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3

2014.11.17

연금의 해외투자 비중도 꼴찌

주요 국가 15~45%, 우리는 고작 0.6%…모국 편향·부정적 투자 경험 등 영향

  •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4-11-17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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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행복지수, 출산율, 저축률, 고령사회 대응 능력 등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것들이다. 자산운용 분야에서도 꼴찌 수준의 것이 있다. 바로 연금자산의 해외투자(글로벌 투자) 비중이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주요 국가의 글로벌 투자 비중은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45%인데, 우리나라는 0.6%에 불과하다(그래프 참조). 연금에 투자하는 돈이 100만 원이라면, 고작 6000원만 해외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해외투자 당위와 현실의 괴리

    저금리·저성장·고령화 시대에 진입함에 따라 해외투자는 더는 선택과목이 아닌 필수과목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국민연금 같은 대형 연기금들은 국내 자산만으로 운용할 경우 수익률 극대화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실제 해외투자 비중을 점차 늘려가는 추세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는 여전히 자신의 연금자산을 주로 국내에만 투자하고 있다. 퇴직연금 적립액 가운데 0.7%만이 해외에 투자되고 있다. 세제 혜택이 주어지는 연금저축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체 적립액 중 0.4%에 불과하다. 변액연금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10%가 안 된다. 연금자산에서 당위와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먼저 심리적 이유를 들 수 있다. 사람은 보통 자신에게 친숙한 것을 선호한다. 인간은 새로운 것은 일단 의심하고 꺼리는 게 생존에 유리하도록 진화해왔다. 이미 검증된 음식을 먹는 게 안전을 도모하는 길이었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것이 현대에 와서는 잘못된 편향을 낳는 경우가 적잖다. ‘모국 편향(Home Bias)’도 그중 하나다.

    자기 나라 돌아가는 사정을 다른 나라 사정보다 더 잘 아는 것은 당연하다. 매일 뉴스를 접하고 또 주변 사람과 대화하면서 소식을 듣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나라 사정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알기 어렵다. 그래서 자신의 돈이 걸린 문제라면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이런 심리적 태도로 대다수 사람은 보유 자산을 주로 국내에만 투자하려 한다.



    유럽에서는 독일과 프랑스가,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한국이 이런 성향이 강한 편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글로벌 투자 비중은 각각 15, 16%로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낮은 편이다. 노년층이 금융자산의 절반 이상을 보유해 보수화가 심한 일본도 28%나 된다. 0.6%에 불과한 우리와 비교하면 모두 높은 편에 속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투자를 제외한 나머지 부문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개방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에서 수출 비중이 60%에 달하고, 주식과 채권 시장은 100% 개방돼 있으며, 환율정책도 자유로운 변동 환율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최근 양적완화와 엔 약세를 무기로 강력한 근린궁핍화정책(beggar-my-neighbor policy)을 펼치는 일본 때문에 우리나라 증시와 수출이 몸살을 앓는 것만 봐도 이런 현실이 잘 드러난다. 실물 및 금융시장 차원에서의 높은 개방도와 자산운용의 국내 자산 편중 사이에 크고 깊은 강이 놓여 있는 듯하다.

    어떤 투자 경험을 했느냐도 살펴봐야 할 문제다. 몇몇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의 투자 경험에 따라 리스크 자산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고 한다. 2011년 울리케 말맨디어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와 스테판 네이글 미시간주립대 교수는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할 경우 과거 거시경제로 큰 충격이나 주가 하락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그렇지 않은 투자자들에 비해 리스크 자산에 투자하는 비율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직관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어떤 자산에 투자했다 큰 손실을 입은 사람은 오랜 기간 그 자산에 대한 투자를 피하거나 거부감을 드러낸다.

    연금의 해외투자 비중도 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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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폴트 옵션에 해외투자 포함해야

    우리나라 펀드시장에서 해외펀드 비중은 2006년 8.9%에서 2007년 25.3%로 1년 사이 3배 가까이 늘어난 적이 있다. 그러다 글로벌 금융위기 된서리를 맞으면서 15.4%로 크게 줄었다(2013년 말 기준). 중국의 등장, 브릭스(BRICS) 국가의 약진으로 이머징마켓 투자 붐이 불면서 해외투자 비중이 크게 늘었다가 위기를 맞으면서 싸늘하게 식어버렸던 것. 이 과정에서 많은 투자자가 글로벌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됐다. 그 결과 ‘해외투자는 매우 위험하다’는 편향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과거 투자 경험에 따른 부정적 인식은 해외투자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에서도 고점에서 저점으로 방향 선회를 하는 시기에 늘 이런 심리적 태도가 나타난다. 해외투자에 특히 이런 부정적 반응이 강하게 똬리를 튼 것은 앞서 지적한 모국 편향과 부정적 손실 경험이 서로 상호작용한 결과일 개연성이 높다.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과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의 영향력도 만만치 않다. 과거에 주로 판매한 퇴직연금이나 연금저축계좌로는 해외투자를 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았다. 투자 지역도 일부에 한정된 경우가 많았고, 투자 수단도 다양하지 못했다. 아예 해외투자를 할 수 없는 상품도 있었다. 다시 말해 디폴트 옵션, 즉 초깃값이 해외투자를 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문제는 투자자들이 한 번 설정한 디폴트 옵션을 잘 바꾸지 않는다는 데 있다. 괜히 바꿨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으니 그냥 현재에 머무르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일어나는 손실과 그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손실을 비교해 행동하지 않아서 받게 되는 손실이 덜 해롭다고 여긴다. 이를 부작위 편향이라고 하는데, 연금자산운용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현실과 당위에는 간극이 있는 법이다. 올바르다는 이유만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성인 반열에 오를 것이다. 투자도 예외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심리적 약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할 디폴트 옵션을 잘 설정하는 것이다. 저금리·저성장·고령화 시대에는 연금자산에 해외투자를 디폴트 옵션으로 포함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안정적인 전략이라는 점을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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