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까지 동참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코너에 몰린 북한이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대만 사업가들과 손잡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과 대만 기업 사이 이러한 제휴는 5월 취임하는 대만 총통이 중국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북한 나선(나진·선봉)경제특구에서 대북사업을 하는 중국인 A씨는 기자에게 최근 대만 사업가들이 나선특구를 방문해 물량을 주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대만 사업가들과 북측의 연결고리는 나선특구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사업가들. A씨는 3월 중순 중국인 사업가 1명이 대만 3개 의류업체 관계자 3명을, 며칠 뒤에는 중국인 사업가 2명이 대만의 5개 의류업체 관계자 5명을 각각 데리고 나선특구 의류공장들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북측과 이들 대만 기업은 대만 기업의 의류를 나선특구 공장에서 제조,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로 해외 바이어의 주문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대만발(發) 오더’가 가뭄 끝 단비처럼 북한 경제에 숨통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
그간 나선특구에서 대만 기업은 ‘찬밥’ 신세였던 게 사실. 한국,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 제품에 비해 임가공비가 25%나 저렴해 아예 주문 대상에서 제외되곤 했다. 같은 조건으로 일하면 25%를 더 받을 수 있고 물건 주문도 넘쳐나는데 굳이 대만 기업의 의류를 제작할 이유가 없었던 것.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돌입 이후 사정은 변했다. 다양한 국적의 기존 대북사업가들이 북한과 거래를 단절하기 시작하면서 평양은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주문만 있으면 어디든 달려들고 있다.
‘대북 신규 투자 금지’ 나선 베이징
대만 기업의 의류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북한 근로자들의 업무 강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임가공비가 25% 저렴하다 보니 과거처럼 돈을 벌려면 근로자들이 그만큼 더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에는 하루 평균 10시간 일하면 족하던 게 대만 기업의 의류를 제조하면서부터는 평균 13시간 정도로 늘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5월 초 당대회를 앞두고 전국적으로 이른바 ‘70일 전투’를 외치며 근로자들을 쉼 없이 볶아대는 것 역시 근로자들이 ‘딴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북측과 대만 기업 사이 제휴는 최근 중국의 대북 신규 투자 금지 통보와 비교된다. 중국 지린성 훈춘시 취안허 세관 당국은 3월 21일 아침 나선특구에서 대규모 사업을 하는 대북사업가들을 긴급 소집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한 중국인 사업가는 세관 당국이 대북사업가들에게 더는 대북투자를 하지 말 것을 구두 통보했다고 전했다. 취안허 세관 측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정세를 설명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중국인의 모든 투자는 보장받을 수 없으니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오늘자로 북한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한다. 오늘 이후로 북한에 투자하다 발각되면 외화 밀반출 혐의로 잡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세관 측은 또 3월 21일부터는 투자 목적의 북한 방문을 금지해 개인 차원의 방북만 허가하고, 현금 2만 위안(약 360만 원) 이상을 지니고 방북할 경우 조사가 진행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발맞추고자 대북사업에 통제를 가하자 북한은 대만이라는 우회로를 뚫고 있는 셈. 이를테면 ‘굿바이 차이나, 웰컴 타이완’이다. 이는 최근 냉각 국면을 맞은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 측면에서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대만은 5월 차이잉원(蔡英文) 당선인이 여성 최초로 총통직에 오른다. ‘대만 독립’을 강조하는 차이잉원 차기 총통의 노선은 ‘하나의 중국’을 원칙으로 하는 중국 정부 측 견해와 정면충돌한다. 친중파인 마잉주(馬英九) 현 총통 시절과 비교하면 향후 양안관계는 갈등과 긴장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차이잉원 차기 총통을 겨냥해 “대만 독립에 단호하게 반대한다”는 방침을 거듭 천명한 바 있다.
3월 말 현재 8개 회사로 시작한 대만 기업의 나선특구 의류 임가공 계약은 앞으로 얼마나 확대될 수 있을까. 이번 기회에 북한은 대만과 보란 듯 손잡고 베이징의 신경을 건드리는 작업에 나설까. 북한이 대만 측과 제휴를 확대할 경우 대만 기업들은 미국 또는 유엔의 제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중국은 대만 측의 이러한 움직임에 어떻게 대응할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와중에 등장한 ‘북한과 대만 기업의 제휴’는 이처럼 여러 물음을 던진다.
‘핵폭풍 겁박’과 위폐로 반격 시도?
마침 3월 말에는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 게 분명해 보이는 언론보도가 눈길을 끌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가 채택된 이후인 3월 10일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본부에서 각 지방을 총괄하는 도당위원회에 보낸 지시문을 입수했다’며 내용을 소개했다. 지시문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모든 당원과 노동자는 사회주의를 배신한 중국의 압박 책동을 핵폭풍의 위력으로 단호히 짓부숴버리자.’ 지시문은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을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으로 규정하고 ‘중국에 털끝만큼의 환상도 갖지 말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거론했다. 또 ‘우리를 깔보는 중국의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도 담았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한은 대북제재에 동참한 중국을 향해 노골적으로 분노를 드러낸 셈이다.위조지폐와 관련한 보도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3월 말 중국 언론들은 ‘지난해 새로 바뀐 중국 100위안(약 1만8000원)권의 위조지폐가 처음 발견됐다’고 전하면서 ‘위폐는 북·중 접경지역에서 다수 발견됐으며 북한이 제조했을 개연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지만 특히 중국은 위조지폐 범죄를 ‘대국 경제를 혼란케 하는 중대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새로 바뀐 100위안권 지폐를 정교하게 위조해 유통한 배후가 북한이라면 중국 정부로서는 묵과할 수 없는 사안. 현재 북·중 접경지역에서는 100위안권뿐 아니라 20위안과 50위안권 북한산(産) 위조지폐도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소문이 현지인들 사이에서 파다하다.
중국 내 한 취재원이 북한군 장성으로부터 들었다며 기자에게 전한 말이 있다. “우리에게는 미국보다 중국이 더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우리에게 핵이 없었다면 중국은 일찌감치 우리를 집어삼켰을 것이다.” 중국과 멀어지고 대만과 가까워지려는 북한의 속내가 무엇인지 가늠하게 하는 한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