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 (청)은 대통령비서실, (국)은 국토교통부 숫자는 2017년 5월 대비 최근 실거래가 상승률 경남논현은 전용면적 59.56m2 기준
“호가가 21억 원이에요. 올려도 너무 올린 거 아닌가 싶은데, 모르죠. 요즘 분위기에는 이 가격에도 산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죠.”
조국 아파트는 ‘21억 원’
조국 법무부 장관이 49평형 한 가구를 소유하고 있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삼익아파트. [강지남 기자]
국토교통부(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아파트 49평형의 가장 최근 거래 가격은 지난해 9월 18억4000만 원. 비록 호가지만 시세가 1년 새 2억 원 이상 오른 것이다. 부동산 보유세를 인상하고 대출 규제를 강화한 지난해 ‘9·13 부동산대책’이나 재건축 아파트에 타격을 입힐 만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도입(‘8·12 부동산대책’)도 집값 상승에 제동을 걸지 못한 셈이다.
시세 상승 원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인근 재건축 아파트 분양이 성공적이었다는 점, 그리고 방배동 아파트값이 향후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다. 5월 삼익아파트에서 큰길(방배로) 건너 위치하는 방배그랑자이(옛 방배경남아파트)가 3.3㎡당 평균 5143만 원의 일반 분양가를 책정해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음에도 전체 가구 분양에 성공하자, 지난해 11월 입주를 시작한 신축 아파트인 방배아트자이의 30평형대 가격이 16억 원대에서 17억 원대로 올라섰다. 10월에는 32평형(전용면적 84.93㎡ · 10층)이 18억 원에 거래된 것으로 신고됐다. 그 영향으로 방배아트자이와 붙어 있는 삼익아파트의 가격도 동반 상승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서울지하철 7호선 내방역과 2호선 서초역을 잇는 서리풀터널 개통으로 방배동 교통 여건이 개선되면서 서초구 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방배동 부동산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 방배동 한 주민은 “방배동 집값이 반포 수준으로 오르진 못하겠지만, 열심히 그 뒤를 쫓아가지 않겠느냐”며 기대를 내비쳤다.
청와대 관료들의 강남 집값, 평균 40% 올라
최근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함께 서울 34개 단지의 아파트값 20년치를 분석한 결과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 상승 폭이 가장 크다고 발표했다. 강남권 기준으로 3.3㎡당 가격이 노무현 정부 때 2300만 원, 박근혜 정부 때 900만 원, 문재인 정부에서 2000만 원 올랐는데, 이를 연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노무현 정부 450만 원, 문재인 정부 810만 원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이 보유한 ‘강남 아파트’ 가격도 연일 상승하고 있다(표 참조). 조 장관 외에도 이낙연 국무총리,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 주중대사,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 그리고 주택 정책 주무 부처인 국토부 고위 관료들이 보유한 강남 아파트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과 비교해 적게는 20%, 많게는 50% 넘는 가격 상승을 누렸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을 공개하는 대통령비서실의 비서관급 이상 관료는 총 53명인데, 10월 현재 23%에 해당하는 12명이 강남·서초·송파구에 아파트 1채씩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18쪽 지도 참조). 이들이 보유한 아파트값은 실거래가 기준 평균 40% 상승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53평형 한 가구를 보유한 경기 고양시 하이파크시티 일산아이파크1단지의 가격이 하락세인 것과 대비된다. 이 단지의 33평형(전용면적 84.96㎡)의 경우 2017년 5월 4억5000만 원에서 올해 7월 3억6500만 원으로 8500만 원 하락했다.
“재건축 늦춰지더라도 지금 사놓자”
현재 세대 증가형 리모델링이 추진되고 있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 동아아파트. 이낙연 국무총리가 32평형 한 가구를 소유하고 있다. [강지남 기자]
리모델링 후 주변 신축 아파트와 엇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투자를 끌어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가구별 리모델링 분담금이 1억5000만 원에서 2억 원 사이로 예상돼 32평형에 대한 투자금을 21억~22억 원으로 봐야 하는데, 인근 신축 아파트의 같은 평형 가격이 현재 27억 원이다. 리모델링 후 32평형이 최소 38평형으로 넓어지기 때문에 리모델링 아파트가 신축 아파트보다 가치가 다소 떨어진다 해도 살 만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아파트는 서울지하철 7호선 반포역 앞,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대각선 자리에 위치한다. 큰길(신반포로)을 사이에 두고 3.3㎡당 7000만 원이 넘는 신축 아파트 단지인 반포자이와 마주보고 있다.
손병석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2017년 6월 국토부 제1차관에 취임하기 전 조 장관이 거주하는 방배동 삼익아파트와 세종시 아파트를 처분하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쌍용2차 42평형(전용면적 120.76㎡)을 매입했다. 다주택자 양도세 강화(2017년 8·2 부동산대책) 직전에 주택 정책을 총괄하는 국토부 제1차관이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탄 경우라 당시 많은 이목을 끌었다. 그런데 국토부의 이문기 주택토지실장과 권용복 항공정책실장도 손 사장과 지근거리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실장은 손 사장과 같은 쌍용 42평형, 권 실장은 쌍용2차와 이웃한 대치우성1차 30평형(전용면적 84.69㎡) 소유자다.
‘국토부 3인방’의 대치동 아파트는 8·2 부동산대책의 일환으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재초환)가 도입되면서 혼란에 빠졌지만, 가격은 오히려 조금씩 오르는 추세다. 현재 각 단지는 재초환에 따른 초과이익 세금이 수억 원으로 예상되면서 재건축 추진이 답보 상태에 있다. 하지만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들에 따르면 7월 23억 원에 거래됐던 이들 단지의 40평형대가 최근에는 호가가 24억~25억 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이들 아파트보다 재건축 속도가 늦은 인근 미도아파트 가격이 최근 오름세를 보이는 것이 호가 상승세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미도아파트 46평형(전용면적 128.01㎡)이 29억5000만 원, 34평형(전용면적 84.48㎡)이 23억 원에 거래됐다. 누군가가 46평형을 28억 원에 내놓는다면 그날 바로 팔릴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에 신고된 가장 최근의 46평형 실거래가는 5월 25억 원(5층)이다.
대치동 재건축 아파트 매입을 고려하는 한 강남구 주민은 “재초환과 분양가 상한제 등 규제가 실제 적용되는 상황을 봐가면서 천천히 재건축을 추진하자는 분위기”라며 “재건축이 다소 늦춰지더라도 더 오르기 전에 사놓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주거 환경 좋아서, 물량이 적어서
서울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 1·2번 출구에 조성된 아시아공원(위) 뒤로 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이 위치한다. 장하성 주중대사가 51평형 한 가구를 소유하고 있는 이 아파트 단지는 위치 및 녹지 환경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강지남 기자]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20평형 한 가구를 소유하고 있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한신서래아파트. [강지남 기자]
“다주택자 매도 유도해야”
정부의 각종 규제에도 강남 아파트값이 잡히지 않는 이유는 뭘까. 강남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강남 아파트만 한 투자처가 없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고 말했다. 잠원동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정모 실장은 “막상 이 동네 주민들은 빠른 집값 상승세가 거품은 아닌지 의심하지만, 지방 사람들은 값이 더 오르기 전에 ‘인(in) 서울’, 서울 사람들은 ‘인 강남’ 하자는 생각으로 계약에 나선다”고 전했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박모 대표는 ‘공급 부족’을 거론했다. “요즘 대치동 아파트를 사겠다고 오는 사람을 보면 30, 40대가 많다. 자녀 교육 때문에 어차피 대치동으로 이사 와야 하는데, 앞으로 강남에 신규 아파트가 충분히 공급될 것이라는 기대가 난망하니 ‘지금이라도 일단 사놓자’는 것”이라고 전했다. 서초구 방배동 삼익아파트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강모 대표는 “요즘은 집주인들이 집값 움직임을 더 잘 알고 대응한다”고 말했다. 매물이 동시에 나오지 않고, 한 건의 계약이 성사되면 그보다 가격을 좀 더 높여 매물 한 건이 새로 나오는 식으로 순차적인 가격 상승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는 “5월만 해도 14억4000만 원에 거래됐던 삼익아파트와 이웃한 신동아아파트 30평형대가 보름 전에는 16억5000만 원에 나와 이튿날 바로 팔렸다”며 “이후 인근 아파트 집주인들도 이렇게 오른 가격에 더 붙여서 호가를 부른다”고 덧붙였다.재초환이나 분양가 상한제 같은 규제에 대해서는 재건축 속도를 늦출 뿐 집값을 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대치동 재건축 아파트의 한 조합원은 “각종 규제로 재건축이 늦춰지면 강남 아파트 부족 현상이 더 심해져 값은 더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재건축 난항을 겪고 있는 대치동 은마아파트 34평형(전용면적 84.43㎡)이 최근 22억 원에 거래됐다고 한다. 국토부에 신고된 이 아파트 최고가는 7월 20억4000만 원(10층). 박 대표는 “강남 주민의 상당수가 2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인데 양도세 강화로 퇴로가 없어지자 계속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꽤 많다”며 “정부가 한시적으로 다주택자 양도세를 낮추고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한다면 다주택자의 주택 매도를 유도해 강남 집값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