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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B급 패러디가 너희를 즐겁게 하리라

인터넷 문화 발달로 2000년대부터 대중화…웃음 넘어 메시지 있어야

  • 구희언 기자 bhawkeye@donga.com

B급 패러디가 너희를 즐겁게 하리라

B급 패러디가 너희를 즐겁게 하리라

디스패치가 공개한 배우 이병헌과 모델 이지연의 메시지(위). SBS TV ‘펀치’ 홍보팀에서 배우 클라라와 이규태 일광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회장의 카카오톡 대화를 패러디해 만든 홍보물.

‘내 머릿속에는 내일, 너, 로맨틱, 성공적.’

함축성과 문학성이 돋보이는 이 대사는 특정 작품이 아닌 배우 이병헌이 모델 이지연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이다. 1월 5일 ‘디스패치’는 진실 공방을 이어가는 이병헌과 이지연이 주고받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 일부를 공개했다. 이병헌 측은 “디스패치의 허위조작 보도”라며 유감을 표했지만, 진위 여부는 중요치 않아 보인다. 이병헌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과거 광고에서 보여준 ‘단언컨대~’에 이어 또 하나의 유행어를 만든 셈이 됐다.

이런 패러디를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공공기관이 있으니 바로 고양시청과 부산지방경찰청이다. 온라인에서 패러디와 애드리브로 유명한 고양시청은 공식 페이스북에 고양이 인형탈을 쓴 직원이 수화기를 든 사진과 함께 ‘내 머릿속엔 내 일, 너, 개드립, 성공적’이라는 글을 남겼다. 부산지방경찰청도 공식 페이스북에 포돌이 사진과 함께 ‘내 머릿속엔 퇴근, 퇴근, 로맨틱, 퇴근’이라는 글을 적었다. MBC TV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남궁민과 홍진영이 데이트하는 장면 위로는 ‘내 머릿속엔 300일, 로맨틱, 성공적…’이라는 자막이 덧씌워졌다.

얼마 전까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패러디한 ‘땅콩회항 패러디’가 인기였다. 여기에 혜성처럼 ‘이병헌 메시지 패러디’가 나타난 것. 이것도 시들해지려는 찰나, 새로운 ‘떡밥’이 던져졌다. 배우 클라라와 소속사인 일광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의 이규태 회장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가 공개된 것. 클라라가 이 회장에게 보낸 “당신이 소름 끼치도록 싫습니다”라는 메시지도 패러디에 쓰일 좋은 땔감이었다. SBS TV 월화드라마 ‘펀치’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극 중 검사 박정환(김래원 분)과 검찰총장(조재현 분)이 나눈 문자를 가상으로 꾸리고 이를 패러디했다.

단순한 웃음 넘어 메시지 있어야



패러디는 대응하는 노래, 파생적인 노래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파로디아(parodia)’에서 유래한 말로, 원본에서 따와 재생산된 콘텐츠를 뜻한다. 잘 알려진 원작을 창조적으로 비틀어 새로운 풍자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게 패러디인데, 원본과 패러디물이 각각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는 게 단순 표절이나 모방과는 다른 부분이다. 온라인에서 소비되는 패러디물은 그 목적이 단순히 웃음을 위한 것도 있지만, 대다수 패러디에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대상의 문제점을 폭로할 수 있어야 하기에 대상을 면밀히 관찰, 분석하는 과정이 필수다.

패러디는 어원에서 보듯 오래된 문화지만,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촉발한 것은 인터넷이 대중화한 2000년대 초반부터다. 1998년 ‘딴지일보’라는 패러디 매체가 등장하고, 99년 ‘디시인사이드’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진 합성 패러디물이 확산하면서 보편화됐다. 과거에는 많은 이의 공감 내지는 추천을 얻을 수 있는 ‘웃음거리’ 제공이 패러디의 주목적이었다면, 지금처럼 온라인 마케팅이 일반화한 시대에는 기업과 공공단체도 저비용으로 고효율의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어 패러디물을 적극적으로 양산, 활용하고 있다.

최근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한 작품은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이다. 폭발적인 인기 덕에 패러디물도 폭증해 ‘미생 효과’를 누리려는 기업과 단체에서 패러디를 쏟아냈다. LG화학은 ‘미생’을 패러디한 ‘화생(化生)’ 동영상으로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었다. 화학기업의 딱딱한 이미지를 친근하고 재미있게 전달하고자 만든 광고 동영상은 160만 명이 클릭했다. LG화학 홍보팀 관계자는 “보수적인 기업 이미지를 탈피하고, 젊은 층을 타깃으로 커뮤니케이션하겠다는 니즈에서 시작한 광고였는데, 이렇게 호응이 있을 줄 몰랐다. 단순히 ‘미생’을 패러디하는 건 의미가 없을 듯해 일상에서 흔하지만 알지 못했던 화학 이야기를 쉽게 풀어나가는 데 중점을 두고 만들었다”고 밝혔다.

tvN은 자체적으로도 ‘미생’을 패러디했다. ‘미생’의 패러디물인 2부작 드라마 ‘미생물’은 동시간대 케이블채널 10~40대 남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김석현 tvN 예능국장은 “새 작품을 하려면 소위 ‘밑밥’을 까는 과정이 필요한데 패러디는 밑밥을 까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원작을 알기에 다소 엉뚱한 이야기가 나와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좋은 패러디물은 흉내에 그쳐서는 안 되고, 그 자체로 이야기와 메시지가 명확해야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다.”며 “사실 모든 제작자가 가장 원하는 건 ‘우리 것을 다른 사람이 패러디하는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패러디물을 만들까.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패러디물을 만드는 사람은 아이디어를 내면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패러디가 패러디된 대상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지만, 보는 즐거움이 그 이상이기 때문에 패러디가 인기를 끄는 것이다. ‘땅콩회항’ 같은 경우 누리꾼이 사회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의미에서 지속적인 패러디를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작만한 리메이크작이 없다지만, 드물게 패러디가 원작보다 사랑받는 경우도 있다. 방송인 김보성이 십수 년간 ‘의리’를 외쳐왔음에도 유행하지 않다, 이국주가 tvN ‘코미디빅리그’에서 ‘의리’를 외친 시점에 갑자기 ‘의리’ 콘텐츠가 빵 뜨고, 이국주에 이어 김보성까지 재평가된 것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패러디는 시기도 잘 타야 한다. 여기에 그동안 축적된 기존 콘텐츠(여기서는 김보성)의 힘이 폭발적으로 나올 때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

권위주의적 시대일수록 인기 높아

B급 패러디가 너희를 즐겁게 하리라

‘미생’ 패러디에 ‘미생물’ 주인공 장수원을 기용한 LG화학의 홍보물 ‘화생’.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패러디는 원본이 유명하고 익숙할수록 더 효과적이고 인기를 끌 확률이 높다. 문화콘텐츠를 상품 차원에서 볼 때 생산과 소비 영역은 분리돼 있다. 순수창작자는 생산자요, 감상자는 소비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패러디는 원본에 대한 감상의 표현이자 또 다른 창작 행위라는 점에서 생산과 소비 영역을 넘나든다. 패러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단순히 소비만 하는 사람의 경우에도 원본에 대한 감상 행위를 더 다양하게 충족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원본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패러디는 애초에 오리지널이 있어야 가능한 기생적 콘텐츠다. 쉽게 만들고 쉽게 소비되고, 진지함보다는 흥미로움이 더 강하다. 완전한 창작은 어려워도 오리지널에 대한 비틀기나 비꼬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받아들일 때도 진지함보다는 가벼운 유쾌함이 먼저다. 특히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통해 긴 글을 읽고 파악하는 게 아니라 사진이미지 중심이나 신조어, 키워드 중심의 짧은 텍스트를 선호하고 소비하는 것도 패러디 문화의 확산 배경”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패러디를 즐길까. 김 소장은 창작과 동시에 소비하는 문화의 특성으로 설명했다. “패러디에는 기본적으로 비판이 담겨 있지만, 재미도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비판할 구조적 문제가 너무 많지만, 진지한 비판은 지루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요.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자극적이면서 직관적인 비꼬기를 더 쉽게 받아들이기에 패러디도 인기를 끄는 거죠.”

김 평론가는 “패러디는 복제가 용이해진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더 확대된 문화로, 권위주의적인 시대일수록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가 발달해 개인 창작물의 유통이 간편해질수록 패러디는 더 널리 퍼집니다. 유튜브, 트위터 등이 패러디의 주된 유통 창구가 된 것도 그 때문이죠. 또한 패러디는 권위주의적인 시대일수록 인기가 높습니다. 패러디 자체의 비판적 성격이나 순수한 유희적 성격이 권위주의와는 상극이기 때문에 더 창작욕을 자극하고, 순수창작물이 아니기 때문에 검열을 피하기 쉬운 것도 장점이죠.”



주간동아 2015.02.09 975호 (p68~69)

구희언 기자 b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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