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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브랜드의 성공 비밀 |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죽음까지 극적인 ‘영국 패션의 훌리건’

연극무대 같은 컬렉션으로 독특한 미감과 디자인 능력 발휘

  • 이수지 명품칼럼니스트 sognatoriszq@naver.com

죽음까지 극적인 ‘영국 패션의 훌리건’

천재들은 왜 항상 짧은 생을 비극적으로 마감하는 걸까. 리 알렉산더 맥퀸(Lee Alexander McQueen). 우리에게는 영국 왕세자비 케이트 미들턴의 웨딩드레스와 해골 문양 스카프로 기억되는 브랜드 ‘알렉산더 맥퀸’의 수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맥퀸은 16세에 학교를 떠나 최고급 양복점 새빌 로(Savile Row)와 앤더슨 앤드 셰퍼드(Anderson · Sheppard)에서 의상 재단과 테일러링 기술을 연마했다. 이후 연극 의상 전문업체 에인절스 앤드 버먼스(Angels · Bermans)에서 맥퀸 브랜드의 시그니처가 된 여섯 가지 패턴 커팅을 마스터했다. 잠시 이탈리아로 이주해 로메오 질리(Romeo Glgli)의 재단사로 근무하던 맥퀸은 1994년 영국으로 돌아왔고, 센트럴세인트마틴 패션스쿨 석사과정에서 수학하며 자신의 디자인 세계를 완성해나갔다.

맥퀸의 브랜드가 주목받고 성공한 이유는 그의 컬렉션이 마치 연극무대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설치와 영상 등의 작품 활동을 하기도 했던 그의 무대는 의상을 돋보이게 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설치미술 작품과도 같았다. 그는 쇼를 시작하기 전 항상 컬렉션의 콘셉트와 아이디어가 담긴 프레젠테이션을 먼저 진행했고, 그의 컬렉션은 스토리를 담은 하나의 무대가 됐다. 극적 요소가 녹아 있는 컬렉션 덕에 생화로 만든 피날레 드레스에서 떨어지는 꽃송이들까지 연출된 것 아니냐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다.

독특한 미감과 천재적인 테일러링 능력으로 각광받던 맥퀸은 영국패션협회의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4번이나 받았고, 2003년에는 미국 패션협회상까지 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전위적이고 예술적인 쇼로 ‘영국 패션의 훌리건’이란 별명까지 얻은 것과 달리 그는 매우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40세에 천재의 삶 마감



평소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진 맥퀸은 2010년 40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자신의 천재성을 발견해준 ‘정신적 지주’ 이사벨라 블로가 2007년 자살하고, 2010년 어머니까지 숨을 거둔 것이 그의 자살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여겨진다. 에디터이자 스타일리스트였던 블로는 맥퀸의 졸업작품을 모두 구매한 인물로, 이후에도 계속 그의 후원자이자 고객이었다.

죽음까지 극적이던 천재 디자이너는 2011년 ‘Savage Beauty’라는 이름으로 사후에 열린 작품 전시를 통해 다시 한 번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 천재 디자이너의 삶이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 올렸을지 모르지만, 더는 극적이고 디테일하던 그의 의상을 볼 수 없는 점이 못내 안타깝다.





주간동아 963호 (p52~52)

이수지 명품칼럼니스트 sognatoriszq@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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