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환갑 김원곤 교수의 외국어 도전기

“어쩌자고 이런 목표를 세워서…”

첫 관문 중국어시험(HSK), 최고 레벨에 ‘몸짱’ 만들기 강행군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어쩌자고 이런 목표를 세워서…”

“어쩌자고 이런 목표를 세워서…”
‘2011년 4개 외국어 능력 평가시험 합격하기’의 첫 도전 대상은 중국어 ‘신(新)HSK 6급’이었다. HSK는 중국어 능력 시험이라는 뜻의 중국어 ‘한어수평고시(漢語水平考試)’의 한어병음표기인 ‘Hanyu Shuiping Kaoshi’ 머리글자를 딴 약자다. 이 시험은 중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의 중국어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 교육부 산하 국가한반(國家漢辦)에서 중국교육령에 의해 주관한다.

그런데 2010년 말 막상 HSK 준비를 시작하려니 응시 등급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그전만 해도 모든 어학시험이 영어 토플이나 토익처럼 똑같은 문제로 시험을 치른 뒤 나온 점수 결과로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HSK는 시험 전 미리 자기 수준에 맞춰 1~6급(6급이 최고 등급) 중 하나를 정한 뒤 응시해야 했다.

“어렵지만 불가능은 아니다”

물론 학원에서 같이 배우는 학생들은 나에게 6급에 도전해도 충분한 수준이라고 좋은 평가를 해줬지만 첫 시험에서 최고 레벨에 응시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었다. 학원의 한 중국인 여강사는 HSK 6급은 중국 출신 강사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합격을 보장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늦은 나이에 정말 오랜만에 치르는 시험이라 심리적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사전 준비를 겸해 당시 다니던 학원의 ‘신HSK 6급 모의고사반’ 수업을 한 번 들어본 후 도전 등급을 결정하기로 했다. 예상대로 전체적인 난도가 꽤 높긴 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HSK는 독해, 청취, 작문 등 세 영역으로 구성되며, 영역당 100점씩 할당돼 총 300점 만점이다. 독해 영역에는 문법이나 어휘 분야도 포함된다. 합격 기준은 총점의 60%인 180점 이상이다. 영역별 과락은 없다.

그런데 HSK 쓰기 영역은 그때까지 내가 알던 작문 시험의 일반적 형태와는 상당히 달랐다. 즉 제시된 주제를 바탕으로 거기에 맞게 구상해 새롭게 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문으로 주어진 1000자 전후 원문을 10분 동안 읽고 그 후 35분 동안 원문 내용을 400자 전후로 재정리해 축약하는 것이었다.

이때 축약문 제목은 응시자가 임의로 정해 붙일 수 있지만, 요약 내용에는 자기 의견이나 관점이 일절 들어가서는 안 되고 반드시 원문 내용에 근거해 작성해야 한다. HSK의 이런 특이한 작문 영역은 일반 표음문자와 달리 표의문자인 한자의 특성을 고려해 독창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수험생은 정해진 시간 안에 지문을 읽고 그 지문을 시험 감독관이 거둬 가면 대체적인 내용은 생각나지만 세부적인 문장들을 기억하면서 개별 단어를 다시 정리해 정확한 한자로 옮겨 쓰는 일이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이런 방식의 작문 시험은 상대적으로 더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반적인 작문 시험에서는 주어진 주제에 따라 수험생별로 천차만별의 견해나 문장 구사 방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채점자 처지에서 주관적인 평가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정해진 글을 축약 정리하는 형식은 채점자가 객관화된 조건하에서 개별 수험생의 작문 및 한자 구사 능력을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이렇게 6급에 도전하기로 결정한 후 비로소 구체적인 HSK 일정을 알아봤다. 당시 시점으로 가장 빨리 치를 수 있는 시험은 이듬해인 2011년 3월 13일이었다. 결국 시험까지 3개월 남짓 준비 기간이 주어진 셈이었다. 그 즉시 주 3일 저녁에 수강하는 시험 준비반에 정식 등록했다. 담당 강사는 30세 전후의 중국인 여성으로 시원시원한 성격에 박력 있는 강의 스타일이 특징이었다. 강의 경험도 풍부해 보였다.

그 강사는 내가 첫 시험에 바로 최고 레벨에 도전한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매우 놀라워했다. 그러나 수업이 진행되면서 나이 든 수강생에게서 예상했던 일반적인(?) 수준을 상당히 상회한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합격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격려하기 시작했다.

기대 섞인 평가가 상당한 부담

“어쩌자고 이런 목표를 세워서…”

서울 시내의 중국어학원에서 많은 수강생이 한어수평고시(HSK) 준비 수업을 듣고 있다.

이런 주위 평가나 개인 의지와 관계없이 시험공부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전부터 꾸준히 중국어 공부를 해왔다고는 하지만 시험 합격을 위한 공부는 그 느낌부터가 달랐다. 일주일에 사흘씩 퇴근 후 밤늦게까지 적잖은 나이에 정신을 집중해 공부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숙제도 끊임없이 내줬다. 이뿐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모든 여유시간을 중국어 시험공부에만 할애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중국어 시험 이후 충분한 여유도 없이 닥쳐올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능력 평가시험에 대비해 이들 언어에 대한 기본 공부도 게을리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주 5일 중 사흘은 중국어학원에, 그리고 나머지 이틀은 다른 언어학원에 다니는 강행군을 해야 했다.

또 하나 어려운 문제는 앞서 버킷리스트에서 밝힌 대로 어학시험 도전과 동시에 진행한 몸 만들기 계획이었다. 복근이 강조된 그럴듯한 몸을 만들려면 다이어트가 필수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시험공부를 하려면 두뇌 활동을 위한 충분한 영양섭취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몸 만들기를 위해서는 오히려 영양섭취를 제한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그야말로 “도대체 어쩌자고 이런 목표를 세운 거지”라고 스스로를 이따금 탓할 만큼 힘든 여정이 됐던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정한 목표를 지레 겁먹고 도전 초반에서부터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주 사흘 저녁 시험공부에 적응되자 일요일에도 시간을 내 학원에서 4시간 가까이 관련 수업을 듣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비록 짧은 시험 준비 기간이었지만 시험에 임박해서는 실력이 꽤 향상된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모의시험 성적도 합격점을 훨씬 상회할 만큼 줄곧 좋게 나왔고, 학원 강사들도 모두 합격을 장담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런 주위의 기대 섞인 평가가 좋은 격려는 됐지만, 한편으론 상당한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합격을 다투는 시험을 마지막으로 치른 지 참으로 오랜 세월이 지난 나로선 학원 강의실이라는 여유 있는 공간에서 나타나는 평상시 실력과 시험이라는 긴장된 상황에서 나타나는 실력이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렇게 긴 도전의 첫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 그럭저럭 끝나가고 있었다.



주간동아 2014.05.12 937호 (p64~65)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27

제 1227호

2020.02.21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