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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고의 없어도 징계 못 피할 듯

금지약물 종류에 따라 선수 자격 정지 기준 달라져…자기 책임 없어도 징계 가능

  • 이원주 채널A 스포츠부 기자 takeoff@donga.com

박태환 고의 없어도 징계 못 피할 듯

박태환 고의 없어도 징계 못 피할 듯

한국 수영의 간판선수 박태환.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 양성 반응을 보인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커지고 있다(왼쪽). 박태환이 투여한 것으로 알려진 약물 ‘네비도’. 외관에 도핑 금지 성분인 ‘테스토스테론’이 포함됐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제17회 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기 두 달쯤 전인 지난해 7월 말. 박태환은 국내 한 재활 전문병원에서 도수 치료와 건강 관리를 받고 있었다. 당시 치료를 받으며 박태환은 주치의의 권유로 주사 한 대를 맞았다. 금지약물 한 번에 선수 생명이 오갈 수 있는 운동선수들은 주사 한 대, 약 한 알에 혹시 모를 금지약물이 포함돼 있는지 여부를 꼼꼼히 따져 묻는다. 박태환도 이 과정을 거쳤다고 박태환 소속사인 팀GMP는 밝혔다. 소속사 측은 “당시 병원 측에서 금지약물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네비도’가 금지약물인 줄 몰랐다?

박태환은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해 정상적으로 도핑테스트를 받았고, 금지약물에 대한 아무런 문제없이 경기를 치러 은메달 1개와 동메달 5개를 땄다. 하지만 아시아경기가 끝난 다음 달인 11월 대한수영연맹은 국제수영연맹에서 도핑테스트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통보를 받았다. 국제수영연맹은 박태환, 쑨양 같은 세계적 수준의 선수들을 상시 관리 대상자로 지정하고 수시로 도핑 검사를 하고 있다. 박태환은 이 상시 검사의 덫에 걸렸다.

검찰 수사 결과 박태환이 병원 측 권유로 맞은 주사는 ‘네비도(NEBIDO)’인 것으로 파악됐다. 네비도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보충해주는 주사약이다. 주로 남성호르몬 수치가 떨어져 나타나는 각종 갱년기 증상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 하지만 남성호르몬 자체가 근육강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일부 운동선수는 이 같은 치료제를 도핑 형태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세계반도핑기구에서도 선수들의 오용을 금지하기 위해 네비도를 금지약물로 지정해놓았다.

박태환과 병원 모두 ‘의사가 주사를 놓았다’는 행위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다음 과정에서 박태환과 병원 측 주장이 갈렸다. 박태환 측은 “수차례 금지약물 포함 여부를 확인했지만 병원 측에서 문제없다고 했고, 약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병원 측은 “남성호르몬 수치가 낮았기 때문에 주사를 권했을 뿐 네비도가 금지약물인지 몰랐다”고 반박했다.



박태환 측이 병원 과실을 강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주사를 맞는 과정에서 ‘고의성’이 있었는지 여부가 국제수영연맹이 자격 정지 등 징계 수위를 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반도핑기구가 낸 ‘세계도핑방지규약’에는 ‘도핑 검사를 받는 선수는 주치의를 정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며, 주치의에게 어떠한 금지약물도 처방받을 수 없다고 알릴 책임도 있다’고 돼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박태환이 해당 병원장을 찾아가 강하게 따지는 대화 내용이 담긴 녹음 파일을 확보, 분석한 결과 박태환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병원장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기소할 방침이다.

박태환이 금지약물 주사를 맞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병원과 의사에게 적극적으로 알렸고, 그럼에도 의사가 박태환에게 주사를 놓았다면, 그래서 박태환이 ‘절반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인정받는다면 박태환이 받을 징계가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수 있다. 그러나 박태환이 자기 책임을 다했다고 해서 징계 자체를 피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스포츠의료계와 수영계의 중론이다. ‘세계도핑방지규약’의 ‘주치의를 정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문구는 주치의가 과실을 범하더라도 운동선수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세계반도핑기구가 이 같은 문구를 규약에 넣은 이유는 도핑 검사로 금지약물이 적발된 선수가 “고의성이 없었다”는 핑계를 대고 죄를 의사에게 뒤집어씌운 뒤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사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항시 금지약물과 특정 금지약물의 차이

스포츠의학 및 도핑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박태환의 징계 수위가 2년가량일 것으로 내다본다. 지난해 도핑 검사를 받아 지난해까지의 규정을 적용받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박태환에게 고의성이 없었다는 점을 국제수영연맹에서 받아들일 경우 징계 수위가 좀 더 낮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대한체육회, 대한수영연맹, 박태환 소속사 등은 최근 공동으로 국제수영연맹 청문회 대응팀을 꾸리고 징계 수위 경감을 위한 대응에 들어갔다. 올해는 세계수영선수권, 내년에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열리는 만큼 대응팀이 징계 수위를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가 박태환의 선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 국제수영연맹은 2월 27일 박태환을 상대로 반도핑위원회 청문회를 열 예정이다.

네비도 주사의 주성분인 테스토스테론은 세계반도핑기구가 정한 1급 금지약물이다. 그만큼 처벌도 무겁다. 테스토스테론 양성 반응이 두 번 이상 나오거나 종류가 다른 테스토스테론이 두 가지 이상 한꺼번에 검출될 경우 영구 제명이라는, 사실상 선수로서의 사형 선고도 내릴 수 있게 돼 있다.

반면 징계 수위가 비교적 가벼운 약물도 있다. 지난해 5월 중국 수영 스타 쑨양도 금지약물 ‘트리메타지딘’을 투약했다 도핑 검사에 적발됐고, 3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심장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트리메타지딘은 ‘특정 금지약물’로 분류돼 테스토스테론 같은 항시 금지약물에 비해 처벌 수위가 낮다. 특정 금지약물은 대회 기간 중에는 투약이 금지되지만 대회 기간이 아닐 경우 치료 목적 등으로 투약할 수 있는 약물이다. 당시 중국선수권대회에 출전 중이던 쑨양은 “심장 치료 목적으로 투약했다”며 의사 소견서를 제출하는 등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박태환의 징계 여부와 별도로, 병원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삼규 전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테스토스테론이 대표적인 도핑 금지약물이라는 건 기초지식”이라며 “처방하는 데 신중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반도핑규약’도 ‘환자가 운동선수임을 의사에게 알렸을 경우 처방할 약품이 금지약물인지 확인하고 이를 환자에게 고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만약 의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금지약물을 처방한 경우에는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할 수 있다. 의료정책연구소가 발간하는 운동선수 처방 매뉴얼에도 ‘의사는 한국도핑방지위원회에 접속해 약품에 대해 검색 후 처방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병원이 금지약물 종류에 대한 지식이 있었든 없었든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주간동아 2015.02.09 975호 (p60~61)

이원주 채널A 스포츠부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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