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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블랙컨슈머 트집에 죽을 맛”

중소기업, 피해 입어도 마땅한 대응책 없어 ‘쉬쉬’하며 속앓이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블랙컨슈머 트집에 죽을 맛”

보상금 등을 목적으로 자신이 구매한 상품에 대해 의도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 일명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의 눈길이 중소기업으로 쏠리고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에 비해 악성 민원에 대한 대응력이 부족한 데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오르는 악성 리뷰 하나에도 기업이 존폐 위기를 겪는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중소기업이 피해를 입어도 공식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쉬쉬하기에 급급한 사례가 적잖다.

실제 ‘주간동아’ 취재에 응한 피해 중소기업들은 하나같이 익명을 전제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일단 블랙컨슈머에게 보상을 해줬다는 소문이 퍼지면 벌떼처럼 공격해올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말하는 피해 사례와 사연은 가지각색이다.

내비게이션과 블랙박스를 판매하는 중소기업 A사 관계자는 “블랙박스를 판매할 때 고객에게 주기적으로 메모리 용량을 확인하라고 꼭 말한다. 그런데 메모리 용량이 다 찬걸 모르고 있다 정작 사고 현장이 녹화되지 않았다며 물질적,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고객이 많다”고 억울해했다. 내비게이션도 마찬가지다.

10개 중 8개사 “악성 클레임 수용”

“내비게이션을 사고 한 번도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채 ‘우리 집 앞길이 안 나온다’며 제품에 대해 불평하고 악성 리뷰를 달아 기업을 곤란에 빠지게 하는 고객도 있습니다.”



스포츠용품 수입업체 B사의 경우 고객이 골프채를 들고 찾아와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이 고객은 “여기서 산 퍼터헤드가 기울어져 내기 골프에서 돈을 잃었다. 돈을 물어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물품을 부숴 영업에 지장을 주기도 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화풀이를 실컷 하고 퍼터를 버리고 갔는데, 살펴보니 이상이 없었다”고 말했다.

안마의자 전문업체 C사 관계자는 “39개월 임대 기간에 무상으로 애프터서비스(AS)를 제공하는데 의도적으로 반품, 환불을 받으려고 AS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환불해줄 때까지 AS 접수하겠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며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대기업같이 탄탄한 브랜드 인지도나 이미지가 없는 중소기업은 부정적인 보도 하나, 잘못된 게시물 하나로 순식간에 불량 기업으로 찍혀 큰 손해를 입는다”고 털어놓았다.

“한 고객이 안마의자의 가죽 박음질 문제로 트집을 잡으며 제품 교환을 요구하다 나중에는 건강에 도움이 안 된다며 매장에서 난동을 부렸어요. 요구할 때마다 AS를 해줬는데 그때마다 조금씩 다른 이유로 트집을 잡더라고요. 결국 고객이 요구할 때마다 제품을 교환해줄 수밖에 없었어요. 이제는 고의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반복 신고접수 건에 한해서는 예외적으로 AS 비용이 발생한다고 일일이 안내하는 지경이에요.”

하지만 중소기업들의 대응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2013년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중소기업 203곳을 대상으로 ‘블랙컨슈머 대응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가운데 83.7%가 소비자의 악성 클레임을 ‘그대로 수용한다’고 답했다. ‘법적 대응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응답은 14.3%에 불과했다. 기업이 부당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이유로는 ‘기업 이미지 훼손 방지’(90.0%)가 가장 많이 꼽혔다. ‘고소·고발 등 상황 악화 우려’(5.3%), ‘업무방해를 견디기 어려워’(4.1%)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악성 클레임 유형으로는 ‘제품 사용 후 반품·환불·교체 요구’(58.6%)가 가장 많았고, 이어 ‘보증기간이 지난 제품의 무상 수리 요구’(15.3%), ‘적정 수준을 넘은 과도한 금전적 보상 요구’(11.3%), ‘인터넷, 언론에 허위사실 유포 위협’(6.0%), ‘폭언·시위 등 업무방해’(4.9%), ‘소비자단체 고발 조치 및 법정소송 협박’(3.9%) 등의 답변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전담 부서 없이 담당자만 두고 대응’하는 기업이 절반(51.7%)을 넘었고, ‘전담 부서를 설치해 대응하는’ 기업은 30.5%, ‘별도 조직·인력 없이 매뉴얼에 따라 대응하는’ 기업은 12.8%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대다수가 인력난에 시달리다 보니 전담 팀이나 전담 인력을 따로 두는 게 쉽지 않다.

여성 의류 쇼핑몰 D사에서 4년여간 근무한 우모(29) 씨는 “환불 기간이 지났거나 입은 게 확실해 보이는 옷을 바꿔달라는 고객이 많았는데, 바꿔주지 않으면 언론사에 제보하거나 소비자보호원에 신고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의도적으로 점수를 낮게 주겠다(별점 테러)고 윽박지르는 고객도 많다”고 말했다. 심지어 “쇼핑몰에서 산 옷을 입고 피부병에 걸렸는데 아이에게까지 옮았다”며 치료비와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한 고객도 있었다. 우씨는 “그런 고객은 신기하게도 상품권을 제공하겠다고 하면 더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며 개탄했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도 이미 주문이 들어온 건은 우리가 임의로 취소할 수 없어요. 전화요금과 항의하는 데 쓴 시간을 보상해달래서 할인 쿠폰을 발행한 적도 있어요. 이런 고객은 특히 정신적 피해 보상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데, 어디까지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대기업에선 체계적 대응 체계 구축

헤어숍 체인 E사에 근무하는 디자이너 이모(24) 씨는 “직원 실수로 피부 트러블이 생긴 고객이 있었다. 사과 후 변상은 물론 병원비도 지불했는데 그 후에도 가족을 대동해 매장에 찾아와 영업을 방해하고 소란을 피웠다”며 “그래도 여기는 블랙컨슈머를 전담하는 직원이 따로 있어 상황이 나은 편이다. 전담 직원들이 본사에서 정기적으로 관리자 교육을 받다 보니 상황이 발생하면 대처가 비교적 매끄럽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대기업은 블랙컨슈머에 어떻게 대처할까.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15단독 송각엽 판사는 8월 10일 삼성전자로부터 보상금 수억 원을 받아내고 서비스센터 직원을 때린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모(58) 씨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이씨는 재판 과정에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206차례에 걸쳐 환불금과 합의금 명목으로 2억2000여만 원을 기업으로부터 뜯어낸 것으로 밝혀졌다.

MBC 드라마 ‘호텔킹’에서 호텔에 블랙컨슈머 고객이 찾아오면 직원 사이에 ‘JS(진상) 경보’가 뜨던 장면도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실제 서울 주요 호텔들은 고객 블랙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는데, 직원들은 이들의 인상착의를 숙지했다가 호텔 방문 시 각별히 신경 쓰는 방식으로 사전에 불만을 제기할 요소를 제거한다.

여러 식품 브랜드 체인을 가진 한 대기업에서는 매장에 자주 출몰하는 블랙컨슈머의 클레임 형태와 인상착의를 정리해 문서로 공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매주 여러 매장에서 발생한 불만 사례를 취합, 공유해 사전·사후관리 매뉴얼을 만드는 등 체계적인 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블랙컨슈머는 대기업에서도 대응하기 어려워하는 게 사실”이라며 “중소기업도 대기업처럼 강경하게 대응해 나가는 게 중요하지만, 개별 기업이 그렇게까지 하기는 쉽지 않다. 1372 소비자상담센터같이 중소기업 간 통합 불만 해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개별 기업을 넘어 정부나 단체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블랙컨슈머’ 저자 이승훈 씨는 “인터넷에서 ‘기업으로부터 보상받는 법’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고 ‘이렇게 하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학습 효과가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블랙컨슈머가 생겨나는 것”이라며 “회사별 대응 매뉴얼을 두고 적절히 조치하는 한편, 감정 노동자의 스트레스 해소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블랙컨슈머의 특징은 법대로 하자고 하면 한 발 물러난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법적으로 처벌하기 애매한 상황을 악용해 이득을 취하거든요. 은행 콜센터에서는 고객의 모욕적인 언사나 무리한 요구가 계속될 경우 상담원이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는 규칙이 있는데, 기업에서도 직원이 고객 응대를 1시간 했다면 충분히 쉬는 시간을 갖게하는 등 직원의 스트레스를 관리해줘야 해요. 그들도 회사를 벗어나면 고객이니까요.”



주간동아 2014.09.15 954호 (p32~33)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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