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3

2014.11.17

11월의 손님 … 올해는 어떤 맛?

프랑스의 ‘보졸레 누보’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4-11-17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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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의 손님 … 올해는 어떤 맛?
    우리 밥상에 끊이지 않고 올라오는 반찬이 김치다. 늘 배추김치만 먹다 보면 고들빼기김치처럼 색다르거나 열무김치처럼 제철에 유독 맛있는 김치가 생각나곤 한다. 와인 중에서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가 그런 종류다. 갓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 과일향을 한껏 살린, 김치로 치면 겉절이 같은 녀석인 것이다.

    보졸레 누보는 프랑스 부르고뉴 최남단 보졸레 지방에서 생산하는 가메(Gamay)라는 포도로 만든다. 중세시대 가메는 부르고뉴 최고급 산지인 코트도르(Cote d’Or)에서 피노누아르와 함께 재배되던 품종이다. 변덕스러운 기후에도 좋은 수확을 보장했기 때문에 농부는 가메를 선호했지만 귀족들은 달랐다. 농부에겐 한 해 수확이 달린 문제였지만 귀족들은 섬세하고 깊이 있는 피노누아르 와인을 고집했던 것이다. 결국 부르고뉴를 통치하던 필리프 2세가 코트도르 지방에서 가메를 심지 못하게 법으로 정했고, 가메는 남쪽으로 밀려나 보졸레 지방에 정착하게 됐다.

    유리병과 코르크가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와인을 배럴에서 조금씩 덜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와인은 보관 내내 공기와 접촉했고 여름을 지나면서 맛이 점점 시큼해졌다. 그러니 신선한 와인을 고대하던 이들에게 포도 수확은 얼마나 큰 기쁨이었겠는가. 그래서 보졸레 지방에서는 전통적으로 맛있는 와인을 빨리 맛보려고 장기 숙성용 와인과 별개로 누보 와인을 담가왔다. 누보 와인은 일반 와인과 달리 탄산가스 침용법을 이용해 만드는데, 으깨지 않은 포도를 이산화탄소가 가득 찬 밀폐용기에 담아 포도 안에서 발효가 시작되게 해 타닌은 거의 없이 신선함과 과일향이 도드라진다.

    보졸레 누보가 유명해진 건 1980년대 보졸레 누보를 파리로 운송하는 경주가 재미난 볼거리로 각종 미디어를 장식한 덕분이다. 이후 보졸레 누보 열풍은 유럽 전역과 북미를 거쳐 1990년대에는 아시아까지 뜨겁게 달궜다. 지금은 보졸레 누보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 와인시장이 성숙하면서 소비자 입맛도 세련돼 묵직하면서 복잡한 향을 자랑하는 고급 와인을 선호하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게 만든 싸구려 와인 취급은 보졸레 누보에게는 억울한 일이다. 보졸레 누보는 종류가 다르고 즐기는 방식이 다른 와인일 뿐 결코 질이 낮은 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해도 11월 셋째 목요일인 20일 0시가 되면 2014 보졸레 누보가 백화점과 마트, 편의점에 등장할 예정이다. 가격은 보졸레 누보가 2만 원대, 선별된 고급 산지에서 생산되는 보졸레 빌라주 누보는 3만 원대다. 일부 판매점에서는 미리 예약한 고객에 한해 각각 1만 원대와 2만 원대로 할인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알록달록하게 디자인된 레이블 또한 보졸레 누보가 주는 즐거움이다. 가장 많은 판매량을 자랑하는 조르주 뒤뵈프의 보졸레 누보는 매년 다른 디자인으로 고객 눈을 사로잡고, 부르고뉴의 5대 와인 생산자 가운데 하나인 알베르 비쇼는 보졸레 빌라주 누보에 만화 ‘신의 물방울’의 작가가 그린 레이블을 붙일 예정이다.



    보졸레 누보의 산뜻한 산도와 달콤한 과일향을 제대로 느끼려면 신선함이 줄어들기 전 가급적 빨리 마셔야 한다. 한시적이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 와인이다. 음식과의 조화도 까다롭지 않아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리니 간단히 치킨이나 중국요리를 배달시켜 보졸레 누보와 함께 즐겨보는 건 어떨까. 11월 주말이 더욱 즐거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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