 뒤, 정씨와 문건 작성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조응천(52)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 간 폭로전이 시간이 갈수록 가열되고 있다.
문건에 등장하는 정씨와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은 1998년 박 대통령이 재·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할 때부터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인물들이다. 조 전 비서관은 공직기강비서관으로서 권력의 워치도그(watch dog·감시견)였음을 강조했다. ‘정윤회 문건’에 대해 실제 작성자, 유출자, 문건의 신뢰성을 놓고 격한 진실 공방을 벌이는 현 상황은 초유의 ‘비서들의 난(亂)’이다. 어느 한쪽이 처절하게 사라져야 끝나는 치킨게임이 됐다. 3인방과 함께 박 대통령의 대통령선거(대선) 캠프에서 일한 새누리당 관계자 A씨는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정윤회 씨가 판단 미스를 한 게 아닌가 싶다. 조 전 비서관과 정면승부를 하자는 거 같은데, 조 전 비서관은 잃을 게 없다. 반대로 정씨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3인방’과 관계있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잃을 게 많다.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정씨는 ‘오랫동안 만난 적 없다’고 했는데, 조 전 비서관을 통해 4월 두 사람의 통화 사실이 알려지니 국민은 ‘뭔가 있구나’ 하고 믿지 않나. 이 시점에서 3인방과 정씨가 함께 만난 사진이라도 나온다면 게임은 끝이다. 위험하다.”
# 문건 작성자와 유출자
‘정윤회 문건’은 박관천 경정이 대통령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을 때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에는 강원 홍천에 은거 중인 정씨가 2013년 10월부터 매달 두 차례 상경해 3인방을 포함한 이른바 ‘십상시(十常侍)’를 만나 국정에 대해 듣고 의견을 제시한다고 쓰여 있다. 후한 말 영제 때 정권을 잡고 조정을 농락한 환관 10명을 지칭하는 십상시는 2012년 대선 당시 박 대통령 캠프에서 핵심 구실을 한 실무 그룹을 지칭하는 용어로 처음 회자됐다.
이와 관련해 파문의 핵심인 정씨는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11월 29, 30일 박 경정과 통화했는데 ‘사실대로 얘기해라’고 하니 자기(박 경정)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타이핑한 죄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주장했다. 실제 문서 작성자로 조 전 비서관을 지목한 것. 정씨는 또 박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 가까운 조 전 비서관이 청와대 3인방과 갈등을 겪자 자신을 ‘3인방의 수장’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했다. 조 전 비서관은 박 회장이 1994년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될 당시 담당 검사였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은 정씨에 대한 조사를 지시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문건 작성자는 박 경정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사퇴한다는 얘기가 나와 이상했다. (김) 실장이나 (홍경식 민정)수석이 시킨 것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내가 알아보라고 했고, 박 경정이 비교적 정확한 얘기를 보고했다.”
조 전 비서관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도 박 경정에 대해 “내가 가진 가장 날카로운 이빨”이라며 그의 능력을 높이 샀다. 문건은 박 경정이 주도해 생산했다는 주장인 만큼 정씨의 말과 엇갈린다.
문건 유출은 박 대통령도 ‘국기 문란’으로 규정한 사안인 만큼 이번 파문의 쟁점 가운데 하나다. 청와대는 박 경정을 유출 당사자로 의심해 검찰에 고소했고, 박 경정은 “문건 유출자가 아니다”라고 일관되게 주장하면서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박 경정은 “유출된 것이 아니라 청와대 근무 당시 도난당한 것”이라며 내부 문건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조 전 비서관 역시 “(2월에 청와대를 나간) 박 경정이 아닌 제3자가 범인으로 지목된 보고서가 5~6월 초 민정수석실에 올라갔다”며 “아마 민정수석실은 박 경정을 범인이라고 대통령에게 이미 보고한 것을 나중에 뒤집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청와대는 문건 유출 범인이 박 경정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검찰에 고소한 게 된다.
그러나 청와대는 박 경정을 유출자로 결론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3~4월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생산된 문서를 근거로 언론 보도가 나와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2월 박 경정이 여러 문서를 출력해 나간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박 경정이 동료 경찰관을 통해 청와대에서 생산한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청와대 문건이 유출된 배경은 뭘까. 정씨는 “이번 사건이 터지고 이재만, 안봉근 비서관이랑 통화했다. 안 비서관이 ‘갈등이 있었다. 근데 그건 별거 아니다’라고 얘기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경험 없는 사람들이 민정 쪽에 있었고, 그 사람들이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3인방과 갈등이 있는 건 좋은데, 갈등 해결을 정상적으로 해야 한다”며 조 전 비서관 쪽을 겨냥했다.
조 전 비서관 역시 안봉근 비서관 등 청와대 3인방과 같이 업무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소개하며 구체적인 인사 갈등을 털어놨다.
“지난해 10월 말쯤 청와대에 들어올 예정인 경찰관 1명에 대해 검증하다 ‘부담’ 판정을 내렸다. 그랬더니 안 비서관이 전화해 ‘책임질 수 있느냐’고 했고, ‘문제가 있다. 어쩔 수 없다’고 대답했다. 한 달 뒤쯤 민정수석실 소속 경찰관 10여 명을 한꺼번에 내보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후임들이 다 단수로 찍어서 내려온 점이었다.”
조 전 비서관은 단수인사 배후를 안봉근 비서관의 제2부속실로 추정했고, 단수인사안 역시 자신의 반대로 없던 일이 됐다고 한다. 결국 박 대통령 최측근인 3인방과 민정수석실 간 인사를 두고 마찰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실제 올 들어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과 백기승 전 대통령국정홍보비서관이 사퇴한 것에 대해서도 박지만 회장 측과 정씨 및 청와대 3인방 간 권력 다툼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씨를 주축으로 한 반(反)박지만 세력이 친(親)박지만 그룹을 견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조 전 비서관은 박 회장과 친분이 있고, 두 인사 역시 박지만 인맥으로 분류된 터여서 이런 분석이 나돈 것이다.
정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억울해한다. 국정 개입 의혹에 대해 “싸구려 음모론”이라고 일축한다. 더 나아가 “허위문건을 공식문건화한다는 건 음해 차원을 넘어 정권의 전복”이라고 단언했다. 청와대 역시 문건 사실 여부에 대해 “찌라시(증권가 정보지) 수준”이라며 정씨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 문건 내용의 신빙성
‘세계일보’가 보도한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 문건.
조 전 비서관이 밝힌 것처럼, 3인방은 대체로 공공기관장이나 청와대 인사와 관련해 세인 입방아에 올랐다. 여기에 박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이 후광으로 작용하면서 의혹이 배가된다는 게 전·현직 청와대 인사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선캠프 시절 핵심 인사로 활약한 B씨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 자신은 부채가 없다고 하지만, 3인방 등은 선거를 치르면서 자금, 인력, 정책 등 모든 분야에 대해 부채를 진 사람이 많다. 이 부채를 인사로 해소하려다 보니 주변에서 ‘다 해먹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거다. 당정(黨政)에서 요청하는 인사도 한두 명이 아니고…. 문제는 공적인 인사 시스템을 통해 세련되게 풀어나가야 하는데 그 부분을 잘 못한 거 같다. 그러니 조 전 비서관도 ‘너무하네’하면서 인사 문제를 들고 나와 폭로전을 하는 거 아니겠나. 내가 잘 아는 3인방은 박 대통령 당선의 ‘부채 해결사’일 뿐이지 자신들의 세력을 만들어 정치를 하려는 스타일은 아니다.”
여기에 청와대 입성 이후 박 대통령의 3인방에 대한 신임이 오히려 더 커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수백 명의 청와대 직원이 박 대통령을 받들고 있지만, 오히려 이들을 경계하면서 3인방에 의지하는 부분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이어지는 B씨의 설명.
“박 대통령은 개인적 경험 때문에 믿을 건 오직 자신을 오랫동안 따른 3인방이라고 생각한다. 안봉근 비서관은 정무적 판단과 순발력을, 정호성 비서관은 메시지 전달과 정책 기획 능력을, 이재만 비서관은 조직과 최신 트렌드 분석 등에서 이미 인정받았다. 대선 당시부터 박 대통령이 자동차로 이동할 때마다 조수석에 앉는 수행비서(선탑)가 있었는데, 청와대 입성 후 두 달 만에 안봉근 비서관으로 바꾸기도 했다. 정호성 비서관은 업무가 많아 일주일에 한 번 집에 들어간다고 하소연한다. 그만큼 이들에 대한 대통령의 신뢰가 각별하다. 그러니 3인방 얘기와 국회의원 시절부터 이들을 이끈 정윤회 씨 얘기가 끊이지 않는 거다. 그렇다고 해도 만약 이 사건이 수사 과정에서 별건 수사로 진행된다면 정권에 치명적이다.”
# ‘대선 부채’ 해결 인사
박 대통령 대선캠프 출신인 전직 청와대 고위인사 역시 ‘주간동아’와 전화 인터뷰에서 “문건 내용에 대해선 신뢰하지 않지만 박 대통령과 3인방의 인사 문제가 ‘정윤회 문건 유출 공방’의 핵심”이라고 분석한다.
“‘정윤회 문건’ 포맷(형식)은 공식문건인 것처럼 작성됐지만, 내용은 감찰보고서라기보다 동향 파악 문건으로 보인다. 친인척 관리는 민정수석실에서 당연히 하는 임무인데, 박지만 회장은 자신을 관리하는 청와대 업무에 불쾌해하며 3인방 수장인 정씨가 시켰다고 오해했을 수 있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한 거 아니겠나. 문건에는 이른바 3인방이 한 달에 2번 한강을 건너 모임을 했다고 쓰여 있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이미 3명에게 각자 역할을 수행하라고 당부했고, 이들 역시 오해받을까 싶어 3명이 동시에 모이지 않는다. 문건에서는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가 김기춘 비서실장을 추천했다고 했는데, 최 전 대표는 ‘그런 적 없다’고 하더라.
3인방이 인사에 관여했다는 주장은 보기에 따라 다르다.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가장 잘 아는 그들이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데, 실제 내가 청와대 있을 때도 그런 적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3인방 추천 인사가 부적합하다고 해서 뺀 적도 많다. 견제도 있었지만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라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계속 3인방이 의심받는 것은 결국 대통령 인사 스타일 때문 아니겠나. ‘수첩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적 시스템보다 개인의 경험과 선호도에 따라 인사를 하니 3인방 영향력이 크게 비춰지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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