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석 씨 소유 부동산에 관한 등기부등본.
검찰 수사는 크게 전 전 대통령의 가족과 지인들의 해외 도피 자금, 미술품 구매 자금, 은행 대여금고에서 잠자던 고가의 금품, 가입 보험상품, 주식투자 자금, 부동산 거래 등에 집중됐다. 실제 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74) 씨의 개인연금보험 30억 원을 압류하기도 했다. 또한 ‘전두환의 집사’ ‘전두환의 금고지기’ 등으로 알려진 전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 씨(62·삼원코리아 사장)의 수상한 부동산 거래와 관련 인사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땅 판 돈 전재용이 가져갔다”
7월 8일 ‘주간동아’는 이씨의 부동산과 관련해 검찰 관계자로부터 솔깃한 첩보를 입수했다. 이 관계자는 이씨 가족 가운데 한 명이 사석에서 한 이야기를 그대로 말해줬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2010년 말 밀린 재산세를 내려고 (이창석 씨가) 경기 오산시 땅을 한 부동산회사에 2200억 원 정도에 팔았는데, 전재용이 ‘비엘에셋과 삼원코리아 사업자금’으로 사용한다며 모두 가져갔다. 우리 가족 명의로 부동산이 있었지만 우리와는 전혀 관련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세금조차 내지 못할 만큼 어렵게 살고 있다.”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1996년 전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죄에 대해 추징된 2205억 원 가운데 미납금 1672억2651만 원을 한 번에 해결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씨 가족이 소유한 2200억 원 땅이 실제 자신들과 전혀 관계없고 전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재용(49) 씨가 그것을 모두 가져갔다면 이는 ‘전두환 비자금’으로 구매한 땅이라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주간동아’는 이 첩보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먼저 이씨와 그 가족이 경기 오산시에 소유한 모든 부동산을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등기부등본 60통(폐쇄 등기부등본 포함)을 분석했으며, 그 부동산이 실제 어떻게 이용됐는지를 알려고 이씨 소유 땅에 대한 부동산신탁원부 11통(350쪽 분량)을 훑어봤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2200억 원 오산 땅’의 존재와 매각 발언은 사실로 드러났다. 이씨는 2010년 12월 12일 경기 오산시 양산동 522-1, 523-1, 580번지 등 총 28필지(사진 참조) 44만621㎡(13만3521평)를 모두 부동산개발회사인 오산랜드마크프로젝트㈜(오산랜드)에 2275억 원을 받고 매각했다. 매각 등기는 28필지 모두 2011년 7월 8일 이뤄졌다. 이 땅의 존재는 이미 지난해 말 ‘한겨레’ 보도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거래 규모와 해당 지번, 재용 씨와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법인 등기부등본과 외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오산랜드는 2010년 자본금 50억 원으로 설립한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로, 목적사업은 오산시 양산동 580번지 일대 부동산 개발사업 시행이다. 대지 매입자금은 시공사인 대림산업의 지급보증으로 주로 제2금융권 등에서 융통했다. 1대 주주는 40대 여성인 유모 씨고, 2대 주주는 대림산업, 후순위 주주들은 돈을 빌려준 제2금융권 회사들이다.
이씨 소유 또 다른 땅 발견
오산랜드는 오산시 양산동과 지곶동에 3000가구 이상의 아파트 단지와 문화단지를 조성할 목적으로, 이씨 소유의 땅 28필지 외에 2011년 6월 16일 양산동 480-12, 산 19-116 등 총 9필지(사진 참조) 39만3318㎡(11만9187평)도 2408억7000만 원에 매입했다. 이 가운데 양산동 산 19-116, 522-2, 산 19-117번지 등 총 3필지 6만6409㎡(2만123평)는 2002년 7월까지 이씨 소유였지만 407억 원(추정치)에 ㈜태평양에 매각했다. 이와 관련해 7월 23일 ‘노컷뉴스’는 사정당국 관계자의 멘트를 인용해 “이 땅이 모두 이씨의 땅 한 필지로, 2400억 원에 팔렸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다.
또한 ‘주간동아’는 오산시 양산동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씨가 소유주인 또 다른 땅을 새롭게 발견했다. 오산시 양산동 631, 산 19-87, 산 19-90, 산 19-84, 산 19-60(지분 21%는 2010년 12월 12일 매각) 등 총 5필지 44만2718㎡(13만4157평)가 바로 그것. 이 땅은 오산랜드가 2011년 6월 매입한 땅에 인접해 있으며, 당시 평당 거래가인 202만 원을 적용하면 추정 지가(地價)가 2711억 원에 달한다. 2010년 12월 이씨가 오산랜드에 매각한 땅보다 더 비싸고 넓다.
‘주간동아’가 확인한 결과, 이 땅은 2006년 12월 이후 부동산신탁회사인 ㈜생보부동산신탁과 신탁계약을 맺었는데, 부동산 신탁원부에 대한 조사 결과, 재용 씨 개인회사인 비엘에셋이 수익권을 독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땅은 비엘에셋과 비엘에셋의 대주주인 삼원코리아(비엘에셋이 지분 60%를 보유한, 실질적인 재용 씨 회사)가 빌린 대출금의 담보(390억 원, 840억 원)로 제공되기도 했다.
결국 2010년 12월 매각한 땅(2275억 원)과 2002년 매각한 땅(407억 원), 2013년 현재 소유한 땅(2711억 원)을 합치면 모두 오산시에서만 5393억 원대 땅을 이미 팔아치웠거나 소유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총 94만9748㎡(28만7802평)에 달한다.
이씨가 팔았거나 소유한 오산시 땅은 대부분 1984년 아버지 이규동 씨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이규동 씨는 이 땅을 모두 전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인 1981년부터 83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그 기간 이규동 씨는 대한노인회 회장과 명예회장을 역임하고 국토통일원 고문으로 활동했다. 이규동 씨는 육군본부 경리감을 지낼 정도로 이재에 밝고 부동산 개발에 일찍이 눈을 뜬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곤 해도 평생 군인과 농협중앙회 이사장, 대한주정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사람이 신도시급 규모에 해당하는 부동산을 자기 돈만으로 모두 샀다고는 믿기 힘들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1984년 이규동 씨는 아들 이씨에게 이 땅을 모두 증여한 것으로 돼 있다. 워낙 싼 가격이었더라도 증여세가 만만치 않았을 터. 국세청이 이 부분만 잘 뒤져도 이 땅과 전 전 대통령의 관계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으리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해당 땅은 위로는 한신대 오산캠퍼스가 있고, 왼쪽으로는 오산-화성고속도로, 오른쪽으로는 경부고속도로(지하철 1호선, 경부선 철도 포함), 아래로는 봉담-동탄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요지다. 사전에 개발 계획을 알고 매입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한 대목이다.
땅 소유자 이창석, 실제 주인은 비엘에셋
전재용 씨 개인회사인 ㈜비엘에셋의 외부 감사보고서.
더욱이 강남세무서가 이씨 소유의 부동산에 대해 수익권 설정 또는 가압류를 한 시점은 그가 2275억 원대 땅을 팔고 등기를 완료한 5~6개월 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땅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이씨가 진짜 이 땅의 주인이고 매각 대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처지라면 다른 부동산의 재산세를 못 내 압류당하는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씨가 2000억 원대 현금을 주머니에 넣고도 재산세를 오랜 기간 체납했다면 ‘탈세범’이라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이씨의 5300억 원대 땅이 ‘전두환 비자금’일 것이라고 의심하는 이유는 더 있다. 이씨가 부동산 신탁한 2711억 원대 땅 5필지를 재용 씨가 자신의 부동산개발회사인 비엘에셋과 삼원코리아가 빌린 대출금의 담보로 제공하고 있는 것. 이들 5필지의 부동산 신탁원부를 보면, 비엘에셋은 2006년부터 이들 필지의 신탁 수익권을 독점한 후 이를 담보로 390억 원을 빌렸고 현재까지 갚지 않았다. 비엘에셋은 만일 이씨의 2711억 원대 땅이 개발되거나 팔리면 1순위 우선수익자로 권리를 행사하게 돼 있다. 다시 말해 이 땅은 등기부등본상 소유권만 ‘이창석’으로 돼 있을 뿐, 실제 주인은 비엘에셋이란 뜻이다.
비엘에셋은 2000년 자본금 5억 원으로 설립한 부동산개발회사로, 재용 씨가 지분 30%, 부인 박상아 씨가 10%, 두 자녀가 60%를 가진 재용 씨의 개인회사다. 2011년 순손실 47억 원, 2012년 58억 원을 각각 기록하는 등 주택건설업계에선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혔다. 올 3월 작성한 외부 감사보고서에 ‘2012년 말 현재 총부채가 총자산보다 161억7300만 원 더 많다. 회사의 존속 능력에 중대한 의문이 제기된다’고 밝혔을 정도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비엘에셋에 대한 외부 감사보고서 가운데 특수관계자 주요 거래 현황에 따르면, 이씨가 이런 부실기업에 2011년 81억 원, 2012년 80억 원을 빌려줬다는 사실이다. 비엘에셋 또한 존속 능력을 의심받는 상황에서도 2011년 삼원코리아에 10억 원을 빌려줬다. 심지어 이씨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조차 비엘에셋의 대출금 담보로 제공했다.이씨의 압구정 현대아파트 등기부등본에는 2009년 12월과 2010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40억 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다. 근저당권자는 비엘에셋의 주채권 금융기관인 B상호저축은행이었다.
비엘에셋은 지난해 9월 25일 오산시 양산동 5필지의 신탁원부 계약을 변경하면서 1순위 수익자, 2순위 수익자 모두 비엘에셋으로 돼 있던 기존 계약내용을 뒤집고, 1순위 수익자는 비엘에셋으로 그대로 유지하면서 2순위 수익자를 ㈜동천유타워(옛 대한물류센터)로 바꿔버린다. 즉, 2711억 원대 땅의 개발 또는 처분 이익의 상당 부분을 아무 관련도 없는 다른 기업에 넘긴 것. 동천유타워는 경기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899번지와 900번지에 복합 상가건물을 지으려고 세운 회사로, 당시 대표이사는 전씨의 ‘부동산업 대리인’으로 알려진 박모 씨다. 일설에는 오산시 양산동 일대를 모두 매입한 오산랜드의 실질적 주인이 박씨라는 설도 있지만 확인되진 않았다.
재용 씨 회사가 1230억 담보 설정
1990년 4월 5공비리와 관련해 2심 첫 공판에 참가한 이창석 씨. 당시 39세(왼쪽). 올해 7월 21일 아버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서울 연희동 자택을 방문한 전재용 씨가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받고 있다.
재용 씨와의 이런 친분 때문일까. 비엘에셋과 삼원코리아는 2008년 12월 22일부터 2012년 9월 25일까지 동천유타워가 한국자산신탁㈜에 신탁한 경기 용인시 동천동 2개 필지의 3순위 수익권을 확보했고, 이를 담보로 비엘에셋은 340억 원, 삼원코리아는 500억 원을 빌려 썼다. 2012년 9월 25일 이들 회사의 용인시 동천동 땅에 대한 3순위 수익권, 즉 채무 840억 원이 사라지는데, 이는 비엘에셋이 같은 날 동천유타워에게 이씨의 2711억 원대 5필지에 대한 2순위 수익권을 줬기 때문이다.
결국 비엘에셋은 이씨가 신탁한 5필지 2711억 원 땅의 신탁 수익권을 이용해 390억 원을 빌려 쓰고, 부채 840억 원을 가린 셈이 됐다. 이는 재용 씨가 이씨 소유의 오산시 양산동 땅을 마음대로 썼다는 증거이자, 이 땅의 진짜 주인이 재용 씨라고 추정할 수 있는 방증이다.
한편, ‘주간동아’는 이씨와 재용 씨, 박씨, 오산랜드, 비엘에셋, 삼원코리아, 늘푸른오스카빌 측에 취재 내용을 확인하려고 7월 23일 오전부터 25일 오전까지 계속 연락을 취했으나 일방적 취재 거부 또는 전화 수신 거부, 주소지 급거 이전 등으로 반론을 받는 데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