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1

2015.03.30

대한민국 중산층의 맨얼굴

주거비·사교육비 부담에 세금폭탄까지…삶의 만족도 바닥으로 떨어진 40대 가장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5-03-27 15: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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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중산층의 맨얼굴
    서울 성동구에 사는 A(40)씨의 세전 연봉은 약 5500만 원이다. 그는 99㎡(약 30평) 규모 아파트에서 아내와 초등학생 6학년, 4학년인 두 자녀와 산다. 각종 세금과 의무보험료, 직장 내 공제 등을 떼고 나면 매달 ‘통장에 찍히는’ 금액이 350만 원 남짓. 그러나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돈은 하루 5000원꼴로 계산해 아내가 건네주는 용돈 15만 원이 전부다.

    A씨네 삶의 질을 결정적으로 추락시킨 건 월세였다. 2012년 봄 전셋돈 3억1000만 원에 입주한 아파트 전세 시세가 2년 사이 3억8000만 원으로 치솟은 것이다. 하지만 1억5000만 원을 대출한 상태라 7000만 원을 추가로 부담할 여력이 안 됐다. 아이들 학교 문제를 생각하니 이사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집주인은 보증금 3억 원에 월세 40만 원짜리 반전세를 제안했다. 이미 원금과 이자를 더해 매달 120만 원씩 꼬박꼬박 나가는 상황. 두 아이 교육비로도 한 달에 80만 원가량 쓴다. 여기에 월세까지 더해 고정적으로 나가는 금액이 240만 원이 되니 저축은커녕 소비도 제대로 못 한다. A씨는 “대출금리가 계속 낮아지니 그때 무리해서라도 전세를 할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2억 넘게 빚 폭탄을 끌어안고 사는 건 부담스러울 듯하다”고 했다.

    “회사 동료들과 얘기해봐도 사는 게 다 비슷합니다. 부인이 마트에서 ‘알바’라도 하는 집은 좀 상황이 나은데, 그러면 또 애들 교육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요. 정부에서는 이런 저를 중산층이라고 하죠. 뭐, 그래도 먹고살 만하니까, 말이라도 중산층이라고 해주는 게 고맙기도 하네요.”

    A씨와의 대화는 이렇게 건조하고 피로를 머금은 웃음으로 끝났다.

    연봉 1800만 원도 ‘중산층’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우리나라 중산층 삶의 질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한국 중산층의 4인 가족 기준 중위소득은 약 386만 원이다. 식구 수가 4명인 중산층 가족을 한 줄로 세웠을 때 정확히 중간에 놓이는 가구소득이 월 386만 원이라는 뜻이다. 이 보고서는 또 우리나라 중산층의 평균적 특징으로 △3인 가구 △40대 후반, 대졸 가구주 △맞벌이 등을 제시했다. A씨는 다소 젊고, 외벌이이며, 가구원이 한 명 많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중산층 표준에 부합하는 셈이다.

    게다가 그의 연봉 ‘세전 5500만 원’은 정부가 2013년 세제를 개편하면서 중산층 기준으로 삼은 딱 그 액수다. 당시 정부는 세제를 개편해도 세금 부담이 늘지 않는 소득의 마지노선을 연봉 3450만 원으로 잡았다 ‘서민 증세’라는 비난이 빗발치자 부랴부랴 5500만 원으로 올렸다. 세제 개편안 수정을 직접 지시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후 수차례 “연소득 5500만 원 미만은 추가 세금 부담을 지지 않는다”고 강조했고, 3월 17일 여야 대표와의 3자 영수회담에서 “연말정산 시 연소득 5500만 원 미만 근로자에 대한 혜택 제공” 의사를 밝히는 등 ‘5500만 원’을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구분점으로 삼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럼 이 금액은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을 근거로 든다. OECD는 가구소득이 중위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계층을 중산층으로 본다. 이때 가구소득을 가구원 수에 루트를 씌운 값으로 나눈 이른바 ‘균등화 중위소득’을 지표로 사용한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의 균등화 중위소득은 월 184만710원. 연간으로 따지면 2208만8520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삼을 경우 3인 가구의 중위소득이 약 3678만 원으로, 중산층 가구소득은 1839만~5518만 원에 해당한다. 정부가 제시한 ‘연봉 5500만 원’의 계산식인 셈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전체 월급쟁이의 약 13%가 이에 속한다. 100명 중 13등 정도이니 ‘고소득자’에 해당할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각종 지표를 통해 드러나는 자영업자나 비정규직 근로자의 소득과 비교하면 심지어 ‘연봉 5500만 원’의 위상은 압도적일 정도다. 중소기업중앙회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 소상공인의 월 평균매출은 877만 원, 순익은 187만 원 수준이다. 전체 소상공인의 57.6%는 월 순익이 1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2014년 8월 통계청은 우리나라 비정규직 평균임금이 월 144만 원이라고 발표했다.

    이러다 보니 지난해 연말정산을 전후해 연봉 5500만~7000만 원대 근로자들 사이에서 ‘세금폭탄’이라는 비판이 빗발치자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을 중심으로 “폭탄 맞아도 좋으니 연봉 5500만 원 이상을 받아봤으면 좋겠다”는 댓글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 대형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B(52)씨는 “시급 5900원씩 쳐서 하루 8시간 일하고 4만7200원을 받는다. 월급은 100만 원 좀 넘는 수준이다. 남편이 치킨집을 하다 망해서 빠듯한 월급으로 매달 빚까지 갚으며 살고 있다. 연봉 5500만 원은 꿈도 꿔보지 못한 큰돈인데, 그 돈을 벌면서도 힘들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대한민국 중산층의 맨얼굴
    대한민국 중산층의 맨얼굴
    “세금폭탄 한 번 맞아봤으면”

    문제는 삶의 질이다.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중산층 월 평균 소득은 1990년 82만 원에서 2013년 384만 원으로 증가했다(그래프2 참조). 그러나 같은 기간 지출 증가 폭은 더 컸다. 전체 소비에서 월세의 비중이 11.9%에서 12.8%로 늘었고, 특히 전세보증금이 890만 원에서 1억1707만 원으로 13배나 뛰었다(그래프1 참조). 교육비 증가 폭도 컸다. 사교육비 지출은 1990년 소득의 13.4%에서 2013년 20.9%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세금 부담까지 막대하다. 소득 수준이 중간층(40~60%)인 3분위 가계의 지난해 월평균 조세지출액은 8만3385원으로, 전년 대비 18.8% 늘었다.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계의 증가율은 3%에 불과했다. 중산층 세금 증가율이 6배가 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산층의 삶의 만족도는 점점 추락하고 있다. 통계청이 밝힌 우리나라의 전체 가구 대비 중산층 비중은 2013년 69.7%에 달하지만, 같은 해 한국사회학회 조사에서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0.2%에 불과했다. 역시 2013년 현대경제연구원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약 절반(54.9%)이 자신을 저소득층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저서 ‘당신은 중산층입니까’에서 이런 현상에 대해 ‘국민들이 비현실적으로 높은 중산층 기준을 갖고 상대적 박탈감으로 심각한 자학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배경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다고 본다. 이 교수는 “20대는 취업과 진로가 불안하고, 30대는 거주 대책이 불안하며, 40대와 50대는 노후가 불안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산층인 듯 중산층 아닌 중산층 같은’ 대한민국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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