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부담 없이 즐기려면 가격이 저렴해야 한다. 아무리 비싸도 5만 원은 넘지 않아야 일반인이 덜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유명 와이너리가 생산하는 중·저가 와인은 고급 와인을 팔기 위한 입문용 와인인 경우가 많다. 생산 와인의 종류가 한두 가지에 그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반면 주말마다 한 병씩 마셔도 다 마시려면 족히 1년은 걸릴 만큼 중·저가 와인을 다양하게 생산하는 와이너리가 있다. 바로 스페인의 토레스(Torres)다.
토레스는 1870년 설립된 스페인 최대 와이너리로, 아메리카 대륙에도 와이너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칠레 미겔 토레스(Miguel Torres) 와이너리와 미국 캘리포니아 마리마르 에스테이트(Marimar Estate)가 그것이다. 1979년에는 토레스의 그란 코로나스(Gran Coronas) 블랙레이블이 파리 올림피아드에서 프랑스 보르도(Bordeaux) 1등급 와인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를 물리쳐 ‘유럽의 검은 전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토레스는 친환경정책을 펼치는 와이너리로도 유명하다. 와이너리 내부의 물을 정화해 재사용하고 태양열로 전기를 생산한다. 와이너리 인근의 숲을 가꾸는 데 앞장서는 등 지역사회 공헌에도 열심이다. 이는 토레스의 경영이념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칠레에서 생산하는 토레스 와인인 산타 디그나(Santa Digna)는 이웃돕기 기금을 조성하고자 만든 와인이다. 토레스는 실제 그 판매 수익 중 일부를 기금으로 만들어 2010년 칠레 대지진 당시 피해를 입은 33가구에 집을 지어주기도 했다.
산타 디그나 브랜드에는 레드 5종, 화이트 3종, 로제와 스파클링 와인이 각 1종씩 있다. 모두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이나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고, 가격은 2만~3만 원대다. 저렴한 가격에 품질도 좋고 수익금도 사회에 환원되니 마실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와인이다. 품질로만 보자면 일단 스페인에서 생산하는 와인 가운데 가격 대비 품질이 매우 뛰어난 편이다.
토레스의 또 다른 장점은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 대표적인 종류만 언급하자면 먼저 그란 코로나스를 들 수 있다. 페네데스 지방에서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와인으로 진한 과일향과 커피향이 느껴지는 묵직한 와인이다.
다음으로는 상그레 데 토로(Sangre de Toro)를 들 수 있는데, 카탈루냐 지방에서 가르나차(Garnacha) 포도로 만든 와인으로 잘 익은 체리와 초콜릿향이 좋다. 이 밖에 셀레스테(Celeste)는 리베라 델 두에로의 뜨겁고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템프라니요(Tempranillo) 포도로 만들어 탄탄한 질감이 매력적이다. 화이트 와인으로는 모스카텔(Moscatel) 포도로 만든 비냐 에스메랄다(Vin~a Esmeralda)와 파레야다(Parellada) 포도로 만든 비냐 솔(Vin~a Sol)이 있다. 전자는 향긋하고 후자는 상큼하다.
토레스사의 회장 미겔 토레스는 아들에게 회사 운영을 넘기면서 딱 한 가지 다짐을 받았다고 한다. 수익금의 11%는 반드시 환경을 위해 쓴다는 약속이다. 세계적인 주류 잡지 ‘드링크스 인터내셔널(Drinks International)’은 2014년과 2015년 2년 연속 토레스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와이너리‘로 뽑았다. 토레스는 그런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다. 그들이야말로 소비자와 지역사회, 그리고 자연을 존중할 줄 아는 착한 와이너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