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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불륜 뻔뻔해지다 02

발칙한 그녀들, 춤추는 욕망

영화와 드라마 속 ‘불륜女’ 시대상과 함께 변화

  • 황혜진 목원대 TV영화학부 교수

발칙한 그녀들, 춤추는 욕망

발칙한 그녀들, 춤추는 욕망

드라마 ‘밀회’에서 혜원의 욕망은 진정한 ‘나’의 충족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일상은 진부하게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각자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는 전쟁터이기도 하다. 싸움에서 승리를 뜻하는 다른 사람의 인정은 미소나 칭찬, 노골적인 호감 표시 등 다양한 형태로 다가온다. 이에 대해 호들갑스럽게 반응하지 않고자 노력하지만, 나르시시즘이 충족되는 순간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사랑은 그 달콤함을 극대화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상대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세상의 비판적 시선에서 자유롭다. 그러니 매순간 진정한 사랑을 상호 교환할 수만 있다면 삶은 참으로 아름다울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해서 영원히 사랑하면 될 일 아닌가. 문제는 톨스토이가 말했듯 “한 사람의 상대를 평생 사랑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한 자루의 초가 평생 탈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사랑의 생물학적 유효기간은 물론이고, 규칙 없이 움직이는 감정은 결혼을 통한 사랑의 영원성을 보증하지 않는다.

또 다른 선택지는?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끊임없이 새로운 대상을 찾아 자기 충족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은 항상 불안을 수반한다. 더욱이 자본과 육체, 감정을 나누는 사랑의 영역에서 인류는 단 한 번도 진정한 개방을 경험한 적이 없지 않던가. 혼외 성관계를 뜻하는 불륜은 어쩌면 심약한 나르시시스트가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찾아낸 씁쓸한 자가당착적 돌파구일지도 모른다.

집 밖으로 달아난 여성의 욕망



대중의 즉각적인 반응을 필요로 하는 영화와 드라마는 오래전부터 불륜을 이야기해왔다. 최근 가장 큰 논란과 동의를 함께 불러온 드라마는 종합편성채널 JTBC ‘밀회’가 아닌가 싶다. 성공한 유부녀인 혜원(김희애 분)이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가난한 청년 선재(유아인 분)를 만난다.

때로 당혹스러울 만큼 솔직하게 그려진 이들의 불륜을 누군가는 불편하게 바라볼 것이다. 그러나 부와 명성을 축적하는 메커니즘과 자신을 온전히 동일시해온 여성이 한순간 균열의 기운을 감지하고 그 파열음에 몸을 맡기는 것을 단순히 끈적끈적한 성적 욕망으로 매도할 수 있을까. 그녀가 상류계급의 삶에 기생하며 행복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녀 자신은 욕망과 충족의 한계가 없는 절대 부의 주인이 아니었다.

그녀의 자아는 인정의 한 형태인 사랑에 묶여 있었다. 이 사랑이 삶에 대한 성찰과 함께 성장한다는 점에서 혜원의 욕망은 진정한 ‘나’의 충족, 즉 상대와 세계를 공유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혜원의 불륜은 사회 비리를 조금이나마 정화(?)하는 데 기여하지 않았던가.

남성의 바람기가 공공연히 수용돼온 우리 사회의 성격상, 대중매체에서 문제적으로 다루는 건 ‘밀회’에서처럼 집 밖으로 달아나는 아내의 욕망이다. 이러한 플롯은 불륜을 자연스럽게 여성의 진정한 자아 찾기라는 주제와 연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내의 바람기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왔을까.

가족 단위 시청자를 염두에 둔 드라마 가운데 여성의 불륜을 메인 플롯으로 사용한 경우는 흔치 않다. ‘김수현’표 불륜 드라마는 아내가 절망에서 빠져나오면서 망가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불륜 자체에 대한 미시적 발견의 즐거움은 없다. 이에 반해 MBC 드라마 ‘애인’(1996)은 행복한 결혼생활 중에도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다시 올 수 있는지를 질문해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죄의식 없이 집 밖의 로맨스를 맛보려면 불륜의 수위 조절은 필수. ‘애인’은 주인공들의 육체적 접촉을 최소화하고 정신적 교감의 설렘을 보여줌으로써 로맨스 당사자들이 가정으로 돌아갈 명분을 준다. 처벌이나 보상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육체적 욕구를 억압하는 드라마의 전형을 보여준 셈이다.

자유부인과 애마부인 그리고 정사

발칙한 그녀들, 춤추는 욕망

작품 속 불륜녀의 모습은 시대상에 따라 ‘자유부인’의 선영, ‘애마부인’의 애마, ‘정사’의 서현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상영등급이 있는 영화는 좀 더 적극적으로 불륜이라는 소재를 소비해왔다. 그 원조가 ‘자유부인’(1954)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터. 전쟁 전후 혼란이 채 가시지 않은 서울을 배경으로 교수 부인인 선영(김정림 분)은 뻔뻔할 정도로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며 욕망을 드러낸다. 이 작품의 한계는 분명하다. 전쟁 전후 급속도로 유입된 미국 문화에서 위기를 감지한 남성의 처지에서 쓴 소설을 원작으로 주인공 선영을 비성찰적 존재, 자격 없는 모성으로 심판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관능에 눈뜨면서 고루한 남편 대신 자기 욕망에 응답하는 남성을 탐하는 선영을 수식하는 ‘자유’라는 단어의 힘을 완전히 부정할 수 있을까. 수많은 속편 제작이 방증하듯 ‘자유부인’은 관습이 붕괴한 자리에서 나르시시즘을 보존하려는 자아의 세력 다툼이 일어날 수 있고, 그것이 불륜을 통한 자기 충족 욕구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원형적 영화다.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1984년, 야간 통행금지가 폐지되고 심야영화관이 활성화한 상황에서 ‘애마부인’이 개봉한다.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애마(안소영 분)는 또렷한 이목구비와 풍만한 가슴, 가녀린 허리와 헝클어진 듯 풍성한 긴 머리카락 등 여성의 육체를 철저히 물신화한 존재다. 그러나 그녀는 상처투성이다. 애마의 남편은 유능한 사업가로 돈으로 여자를 사면서도 정작 아내에게선 성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러 여성 사이를 부유해야 충족되는 섹슈얼리티 소유자인 애마의 남편은 결코 한 여성에게만 헌신하는 사랑을 할 수 없다. 존재하는 동시에 부재하는 아내의 자리를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애마는 연하 예술가 청년과 사랑을 나누며 치유를 맛본다. 영화는 당대 윤리의식과 타협하려고 부부가 화해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지만, 의미심장한 것은 애마가 여전히 귀가가 늦는 남편을 기다리는 대신 유혹자의 모습으로 밤 화장을 하는 엔딩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1995)와 같은 1990년대 로맨틱 코미디는 강력한 성적 유혹자 대신 낭만적 사랑을 추구하는 미시족 여성을 선보인다. 그녀들은 결혼 후 발생하는 성적 긴장과 갈등을 보여주지만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애인’의 여경(황신혜 분)과 유사하다.

반면 ‘정사’(1998)는 무력했던 여성의 자아가 강렬한 육체적 소통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과거와 이별하고 나르시시즘의 전사로 변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흔을 목전에 둔 서현(이미숙 분)의 몸과 자아가 육체적 열정 앞에서 변해가는 모습이 그녀의 건조한 일상과 대조돼 관객에게 충격을 준다. 더욱이 불륜 상대는 동생의 약혼자. 그녀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 과학실에서 정사를 나누기도 한다. 이토록 파격적인 설정에도 이 영화가 품위 있는 불륜 영화로 꼽히는 이유는 가정을 위해 희생돼야 할 것으로 치부되던 여성의 자아가 모든 것을 걸 만큼 가치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여성 내면의 변화에 무게를 둔 ‘정사’와 달리 ‘해피엔드’(1999)’에서 불륜의 핵심은 섹스다. 아이에게 수면제를 탄 분유를 먹이면서까지 옛 애인과의 섹스에 탐닉하는 보라(전도연 분)의 모습은 악마적인 동시에 그 공허함으로 처연해 보인다. 실직으로 거세된 남성성 안에 숨죽이고 살아가던 남편 민기(최민식 분)의 분노가 아내 살해로 이어지는 결말은 한국 사회의 결혼을 향한 무기력한 독백과도 같다.

발칙한 그녀들, 춤추는 욕망
이상적 소통 좌절될 때 찾아온 유혹

이렇듯 불륜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의 결말이 대개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와 타협한다면 황정민, 문소리 주연의 ‘바람난 가족’(2003)은 정직한 오르가슴이야말로 대안적인 인간관계 혹은 진정한 자기애의 출발점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발칙한 영화다. 믿음과 정서적 만족이 사라진 허울뿐인 가족 안에서 위선과 위악을 오가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인생을 낭비하는 대신, 진정한 쾌락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제도 밖 세상으로의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는 현재 관점으로도 파격적이다.

물론 김윤진, 이종원 주연의 ‘밀애’(2002)는 남편의 불륜으로 절망한 아내가 보상 심리로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과정을 농밀하게 그렸지만, 결국 이 작품 역시 ‘외출’(2005)이나 ‘두 여자’(2010)처럼 불륜 이후 발생하는 주변 사람들의 상처에 관한 이야기에 가깝다. ‘바람 피기 좋은 날’(2007)과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2007)는 소재가 주는 무거움을 떨쳐내고자 신선한 스토리텔링을 시도했지만, 불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대신 짜릿한 순간의 묘사나 근사한 남녀가 벌이는 색다른 연애담을 지켜보는 데 그친다.

친밀감에 기반을 둔 이상적 소통을 꿈꾸는 것이 결혼이라면, 불륜은 그것이 좌절될 때 찾아오는 유혹이다. 이 유혹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과 복잡다단해진 사회적 삶에 따라 모두에게 예정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이유로 불륜에 면죄부가 주어질 수는 없다. 영화나 드라마가 보여주는 것처럼 불륜이 당사자에 대한 처벌이나 추문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인생을 건 결단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과거의 시간을 버려야만 가능한 결단을 할 것인가, 혹은 지금의 안정된 삶 안에서 배우자의 숨겨진 매력을 발견하기 위한 즐거운 노력을 할 것인가. 무엇이 됐든 스스로를 위로하는 지혜를 깨칠 필요가 있다. 허약한 자아에서 비롯한 육체적 일탈에 대한 탐닉은 끝없이 새로운 상대를 찾아가며 삶을 낭비하는 인물을 욕하면서 보는 ‘막장’ 영화나 드라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14.09.15 954호 (p14~16)

황혜진 목원대 TV영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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