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유근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종료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뉴시스]
우리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일찌감치 예견됐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한 이후 열린 8월 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간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 경제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며 평화경제론을 주창했다. 수출규제 문제로 불거진 한일 경제갈등을 남북협력으로 극복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이다. 평화경제론은 북한이 남한을 어떤 경우에도 무력 도발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여차하면 군사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상대와 손잡고 경제활동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8월 6, 10, 16일 등 잇달아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며 평화경제론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였다. 북한 태도에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이뤄진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가 한반도에 어떤 안보지형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문 대통령의 바람대로 평화경제 시대가 열릴까, 아니면 북한의 잇단 도발로 새벽잠 설치는 날이 더 많아질까.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8월 2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가운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태국 방콕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위). [뉴시스]
미국에게 한미일 3각 협력은 북한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를 한미일 3국이 함께 견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일 양국 간 주고받은 군사정보를 서로 보호하자는 지소미아가 한일관계는 물론, 한미관계에서도 중요한 변수로 여겨지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신원식 전 합동참모본부 차장은 “지소미아 파기는 우방 간 정보 교환을 막아 한일, 한미관계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단순한 협정이나 이를 통한 군사 교류를 넘어 그 상징성과 정치적 함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봉 유원대 석좌교수도 “일본이 자국의 정보자산 우위에도 한국과 지소미아를 유지하려 했던 것은 결국 미국 때문”이라며 “미국의 뜻을 거슬러 한일 지소미아를 깼으니 미국이 한국 측에 예전처럼 정보를 원활하게 제공할지 의문”이라면서 “일본을 혼내주려다 오히려 한미동맹에 나쁜 영향을 끼쳐 우리 안보에 더 큰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지소미아는 주로 한일 양국의 2급 이하 군사기밀 교류 방법 및 비밀 유지를 규정한다. 우리나라는 일본을 포함해 미국, 러시아 등 33개국과 지소미아를 체결했고, 일본은 우리나라 외에 미국, 영국 등 7개국과 지소미아를 맺었다.
안보 전문가들은 “한미일 3국의 정보자산은 각각의 강점과 허점이 있기 때문에 튼튼한 안보를 위해서는 3각 안보 협력 체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나라는 한미일 3국 가운데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휴민트(Humint)’가 가장 큰 강점이다. 국가정보원 등 국내 주요 정보기관들은 고위 탈북자나 북한 내 정보원 등을 포섭해 수십 년 동안 인적정보 네트워크를 착실히 구축해왔고,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수집한 정보에 대한 분석력도 상당한 수준이다. NSC 정보관리실장을 역임한 김정봉 유원대 행정학부 석좌교수는 “한국말로 돼 있는 북한군의 신호정보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며 “미국, 일본이 자체적으로 수집한 북한 관련 신호와 영상정보에 대한 분석을 한국에 맡기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휴민트는 한국이, 전자정보는 미국과 일본이 우위
휴민트로 정보를 수집하기도 하지만, 신호(SIGINT)와 영상(IMINT)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분석하는 데도 휴민트의 활약은 눈부시다. 김 교수의 설명이다.“첨단장비를 보유한 미국은 정찰 능력 면에서 세계 최고다. 그렇지만 아무리 많은 정보를 수집해도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실제로 대북 감청 등을 통해 파악한 정보는 대부분 한국말로 돼 있다. 언어가 다른 미국이 한국말을 이해하는 분석관을 고용해 운용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미 공조가 필요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미국의 ‘키홀(Keyhole)’ 광학 정찰위성 시리즈는 미국 정보 획득 능력의 상징과도 같다. 열쇠 구멍(키홀)을 통해 들여다보듯 전 세계를 속속들이 감시하겠다는 미국의 자신감과 의지가 담겨 있다. 미국이 운용하는 키홀 정찰위성은 초고해상도 카메라로 지상의 자동차 번호판이나 사람 얼굴까지 식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냉전 시기 소련의 대륙 간 탄도미사일을 감시하던 정찰기 RC-135S ‘코브라 볼’과 고고도 상공에서 지상의 수십cm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U-2 정찰기 등 미국은 다양한 첨단장비를 활용해 광범위한 대북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미국은 첨단 정찰장비로 수집한 정보를 자체적으로 분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한국말로 돼 있는 신호분석의 경우 한국에 분석을 의뢰하기도 한다. 신호와 영상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는 데 한국이 더 특화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 해상자위대 이지스함. [AP=뉴시스]
정찰위성 등 첨단 정보자산은 태부족
2011년 12월 일본 가고시마현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정찰위성을 탑재한 H-2A 로켓의 발사 모습. [AP=뉴시스]
한미일 3국의 대북 정보 수집과 분석에서 한국이 가장 큰 장점을 갖고 있는 휴민트가 최근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남북 사이에 유화 국면이 조성되면 우리 정보당국이 포섭한 북한 측 공작원들이 협조를 잘 안 한다”며 “자신이 전달한 정보가 북한 당국에 흘러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사일 도발 등에서는 휴민트의 활용이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신원식 전 합참 차장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등에서 휴민트의 활용은 한계가 있다”며 “가령 미사일을 쏘는 지척에서 정보원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보고하지 않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위 탈북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도 거시적 전략 정보나 북한 내 권력관계 분석이지 임박한 미사일 발사 탐지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우리 군이 휴민트에 강점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첨단 정보자산의 부족으로 충분한 감시망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현재 한국은 정찰위성이 전무한 상황이다. 2016년 박근혜 정부가 2022년 실전배치를 목표로 군사용 정찰위성 5기 개발 착수 계획을 발표했지만 대통령 탄핵을 겪으며 유명무실해졌다.
우리 군은 현재 북한의 통신 등 신호정보를 수집하는 백두 정찰기와 북한군의 동향을 영상으로 관찰하는 금강 정찰기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소형 제트 여객기 기반으로 만들어져 기체가 작아 탑재할 수 있는 장비가 제한적이고 작전 가능 시간도 길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더욱이 지난해 남북이 체결한 ‘9·19 군사합의’ 이후 활동 반경은 더욱 좁아졌다. 고정익항공기는 동부전선의 경우 군사분계선 이남 40km, 서부전선 20km 내에서 비행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남북군사합의 이후 비행금지구역이 제한되면서 정찰기를 통한 영상정보 수집에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부족한 한국의 정찰 능력을 보완해주는 것이 동맹국 미국과 우방국 일본의 정찰자산들이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 속에서 미국, 일본과의 정보자산 공유는 한국 안보에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한미일 3각 공조를 통해 대북 감시망이 촘촘할수록 ‘정보 실패(Intelligence Failure)’ 가능성은 크게 낮아지기 때문이다.
북한 미사일 사거리 확인도 한미일 공조 덕분
한국이 운용 중인 그린파인 레이더. [Israrel Aerospace Industries]
7월 25일 북한 강원도 원산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위). 미국이 ‘KN-23’으로 명명한 북한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의 비행 특징. 러시아가 개발한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유사한 궤적을 보여 추적이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중앙통신, 동아DB]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은 “우리가 보유한 대북 감시 장비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우리보다 더 많은 정찰자산을 보유한 미국, 일본과 긴밀한 협조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혼자 보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봐야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 전문가도 “현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에 한미일 공조를 냉전 구도로 규정하고 비판적으로 보는 인사가 많은 듯해 우려스럽다”며 “지소미아를 파기한 것은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안보 현실을 외면한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반론도 만만찮다. 한일 양국의 정보보호 방식을 규정해놓은 협정에 불과한 지소미아를 파기해도 한일 간 정보 공유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 2014년 한미일 3국의 국방 당국이 ‘3자 정보 공유 약정’을 체결했다는 점에서다. 당시 국방 당국 간 체결한 정보 공유 약정은 핵무기 및 미사일 실험 등 북한의 위협에 공동 대응하자는 취지였다. 이 약정 체결 이후 기존 한미, 미·일 간에만 공유되던 군사정보를 한미일이 동시에 교환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 약정은 한국과 일본의 정보 교류는 미국을 통해야만 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신인균 대표는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보호’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군사기밀을 상호 보호한다는 신뢰가 핵심”이라며 “협정 자체보다 이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양국이 군사정보를 믿고 교환한다는 점에 의미가 있는데 지소미아 파기로 한일 양국 관계는 더 멀어지게 됐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