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병역거부, 게임 이용 상황 고려해 판단”

검찰, 게임회사에 병역거부자 이용 빈도 등 사실 조회 전문가 “가상세계 활동, 현실과 직접 연결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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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19-03-25 08:5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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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관련 판결을 내리고 있다. [동아DB]

    지난해 11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관련 판결을 내리고 있다. [동아DB]

    게임과 병역이라는 민감한 주제가 한곳에서 만났다. 가상공간의 취미가 현실 속 병역거부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오른 것. 검찰이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게임 이용 상황과 관련해 ‘사실 조회 신청’을 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울산지방검찰청은 2월 27일 울산지방법원에 ‘온라인 게임 가입과 이용 사실’ 조회 신청을 했다. 울산지법에서 1심 재판 중인 11건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때문이다. 이들 사건의 피고인은 모두 여호와의 증인 신도다. 

    울산지검은 병역거부자의 게임 가입 여부와 시기, 이용 횟수, 빈도까지 조회 대상에 포함했다. 지난해 말 제주지검도 같은 사유로 게임 접속 기록을 열람한 바 있다. 울산지검은 국내외 5개 업체 8종(배틀그라운드, 서든어택, 스페셜포스, 콜 오브 듀티 : 블랙 옵스 4, 오버워치, 디아블로, 리그오브레전드, 스타크래프트)의 게임을 지목했다. 

    이 가운데 5종은 FPS(First Person Shooter·1인칭 슈팅게임) 장르다. 온라인에서 다수 이용자가 동시 접속해 1인칭 시점으로 전투를 벌이는 게임의 일종이다. 나머지 3종도 형식에 차이는 있지만 다른 참가자와 전투를 벌이는 게임이다. 검찰은 바로 여기에 주목했다. 전쟁에 반대하는 병역거부자가 ‘폭력적’ 게임을 즐겨할 리 없다는 논리다. 

    검찰의 사실 조회 신청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인터넷에는 “가상공간 속 게임이 양심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반박과 “군대 가기 싫다면서 게임에서 총 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옹호가 맞선다.



    게임과 양심

    육군 군사법원장·고등검찰부장을 역임한 배순도 변호사는 “온라인 게임을 한다고 꼭 전쟁을 좋아할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병역거부 사건의 경우) 객관적 기준이 필요하며, 판단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종교 활동 등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검찰 나름대로 기준을 연구한 결과라 본다”고 말했다. 

    정우식 울산지검 공판송무부장(사법연수원 31기) 역시 전화통화에서 “게임 기록이 결정적 근거는 아니다. 종합적으로 판단 중인데 (게임 기록의) 중요도가 과대평가된 듯하다”고 운을 뗐다. 다음은 정 부장검사와 나눈 일문일답. 

    게임과 양심을 결부할 수 있나.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게임 중독을 경고하는 내용이 있다. 자체 출판물 ‘파수대’나 ‘깨어라’를 보면 게임을 위한 자금 마련, 중독성, 폭력적 성향 자극 등을 이유로 게임 전반에 대해 주의하라고 나와 있다. 여기에서 착안했다.” 

    게임 이용 기록이 재판에서 어떻게 작용하나. 

    “게임 이용 사실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용 시간과 횟수 등을 고려해 폭력적 성향이 보이는지 확인한다. 양심에는 직접적 증거가 없으니 여러 개의 간접적 사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대법원 판례 취지도 공·사생활 모두 살펴 간접적으로 (양심을) 입증하라는 것이다.”

    울산지검은 양심적 병역거부의 최신 판례인 ‘대법원2016도10912호’를 주로 참고했다. 대법원은 피고의 가정환경이나 학교 생활 등 삶의 모습 전반을 살펴야 한다고 판시했다. ‘병역거부자의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할 것이 요구된다. 생활의 전부가 신념의 영향 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생활과 공적 생활이 다르면 모순’이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 

    의문은 남는다. 게임 종류는 차고 넘친다. 일부 업체는 게임 이용 기록을 6개월까지만 보관한다. 

    게임이 8종만 있는 것은 아닌데. 

    “모든 게임을 확인할 수는 없다. 물리적 한계나 시간적 문제도 있다. 그 나름대로 대표성 있는 게임을 선정한 것인데 거기서 빠진 게임은 어쩔 수 없다. 가입자 수 등을 고려해 대표적인 것으로 뽑았다.” 

    짧은 기간 이용 횟수와 빈도가 의미 있나. 

    “게임사별 기록 보존 기간은 물론, 회신 속도도 다르다. 한 업체는 2012년 가입 후 이용 내역을 보애왔다. 이 경우도 만약 7년 전인 2012년에 게임을 한 번 하고 더는 하지 않았다 해도 그것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 여부를)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사생활 침해 여지는 없나. 


    “(검찰이) 사실 조회 신청한 건 온라인 게임 기록이다. 이용자끼리 (게임상에서) 경쟁하는 건데 그게 내밀한 사생활인지 의문이다. (온라인 게임과 관련한) 아이템 사기나 명예훼손도 빈번하다. 모두 형법적 처벌 대상이다. 재판이 진행 중인 11건이 그런 여지가 있다는 게 아니라, 온라인 게임이 순전히 내면의 영역은 아니라는 취지다.” 

    만약 검찰이 사실 조회 신청한 8종 외의 게임을 하거나, 업체의 보존 기간이 지나 기록이 사라졌다면? 실제로 정 부장검사는 “지금까지 이용 기록을 회신한 업체 가운데 가입 내역이 없다고 답한 업체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게임만으로 양심을 판단하진 않겠다”

    2017년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동아DB]

    2017년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동아DB]

    업계는 정중동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복수의 게임업계 관계자는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라 구체적인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게임의 폭력성에만 주목하는 사회통념이 굳어질까 걱정스럽다는 것. 한국게임학회 회장인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5월 WHO(세계보건기구) 질병코드에 ‘게임 중독’이 추가될 것으로 예상돼 업계의 우려가 크다. 이 와중에 (이번 검찰의 사실 조회 신청으로) 게임에 대한 인식이 악화될까 걱정”이라면서 “가상세계의 활동과 현실의 잣대를 직접 연결 짓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밝혔다. 

    한편 국방부 법무관리관, 합동참모본부 법무실장을 지낸 임천영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채 마련되기도 전 대법원 판결이 나온 점이 아쉽다”며 “입법을 통해 개인의 삶과 가치관 전반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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