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팬이라면, 특히 히치콕의 스릴러물 같은 클래식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지나치지 못할 와인이 있다. 바로 킬리빙빙(Killibinbin)이라는 와인이다. 영화 포스터 같은 와인 레이블이 꽤나 독특해 왜 이런 레이블을 붙인 건지, 맛과 향도 레이블만큼이나 특이한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킬리빙빙은 호주 남부 랭혼 크리크(Langhorne Creek)에 자리 잡은 브러더스 인 암스(Brothers in Arms)가 만드는 와인이다. 랭혼 크리크는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산지 중 하나로, 애들레이드(Adelaide)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브러더스 인 암스는 5대째 내려오는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수령이 125년에 달하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시라즈 고목은 이들의 자랑거리이자 우수한 품질의 상징이기도 하다.
킬리빙빙은 호주 원주민 말로 ‘빛이 난다’는 뜻. 와인이 잔에서 반짝반짝 빛나기를 바라며 이 말을 와인 이름에 붙였다고 한다. 킬리빙빙은 현재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5대손 가이(Guy)와 리즈 애덤스(Liz Adams) 부부가 2010년 출시했다. 이들은 히치콕의 스릴러물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고전 영화의 팬이다. 새로 출시하는 와인 레이블을 오래된 영화 포스터처럼 만들고 싶었는데, 마침 이들과 친한 디자이너가 레이블 제작을 도와주겠다고 나서면서 킬리빙빙만의 특별한 레이블이 탄생하게 됐다.
킬리빙빙 시리즈는 일곱 가지 레드 와인으로 구성돼 있다. 이름도 레이블만큼이나 특이하게 모두 알파벳 ‘S’로 시작한다. 스크림(Scream)은 100% 시라즈로 만들며 24개월간 작은 오크통에서 숙성한 와인이다. 스니키(Sneaky)도 시라즈 와인이지만 숙성 기간은 스크림보다 짧아 12개월이다. 100%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와인도 두 가지다. 시덕션(Seduction)은 12개월간 오크통에서 숙성한 와인이고, 18개월간 오크 숙성한 와인은 아직 이름을 짓지 못해 레이블에 카베르네 소비뇽이라고만 적어서 판매하고 있다. 스케어디 캣(Scaredy Cat)은 카베르네 소비뇽 70%에 시라즈 30%를 섞은 것이고, 섀도(Shadow)는 시라즈 75%에 카베르네 소비뇽 25%를 섞었다. 시크릿(Secrets)은 카베르네 소비뇽 64%, 시라즈 24%, 말벡 12%를 블렌딩한 와인이다.
킬리빙빙은 세계 각국 와인대회에서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코리아 와인 챌린지(Korea Wine Challenge)에서도 상을 받았는데 2014년에는 스크림이 금상을, 2015년에는 섀도가 은상을, 올해에는 시크릿이 은상을 받았다. 스크림은 달콤한 베리향에 고추 같은 매콤함과 담배향이 섞여 있다. 견고한 타닌이 구조감을 더하고 긴 여운에서는 상큼한 체리향이 맴돈다. 섀도는 농익은 자두향과 후추 같은 향신료향이, 시크릿은 진한 베리향에 은은한 계피향과 허브향이 특징이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영화는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균형 잡힌 스토리 전개와 멋진 영상미로 우리를 감동케 한다. 킬리빙빙은 그런 영화를 닮았다. 좋은 포도로 만들어 구조감과 균형감이 돋보이며 맛과 향도 뛰어나다. 추억의 영화가 생각나는 가을이다. 킬리빙빙 한 잔을 음미하며 클래식 영화 한 편 즐기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