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한 중학교에서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게양식을 하고 있다. [환구시보]
홍콩 교사는 대부분 학생들이 ‘통식’ 과목 수업을 통해 민주시민으로서 각종 국제 및 정치·사회 문제 등에 대한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반면 중국 정부는 2014년 민주화 시위인 ‘우산혁명’부터 2019년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 반대 시위 등 홍콩에서 벌어진 반중(反中) 시위에 10, 20대 학생이 대거 참여한 배경에는 홍콩의 ‘통식’ 과목이 있다고 본다.
수학여행은 중국 본토로
홍콩 고교생이 필수 과목으로 배우던 ‘통식’ 교과서들. [빈과일보]
‘공민사회발전’은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 아래 홍콩 △개혁과 개방 이후 중국 △현대 사회의 상호의존과 상호연결 등 3가지 주제를 다룬다. 홍콩 교육부는 지난해 6월 30일 홍콩 보안법 시행 이후 ‘통식’에서 이미 ‘3권 분립’이라는 표현과 시위 관련 내용을 삭제하고, 시위대가 법을 어기면 법률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또 홍콩 시민은 ‘홍콩인’인 동시에 ‘중국인’이라는 점을 부각했으며, 중국 경제발전이 홍콩 시민에게 큰 기회가 될 것이라는 내용도 담은 바 있다.
이처럼 중국 정부는 홍콩 시민들을 ‘중국인’으로 만들기 위한 세뇌작업에 들어갔다. 중국 정부의 세뇌작업 첫 대상은 어린 학생들이다. 홍콩 교육부는 초등학교를 비롯해 중고교 등 모든 학교에 내린 새로운 교육 지침을 통해 학생들에게 중국에 대한 애국심과 사회질서 준수 등을 철저히 가르칠 것을 지시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6세 어린이도 국가 전복과 테러, 분리 독립 주장, 외국 세력과 결탁의 위법성을 배워야 한다. 학교에선 국가 안보에 해가 될 만한 단어 또는 자료의 사용이 금지된다. 중고교생은 자신의 권리와 자유가 무제한이 아님을 배우고,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 본토로 수학여행을 가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거나 특정 노래를 부르는 등 정치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통제해야 한다. 이런 교육 지침은 사실상 홍콩 보안법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중국 정부가 홍콩 역사 교과서를 완전히 뜯어고치고 있다는 것이다. 9월 새롭게 발간될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경우 아편전쟁을 중국 관점에서 기술하고 있다. 기존 교과서는 “아편전쟁은 청나라와 영국 사이 무역 협상 실패로 빚어진 사건”이라고 정의했지만, 새 교과서는 “아편전쟁은 서양 세력에 의한 동양 국가 침탈의 일환으로 빚어진 전쟁”으로 기술했다. 새 교과서는 기존 교과서에 실린 아편전쟁의 배경에 관한 내용을 삭제하고 아편전쟁 때문에 중국인이 입은 인적·경제적 피해와 수탈 상황을 자세히 게재했다.
초등학교 역사 교과서의 경우 국민당과 공산당이 중국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국공내전(國共內戰)’을 중국 정부 입맛에 맞게 수정했다. 새 교과서는 기존 교과서에서 당시 국민당을 이끈 대만 장제스(蔣介石) 정부를 ‘중화민국 정부’라는 명칭으로 표현한 부분을 삭제하고 ‘국민당’이라고 기술했다. 새 교과서는 ‘일국양제’와 관련해 “홍콩은 본토와 같은 정치 제도를 시행하지 않는다”는 기존 교과서의 표현을 삭제하는 대신 “홍콩은 일국양제의 원칙 아래 중국·홍콩이라는 명칭으로 국제 스포츠 행사에 참가한다”는 문장을 삽입했다.
사주 구속 후 폐간 수순 ‘빈과일보’
지난해 홍콩 시민들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빈과일보]
중국 정부는 친중 기업을 이용해 홍콩 언론매체들을 인수하는 방식으로도 언론 장악에 나서고 있다. 홍콩 바우히니아(紫荊) 문화그룹은 4월 홍콩 최대 위성방송 ‘펑황(鳳凰·Phoenix) TV’의 지분 37.9%를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친중 기업인 바우히니아 문화그룹은 펑황 TV의 홍콩 출신 이사들을 해임하고 중국 정부 관리 출신 이사 3명을 새로 임명했다.
중국 선전의 부동산 대기업 카이사(佳兆業) 그룹의 후계자는 1월 홍콩 싱다오(星島) 그룹의 지분 28%를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싱다오 그룹은 홍콩 4대 일간지 중 하나인 ‘싱다오일보’와 영자경제지 ‘스탠더드’ 등을 보유한 미디어 기업이다. 홍콩 공영방송 RTHK에선 정부 관리 출신 인사가 3월 신임 광파처장(廣播處長·방송국장)에 임명된 이후 고위 간부가 잇달아 사임하고 있다. 홍콩 독립 언론매체 ‘홍콩자유언론(HKFP)’은 “홍콩 정부가 RTHK에 개혁을 요구하면서 편집권 독립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말 그대로 언론개혁을 빙자한 언론 장악이다. 중국과 홍콩 정부를 비판한 기자들도 대거 해고되거나 테러 공격을 당하고 있다. 홍콩 경찰 총수인 크리스 탕 경무처장은 ‘가짜뉴스’와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홍콩의 언론 자유는 극도로 침해되고 있다. 홍콩기자협회는 “홍콩 보안법 제정 이후 언론인이 대거 체포·기소되는 등 언론의 자유가 크게 악화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애국주의 영화 제작 독려
홍콩 문화·예술계도 중국 정부의 압박으로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다. 올해 말 개관을 앞둔 홍콩 현대미술관 ‘M+’는 최근 중국 반체제 작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의 작품을 전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보복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홍콩 영화계도 검열 때문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나 반중 성향의 영화를 제작하지 못하고 있다.특히 중국 정부는 홍콩 영화계에 애국주의 영화의 제작을 독려하고 있다. 또한 국가의 명예 및 이익을 훼손하는 연예인을 영구 퇴출하기로 하는 등 통제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영화배우 청룽(成龍·성룡)을 비롯한 홍콩 문화·예술계 인사 2605명과 관련 단체 110곳이 홍콩 보안법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반면 반중 성향인 영화배우 앤서니 웡(黃秋生·황추생)은 홍콩 영화계에서 퇴출돼 현재 대만에 머무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이처럼 본격적으로 세뇌작업을 벌이는 의도는 홍콩 시민을 ‘중국화’하기 위해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베이징이 홍콩을 완전히 장악했고, 이제 세뇌작업이 시작됐다”면서 “자유롭고 활기 넘치던 홍콩이 중국과 닮은 전체주의 지역으로 추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 정부는 앞으로 더욱 강력하게 홍콩 시민들의 의식구조를 바꾸려는 작업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