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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전히 당당한 그녀를 어찌할까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공판 지켜보니…“내가 화난 건 승무원 때문”

  • 김유림 채널A 기자 rim@donga.com

여전히 당당한 그녀를 어찌할까

여전히 당당한 그녀를 어찌할까

‘땅콩회항’으로 물의를 빚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014년 12월 12일 서울 강서구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 출석하고 있다.

“어떤 변명도 내세울 수 없고 어떤 결과도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 아직도 제 손길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기를 허락해주시길 바라며….”

2월 2일 서울서부지방법원(서부지법)에서 열린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결심공판. 검사가 항로변경죄를 적용해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마지막 피의자 진술에서 조 전 부사장은 두 돌이 채 안 된 아들 쌍둥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눈물. 방청석을 가득 메웠던 기자들의 타이핑 소리가 순간 멈췄다. 7시간 전 당당하게 “내가 화가 난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말을 이어가던 그가 아니던가.

오너의 장녀가 승무원의 땅콩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움직이는 비행기를 돌리고 사무장을 내리게 한 초유의 사건 이후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이어졌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고 그 결과 조 전 부사장이 구속됐으며,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장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법정에 증인으로 섰다.

1월 19일 1차 공판

‘미쳤나 봐. 어떡해. 비행기 출발 안 했는데 뒤에 미친년이야.’



‘승무원한테 뭐 달라 했는데 계속 소리 지르고 개난리다.’

‘사무장한테 내리래. 헐, 내려. 진짜 내린다.’

검사가 2014년 12월 5일 사건 당시 조 전 부사장 앞자리에 앉았던 1등석 승객이 친구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증거로 제출했다. 검사가 이 메시지를 읽자, 고요하던 방청석 곳곳에서 피식 하는 웃음이 터졌다. 이 메시지 안에는 당시 승객이 느꼈을 황당함과 공포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첫 재판에 국내외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애초 서부지법은 방청석 80여 개 중 절반을 선착순으로 취재진에게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오전 8시부터 자리를 맡으려는 언론사들이 모여들었다. 선착순 10명 중 절반 이상이 일본 기자였다. 한 일본 취재진은 “땅콩회항 사건에 대한 일본 시민의 관심이 상당하다”고 귀띔했다. 이 나라 국민으로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날 재판의 쟁점은 항로변경죄 성립 여부였다. 조 전 부사장 측은 항공기가 17m밖에 움직이지 않았고 하늘길이 아닌 지상로를 움직였으므로 항로변경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비행기를 돌린 건 조 전 부사장이 아니며 최종 결정은 기장이 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사 10여 명이 끊임없이 주장을 이어갔다. 피고인석에서 녹색 수의를 입고 고개를 푹 숙여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몸을 웅크리고 있던 조 전 부사장은 법정 직원에게 바르게 앉으라고 주의를 받기도 했다.

1월 31일 2차 공판

여전히 당당한 그녀를 어찌할까

2014년 12월 11일 오후 검찰이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를 압수수색한 뒤 압수물품을 들고 건물을 나서고 있다(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박창진 사무장에게 남긴 사과 쪽지.

“처음에는 그냥 잘 마무리돼서 예전처럼 돌아가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너무 커졌고, 수많은 댓글 중 대부분이 ‘이름과 유니폼 입은 사진을 끝까지 기억하겠다’ ‘대한항공 타면 얘부터 찾겠다’는 댓글이 많아서… 예전처럼 다시 유니폼을 입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제가 위증을 하지 않고 교수직 제안이나 이런 회유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조 전 부사장에 의해 비행기에서 내린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땅콩 서비스를 했던) 1등석 여승무원이 검찰조사에서 ‘자기는 맞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회사 측이 여승무원에게 대학교수 자리를 제안했다”고 전했다. 한 방송에서는 여승무원이 검찰 조사 후 돌아가는 모습이 보도됐다. ‘명품가방을 들고 웃고 있다’는 설명이 붙었다. 이후 이 여승무원의 신상이 낱낱이 인터넷에 공개됐고 악성댓글이 쏟아졌다.

이날 재판에서 여승무원의 검찰 조서가 공개됐다. “조 전 부사장에게 맞았다”는 진술이 수차례 반복됐다. 검사 역시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사실에 부합한 진술을 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미 그가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 같다.

#같은 날

“박 사무장이 당한 것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대한항공 회장으로서 사과드립니다. 본인이 근무한다고 했으면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을 겁니다. 평소 큰딸이 일할 때 엄격하게 따진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버지의 마음”으로 법정을 찾았다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판사는 “수의를 입은 딸을 바라보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겠느냐”며 심문을 시작했다. 재판부는 몇 번이나 반복해 “조 회장이 박창진 입장이라면”이라는 가정을 달았다. 조 회장은 “나는 박 사무장이 아니다”라며 답변을 회피하다 “아주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평상시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이 도를 넘는다는 증언에 대해 묻자 “그런 일 없다” “모르겠다”는 답변을 이어갔다. 그는 20여 분간 이어진 증인 심문에서 한 품 거리에 앉은 큰딸을 한 차례도 쳐다보지 않았다.

2월 2일 3차 공판

“공항에서 저는 한 차례 죽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존재감에 대한 가치 없음을, 혹은 강탈을 누군가에게 당했다는… 마치 봉건시대 노예라고 생각했는지 저의 희생만 강요하고….”

사건 이후 번번이 조 전 부사장의 사과를 거절해오던 박창진 사무장. 두 사람은 이날 사건 이후 첫 대면했다. 전날 업무에 복귀해 첫 비행을 마친 박 사무장은 작심한 듯 발언을 이어갔다. 특히 사건 이후 본인의 비행 스케줄이 과도하게 짜였고 익숙한 팀원들과 함께 근무할 수 없게 되는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여승무원에 대한 질문에는 “지금 나쁜 여론을 내 탓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변호인은 “박 사무장이 매뉴얼을 잘못 알아 문제가 일어난 것 아니냐”는 취지로 집요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박 사무장은 진술 도중 흐느껴 울기도 했다.

#같은 날

“당시 물을 갖다 달라는 저의 말에 승무원은 콩과 빈 버터볼 종지를 가져왔습니다. 명백한 매뉴얼 위반입니다. 서비스가 매뉴얼과 틀리다고 생각해 확인하기 위해 매뉴얼을 가져오라고 했고 그 매뉴얼을 찾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뒤에 있었던 저의 행동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조 전 부사장은 매번 “물론 폭력행위는 미안하다”는 꼬리를 달긴 했지만 여전히 본인의 지적이 정당했다고 말했다. 검사에게 도리어 “승무원에게 한 행동과 매뉴얼 부분은 분리해 생각해달라”고 요구했다. 그의 당당한 태도에 재판부는 “피고인은 ‘왜 내가 여기 앉아 있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검사는 양형 이유를 설명하며 조 전 부사장이 반성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았다. 선고는 2월 12일. 과연 그는 아들 쌍둥이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주간동아 2015.02.09 975호 (p34~35)

김유림 채널A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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