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정재가 단정한 슈트를 입고 햄버거를 집어 든다. 빙긋 웃으며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흘러나오는 음악은 레오 들리브의 오페라 ‘라크메’ 중 ‘꽃의 이중창’. 기품 넘치는 소프라노 음색에 맞춰 이정재가 미소 지을 때마다 그의 주위로 할라피뇨 폭죽이 꽃송이 모양을 그리며 퍼져 나간다. 한국 버거킹 ‘할라피뇨 와퍼’ TV 광고 내용이다. ‘매콤함의 격이 다르다’는 광고문구를 굳이 읽지 않아도, 여느 햄버거 광고와는 ‘격이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한국 버거킹은 최근 이러한 ‘고급스러움’을 경쟁력 삼아 국내 패스트푸드업계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3년여 사이 기업가치도 1000억 원가량 올랐다. 그동안 이뤄진 두 번의 거래를 통해 산정한 액수다. 첫 거래는 2012년 11월. 사모펀드 VIG파트너스(VIG· 당시 보고펀드)가 두산그룹 계열사 SRS코리아에 약 1100억 원을 주고 한국 버거킹을 사들였을 때다. 그리고 올해 2월, VIG는 이 회사를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AEP)에 팔았다. 이번 매각대금은 약 2100억 원이다. 이 거래를 주도한 이철민 VIG 부대표는 “한국에는 사모펀드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해외 사모펀드들이 경영난에 처한 기업을 헐값에 사들이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껍데기만 남긴 뒤 털어버렸다는 생각 때문”이라며 “하지만 사실 사모펀드는 기업에 투자해 경영을 개선하고 기업가치를 높여 수익을 내는 게 정석이다. 그 과정에서 고용이 늘어나는 경우도 많다. 한국 버거킹이 대표적 사례”라고 밝혔다.
시곗바늘을 2012년으로 돌려보자. 버거킹은 당시 SRS코리아가 운영하던 치킨 프랜차이즈 KFC와 함께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었다. 수많은 브랜드가 각축을 벌이는 패스트푸드업계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낮다는 평을 듣던 상태였다. 건강에 대한 염려 등으로 패스트푸드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파다했고, 수제버거 프랜차이즈 크라제버거가 경영난에 처하는 등 업계 전망도 불투명했다. 그러나 VIG의 생각은 달랐다. 이 부대표는 “치킨 프랜차이즈업계는 이미 레드오션이라고 봤다. 하지만 햄버거 쪽은 성장 잠재력이 충분해 보였다. 롯데리아, 맥도날드, 버거킹 단 3개 업체가 시장을 분점한 데다, 버거킹이 다른 브랜드에 비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980년대 중·후반 청년기를 보내며 국내 최초로 햄버거 문화를 접한 이들이 40, 50대가 된 것도 긍정적으로 여겨졌다. 이 부대표에 따르면 치킨의 경우 이미 남녀노소 누구나 먹는 간식이다. 시장이 확대될 여지가 적다. 하지만 햄버거는 ‘첫 고객’이 나이가 들수록 계속 수요층이 넓어지는 메뉴다. 1980년대의 50대는 햄버거를 끼니로 여기지 않았지만, 2000년대의 중년은 생각이 다르다. VIG는 국내 3개 브랜드 가운데 버거킹이 어린이와 청소년에 맞춘 햄버거 타깃을 위로 확대하기에 적절한 브랜드라고 분석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대, 직화 방식으로 차별화한 맛을 강조하는 프리미엄 전략 등이 구매력 있는 중·장년층에 어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한국 버거킹은 그동안 외식업에 큰 관심이 없는 대기업 아래 있던 탓에 성장이 주춤했을 뿐 잠재력이 충분했습니다. 공격적으로 경영하면 단기간에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 부대표의 말이다. 미국에 있는 버거킹 본사도 VIG의 ‘공격적 경영’ 계획을 환영했다. 이에 따라 VIG는 한국 버거킹을 KFC와 분리해 단독 인수했다. 이후 대중 눈에 띈 가장 큰 변화는 광고모델 교체. 버거킹의 얼굴이 개그맨 유세윤에서 배우 이정재로 바뀐 것이다. 이를 통해 VIG가 수립한 ‘브랜드 고급화’ 및 ‘햄버거 소비층 확대’ 전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다이내믹한 변화의 한가운데서 지킨 것도 있다. ‘버거킹=와퍼’라고 여기는 충성도 높은 고객의 믿음이다. 한국 버거킹은 신메뉴를 개발할 때도 ‘와퍼’를 코어(core)로 삼고 다양한 변주를 덧붙였다. 이러한 메뉴는 일반 와퍼와 달리 판매 기간을 한정하는 전략도 썼다. 소비자로 하여금 ‘지금 안 가면 못 먹는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 와퍼에 모차렐라, 아메리칸, 파르메산, 체다 등 4종류 치즈를 넣은 ‘콰트로치즈와퍼’는 한정판매 기간에 400만 개 이상 팔리며 빅히트를 기록했다. 버거킹 본사가 이를 그대로 가져다 미국에서 ‘포(four) 치즈 와퍼’라는 이름으로 판매했을 정도로 화제도 모았다.
이 과정에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꾸준히 늘면서 한국 버거킹은 2014년 버거킹 본사의 아시아퍼시픽 콘퍼런스에서 대상(Franchise of the Year)을 받았다.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상당수 외식업체가 타격을 입었을 때도 전년에 비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2월 VIG가 또 다른 사모펀드 AEP에 높은 가격으로 한국 버거킹을 팔 수 있었던 건 이처럼 경영 실적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이 매각 작업은 4월 초 마무리된다.
이 부대표는 “AEP가 한국 버거킹을 사들인 건 여전히 성장 잠재력이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라며 “사모펀드는 기업을 사들이고 보통 3~5년 후 되판다. 한국 버거킹은 3년여 만에 약 2배 가격을 받았으니 목표를 초과 달성한 셈”이라고 밝혔다. “한국 버거킹이 앞으로도 다른 패스트푸드업체들과 차별화된 브랜드 강점을 살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과 퀵 서비스 레스토랑 사이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롱런하면 좋겠다”는 게 이 부대표의 바람이다.
한국 버거킹은 최근 이러한 ‘고급스러움’을 경쟁력 삼아 국내 패스트푸드업계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3년여 사이 기업가치도 1000억 원가량 올랐다. 그동안 이뤄진 두 번의 거래를 통해 산정한 액수다. 첫 거래는 2012년 11월. 사모펀드 VIG파트너스(VIG· 당시 보고펀드)가 두산그룹 계열사 SRS코리아에 약 1100억 원을 주고 한국 버거킹을 사들였을 때다. 그리고 올해 2월, VIG는 이 회사를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AEP)에 팔았다. 이번 매각대금은 약 2100억 원이다. 이 거래를 주도한 이철민 VIG 부대표는 “한국에는 사모펀드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해외 사모펀드들이 경영난에 처한 기업을 헐값에 사들이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껍데기만 남긴 뒤 털어버렸다는 생각 때문”이라며 “하지만 사실 사모펀드는 기업에 투자해 경영을 개선하고 기업가치를 높여 수익을 내는 게 정석이다. 그 과정에서 고용이 늘어나는 경우도 많다. 한국 버거킹이 대표적 사례”라고 밝혔다.
매장 수, 영업이익 상전벽해
실제로 VIG가 대주주로 있는 동안 국내 버거킹 매장 수는 131개에서 236개(2015년 말 현재)로 늘었다. 매장당 하루 평균 매출도 같은 기간 321만 원에서 433만 원이 됐다. 2012년 78억 원이던 영업이익(EBITDA) 역시 184억 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상전벽해’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시곗바늘을 2012년으로 돌려보자. 버거킹은 당시 SRS코리아가 운영하던 치킨 프랜차이즈 KFC와 함께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었다. 수많은 브랜드가 각축을 벌이는 패스트푸드업계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낮다는 평을 듣던 상태였다. 건강에 대한 염려 등으로 패스트푸드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파다했고, 수제버거 프랜차이즈 크라제버거가 경영난에 처하는 등 업계 전망도 불투명했다. 그러나 VIG의 생각은 달랐다. 이 부대표는 “치킨 프랜차이즈업계는 이미 레드오션이라고 봤다. 하지만 햄버거 쪽은 성장 잠재력이 충분해 보였다. 롯데리아, 맥도날드, 버거킹 단 3개 업체가 시장을 분점한 데다, 버거킹이 다른 브랜드에 비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980년대 중·후반 청년기를 보내며 국내 최초로 햄버거 문화를 접한 이들이 40, 50대가 된 것도 긍정적으로 여겨졌다. 이 부대표에 따르면 치킨의 경우 이미 남녀노소 누구나 먹는 간식이다. 시장이 확대될 여지가 적다. 하지만 햄버거는 ‘첫 고객’이 나이가 들수록 계속 수요층이 넓어지는 메뉴다. 1980년대의 50대는 햄버거를 끼니로 여기지 않았지만, 2000년대의 중년은 생각이 다르다. VIG는 국내 3개 브랜드 가운데 버거킹이 어린이와 청소년에 맞춘 햄버거 타깃을 위로 확대하기에 적절한 브랜드라고 분석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대, 직화 방식으로 차별화한 맛을 강조하는 프리미엄 전략 등이 구매력 있는 중·장년층에 어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한국 버거킹은 그동안 외식업에 큰 관심이 없는 대기업 아래 있던 탓에 성장이 주춤했을 뿐 잠재력이 충분했습니다. 공격적으로 경영하면 단기간에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 부대표의 말이다. 미국에 있는 버거킹 본사도 VIG의 ‘공격적 경영’ 계획을 환영했다. 이에 따라 VIG는 한국 버거킹을 KFC와 분리해 단독 인수했다. 이후 대중 눈에 띈 가장 큰 변화는 광고모델 교체. 버거킹의 얼굴이 개그맨 유세윤에서 배우 이정재로 바뀐 것이다. 이를 통해 VIG가 수립한 ‘브랜드 고급화’ 및 ‘햄버거 소비층 확대’ 전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바꿀 건 바꾸고 지킬 건 지키고
대중이 볼 수 없는 곳에서는 ‘드림팀’ 경영진이 움직였다. VIG는 한국 버거킹을 사들인 뒤 베니건스와 미스터피자 등의 경영을 맡았던 외식업계 스타 문영주 씨를 최고경영자(CEO/사장)로 영입했다. 맥도날드에서 매장개발 업무를 18년간 담당한 전진욱 씨에게는 최고개발책임자(CDO/ 수석부사장)를 맡겼다. 이 외에도 피자헛코리아 등 글로벌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재무 업무를 한 유주열 씨가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를, 네슬레코리아 출신의 이지현 씨는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이사)를 각각 맡았다. 외식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이 전면에 포진하면서 한국 버거킹은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뭐든 바꿀 수 있다’는 자세로 변화에 돌입했다. 전체 매장을 직영하던 정책을 바꿔 가맹점을 받기 시작했고, ‘드라이브스루(drive-thru·승차 구매)’ 및 배달 등 신규 서비스를 확대했으며 신메뉴 개발, 인테리어 콘셉트 변경도 추진했다.
다이내믹한 변화의 한가운데서 지킨 것도 있다. ‘버거킹=와퍼’라고 여기는 충성도 높은 고객의 믿음이다. 한국 버거킹은 신메뉴를 개발할 때도 ‘와퍼’를 코어(core)로 삼고 다양한 변주를 덧붙였다. 이러한 메뉴는 일반 와퍼와 달리 판매 기간을 한정하는 전략도 썼다. 소비자로 하여금 ‘지금 안 가면 못 먹는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 와퍼에 모차렐라, 아메리칸, 파르메산, 체다 등 4종류 치즈를 넣은 ‘콰트로치즈와퍼’는 한정판매 기간에 400만 개 이상 팔리며 빅히트를 기록했다. 버거킹 본사가 이를 그대로 가져다 미국에서 ‘포(four) 치즈 와퍼’라는 이름으로 판매했을 정도로 화제도 모았다.
이 과정에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꾸준히 늘면서 한국 버거킹은 2014년 버거킹 본사의 아시아퍼시픽 콘퍼런스에서 대상(Franchise of the Year)을 받았다.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상당수 외식업체가 타격을 입었을 때도 전년에 비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2월 VIG가 또 다른 사모펀드 AEP에 높은 가격으로 한국 버거킹을 팔 수 있었던 건 이처럼 경영 실적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이 매각 작업은 4월 초 마무리된다.
이 부대표는 “AEP가 한국 버거킹을 사들인 건 여전히 성장 잠재력이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라며 “사모펀드는 기업을 사들이고 보통 3~5년 후 되판다. 한국 버거킹은 3년여 만에 약 2배 가격을 받았으니 목표를 초과 달성한 셈”이라고 밝혔다. “한국 버거킹이 앞으로도 다른 패스트푸드업체들과 차별화된 브랜드 강점을 살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과 퀵 서비스 레스토랑 사이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롱런하면 좋겠다”는 게 이 부대표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