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3

2014.11.17

벌써 한숨 내쉬는 보따리상

쇠퇴기 진입한 인천·평택항 소규모 무역상 소멸 시기 빨라질 듯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4-11-14 17: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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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한숨 내쉬는 보따리상

    11월 12일 한 소규모 무역상이 인천항 제2국제여객터미널에서 웨이하이로 가는 카페리를 기다리고 있다.

    11월 12일 오후 인천 중구 인천항 제2국제여객터미널을 찾았다. 출국장 밖에서 소규모 무역상(보따리상)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은 뭉쳐 다니지 않고 혼자 움직였다. 젊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대다수가 중·장년이었다. 여성도 있었다. 이들은 무표정하게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의자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옆에는 허름한 빅사이즈의 캐리어나 테이프로 친친 감아 터지지 않게 보수한 상자들이 놓여 있었다.

    한 여성 소무역상은 가방에 무엇이 들었는지 묻자 잔뜩 경계하며 “화장품을 사서 친지들에게 나눠줄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말투에 중국어 억양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이민 가방 크기의 캐리어 2개를 가득 채운 화장품을 전부 친지가 쓸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또 다른 남성 소무역상은 중국어 억양이 섞인 말투로 “부탁받은 게 있어 전기밥솥을 몇 개 들고 간다. 돌아오는 길에 고추랑 깨랑 먹을거리를 좀 사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이들 소무역상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인천항, 평택항을 중심으로 활발히 이뤄지던 한국과 중국 간 소무역상 활동은 2012년 정점을 지나 최근 쇠퇴기를 맞이했다. 이번 한중 FTA가 소무역상의 쇠퇴를 더 촉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12년 5월 이후로 감소세

    소무역상은 개인이 운반할 수 있는 소량의 물품을 갖고 국경을 넘어 다른 국가와 무역하는 과정에서 이름 붙은 무역 형태를 말한다. 우리에게는 보따리상, 따이공 같은 말이 익숙한데, 당사자들은 소무역상으로 불리는 걸 선호한다. 2000년대 초 여객선을 통한 한중 무역이 시작될 당시 등장한 이들은 국내에서 주류나 전기밥솥, 전기장판, 휴대전화 같은 공산품을 가득 채운 배낭과 캐리어를 들고 배에 오른다. 중국에 도착하면 캐리어에 든 물건을 팔고 빈 캐리어에 중국산 농산물을 채워 국내로 들어온다. 여객터미널 주변에서 소무역상에게 물건을 받고자 기다리는 중간책들의 승합차를 여럿 볼 수 있었다.



    비공식 무역 활동을 지속하던 소무역상이 급감하기 시작한 건 2012년 중국 세관의 규제가 강화되면서부터다. 2012년 5월 중국 세관당국이 1인당 50kg 한도 내에서 특별한 제재 없이 통과시켜주던 수하물 반입을 막기 시작한 것. 당시 중국 세관은 통관을 강화하면서 2002년 8월 공고한 ‘중화인민공화국 세관본부 공고 18호’를 엄격히 집행하겠다고 한국-중국 항로 선박회사에 통보했다. 여기에 따르면 15일 내 입출국이 2회 이상인 여객이 면세로 가져올 수 있는 물품은 담배 100개비, 시가 25개비, 담뱃잎 250g으로 제한되고, 주류는 통관이 일절 금지된다. 중국 세관이 강경하게 나온 데는 한중 FTA 협상 분위기가 한몫했다. 한국과 중국이 FTA 협상을 시작한 건 2012년 5월로 중국 세관의 규제가 강화된 시기와 일치한다.

    현재 인천국제여객터미널에서 한중 카페리 10개 항로를 이용하는 소무역상은 13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실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이는 인원은 1000명 이내. 5년 전까지만 해도 인천국제여객터미널을 이용하던 한중 카페리 항로 이용객 중 소무역상은 70% 이상을 차지했다. 이 때문에 터미널에 상인전용 출국장이 따로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인천국제여객터미널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이용객 91만8437명 중 여행 목적으로 카페리에 승선한 여행객은 63만5793명(69.2%)이었던 반면, 소무역상은 28만3019명(30.8%)에 불과했다. 항로별 소무역상 비중은 2011년과 2013년을 비교했을 때 인천-다롄이 22.7%에서 0%, 인천-칭다오가 45.2%에서 24.1%, 인천-단둥이 20.4%에서 7.9% 등으로 줄었고, 인천-옌타이는 46.0%에서 33.5%, 인천-잉커우는 33.5%에서 0%, 인천-친황다오는 76.3%에서 2.1% 등으로 감소했다.

    “중국 한 번 갔다 오면 5만 원 남아”

    벌써 한숨 내쉬는 보따리상

    인천국제여객터미널에는 상인전용 출국장이 있다.

    7월에는 중국산 농산물을 대량으로 몰래 들여와 유통한 혐의(식품위생법 위반)로 소무역상들이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 따르면 수입업자 박씨 등 2명은 3월부터 평택과 중국을 오가는 중국인 무역상 300여 명으로부터 중국산 농산물을 1인당 50kg씩 사들여 600t(시가 32억 원 상당)을 밀수입한 혐의를 받았다. 세관을 거쳐 정상 수입할 경우 높은 관세(참깨 630%, 녹두 607.5% 등)와 창고 보관료를 내야 한다. 한중 FTA 타결 이후 이런 부분에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천항에서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6년여 간 소무역상으로 일한 진모(58) 씨는 “2012년 중국이 강경하게 규제한다고 나왔을 때는 일하던 2000여 명의 발이 묶여 거의 개점휴업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을 벌이다 큰 손해를 봤고, 이후 신용불량자가 돼 마땅한 직업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고민 끝에 지인 소개로 소무역상을 시작하게 됐다. 진씨는 “국산 화장품과 전기밥솥, 전기장판 같은 물건을 사서 중국에 들어갔다가 중국산 농산물을 사와 중간책에게 넘겨주면 수고비를 받는다. 초기엔 벌이가 나쁘지 않았는데 이제는 뱃삯을 치르면 남는 게 없다. 한 번 갔다 오면 5만 원 정도 수중에 떨어진다”고 말했다.

    배에서는 무엇을 할까. 그는 “딱히 할 게 없다. 잠을 자거나 동료들과 고스톱을 친다”고 했다. 한중 FTA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냐고 묻자 그는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게 없지 않나. 방송에선 소무역상이 밀수나 하는 나쁜 사람처럼 그려지는데 대다수는 생계를 위해 배를 탈 뿐이다. 이렇게 숨통을 조여오니 당장은 아니어도 장기적으로는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한숨을 쉬었다.

    인천국제여객터미널 관계자는 “소무역상 중 내국인은 많지 않고 대부분 중국인이나 조선족”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소무역상이 많았다가 점차 줄어든 것처럼 중국을 오가는 소무역상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예전처럼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한중 FTA가 타결됐다 해도 시장이 곧바로 전면 개방되는 것은 아니니 소무역상이 당장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전망이 밝지 않은 만큼 그 수도 꾸준히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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