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3

2014.04.14

웹 없이 산 하루 동안 난, 원시인이 되었다

  • 윤솔 인턴기자 zzyori0206@gmail.com

    입력2014-04-14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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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 없이 산 하루 동안 난, 원시인이 되었다
    ‘웹(Web)’ 없이 하루를 산다는 것은 첨단 해양수족관에서 목선을 타고 돌작살을 든 기분이었다. 출근시간 확인부터 식사 예약, 모임 장소 확인 등 첨단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현대인의 일상에서 인터넷 없이 오프라인으로 산다는 건 소외 그 자체였다. 오프라인으로 확인하는 번거로움은 감내할 수 있었지만, 현대인과의 ‘단절’은 나를 세 살 어린이로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과의 ‘어쩔 수 없는 접촉’은 인터넷에 가려 있던 ‘사람 냄새’를 다시 맡을 수 있게 했다.

    4월 8일 하루 24시간을 인터넷 없이 살아봤다. 현대적 인터넷의 출발점이 된 웹 개발 25년째를 맞아 그것이 얼마나 우리 삶을 편리하게 했는지, 또 그 문명의 이기에 우리 삶이 얼마나 종속됐는지를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하루 정도야 뭐…’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막상 ‘웹 프리(Web Free)’로 산다는 것은 간단치 않았다.

    4월 8일 오전 8시 늦잠을 잔 탓에 허둥지둥 출근 준비를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누른 뒤 무심코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을 눌러 최단 출근 이동경로를 검색했다. ‘인터넷 연결 상태를 확인하라’는 알림글을 본 순간 웹 프리 생활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았다.

    전날 밤, 스마트폰 배경화면에 있는 앱을 삭제했다. 날씨 정보 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앱, 메신저 앱, 쇼핑 앱, 웹 만화 앱, 금융 앱, 게임 앱 등 15개 웹 서비스를 삭제하니 스마트폰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와이파이(Wi-Fi)와 4G(4세대) 통신망도 껐다. 캄캄한 방에서 눈부신 불빛을 뚫고 뒤적거리던 SNS와 만화 앱에서 벗어나 모처럼 잠도 푹 잤다. 지도 앱 역시 웹 서비스인 줄은 그때까지 몰랐다.

    철저하게 ‘단절과 소외’ 경험



    습관은 참 무서웠다. 101번 버스를 타자마자 습관적으로 음악 앱을 켜는 나를 발견했다. 출근길엔 항상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가수 김동률의 노래를 듣는데 오늘은 어림없었다. 음악을 미리 다운로드하지 않은 것을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매일 출퇴근할 때 타는 버스지만 사실 버스 내부를 유심히 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버스 안을 둘러보니 스마트폰 웹 세상에 빠져 고개를 숙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버스 상단 광고판에는 광고 대신 ‘여기 광고 자리 있어요∼’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스마트폰 웹에 빠져 세상과 소통하는 현대인이 늘면서 새 광고 주인을 찾기는 요원해 보였다.

    진짜 문제는 회사에서 발생했다. 인터뷰 예정인 A기업 관계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전 인터뷰 질문지를 e메일로 보내주면 답변서와 참고자료를 다시 e메일로 보내준다는 내용이었다. 다음은 그와의 문답.

    기자 : “지금 e메일을 보낼 수가 없어요.”

    관계자 : “전산장애인가요?”

    기자 : “그건 아니고요, 팩스나 택배로 보내드릴게요.”

    관계자 : “거참…. 특이하시네요.”

    결국 질문지는 팩스로 보내고 답변서와 추가 자료는 분량이 많아 착불 택배로 받아야 했다. ‘생돈’ 1만4000원을 택배비로 내야 했다.

    회사 근처 중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스마트폰이 울렸다. 집 근처 H은행에서 대출금 이자 납부가 지연됐다는 전화였다. 통장 잔고 확인과 계좌이체는 모바일뱅킹 한 번 클릭으로 가능한 일이지만 오늘만은 아니다. H은행을 직접 찾아가야 했다. 고민 끝에 120 다산콜센터에 연락했다. 상담원은 “휴대전화로 검색이 안 되느냐. 모바일이나 인터넷에 들어가면 볼 수 있다”며 한심하다는 듯 위치를 설명해줬다.

    오후 7시, 친구 6명과 대학의 그룹스터디를 앞두고 미리 자료를 준비하려고 고려대 중앙도서관에 들렀다. 책 검색대에서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이라는 책 제목을 입력하다 ‘아차’ 싶었다. 책 검색도 웹 서비스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 사회과학 분야 책을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예전 선배들이 ‘색인’으로 책을 찾았다는 ‘전설’을 내가 경험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출간 연도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책 찾기는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였다.

    도서관에 온 김에 보조자료를 준비했다. 비슷한 분야의 책을 6권 골라 차례를 살피고 원하는 정보가 있는지 확인했다. 필요한 부분은 복사했다. 대학 4년간 도서관에 다녔지만 이렇게 많은 책을 보면서 오래 있어본 적은 없었다. 책 2권은 대여하고 복사를 했다. A4 용지 140장이 가방에 들어가자 묵직했다.

    그런데 또 막막해졌다. 모임 장소를 공지한 ‘메신저 그룹방’을 이용할 수 없었다. 역시나 그룹방을 연결하자 ‘인터넷 연결 상태를 확인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친구에게 전화를 하려 했지만 전화번호도 없다. ‘메신저 그룹방’에서 연락하다 보니 번호를 따로 저장해두지 않은 것. 결국 일주일 전 통화 기록을 뒤져서 알아냈다.

    웹 없이 산 하루 동안 난, 원시인이 되었다

    도서검색 사이트를 이용하는 대신 색인목록을 보고 책을 찾는 일은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했지만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었다.

    모처럼 가족과 이야기꽃

    돌이켜보면 스마트폰 웹 메신저가 일상화한 뒤 약속시간과 장소는 그때 그때 실시간으로 확정하는 습관이 생겼다. 만나는 날짜만 먼저 정하고, 대충 ‘몇 시 즈음에 보자’고 두루뭉술하게 얘기한 뒤, 약속 당일 메신저로 현 위치를 파악해 중간 지점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다. 회원 중 먼저 도착한 사람이 메신저를 통해 상대방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종로에 있는 H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친구의 문자메시지를 받았지만 인터넷 없이 정확한 위치를 알기는 힘들었다. 서울 종로 3가역 근처 휴대전화 매장 직원에게 H카페 위치를 묻자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흔들어 보였다. ‘휴대전화로 알아보면 될 것을 왜 물어보느냐’는 눈빛이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화장품가게에서 평소 눈여겨본 L브랜드의 선크림을 1만8900원에 사고 스터디그룹 친구들에게 은근히 자랑했다. 친구 중 한 명이 “소셜커머스 K사에서 같은 제품을 7800원에 파는데 무료배송도 해준다”고 하자 나머지 친구들은 각자 스마트폰으로 K사 사이트를 검색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비싸게 산 만큼 속이 쓰렸지만, 그것보다 그들의 대화에 동참할 수 없어 헛헛한 웃음을 지어야 했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오늘의 프로야구 경기 결과가 궁금했다. 집에 가서 스포츠뉴스를 봐야겠다는 생각에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달렸다. 평소 같으면 당장 스마트폰으로 경기 결과와 분석, 내일 등판 투수까지 상세히 검색했을 터. 가까스로 스포츠뉴스 시간에 맞춰 집에 도착했지만 54초간 프로야구 뉴스를 보고 나니 허탈했다.

    여느 날이면 잠자리에서 친구들과 SNS를 하며 시간을 보냈겠지만 이날은 모처럼 가족과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가족과 대화하면서도 만지작거리던 스마트폰이 없으니 대화도 끊김이 없었다.

    4월 9일 새벽, 와이파이와 4G 통신망을 켰다. 갑자기 스마트폰 기기가 몸살이라도 난 듯 5초간 진동했다. 문자메시지 1020개, 봄철 구두 신상품 광고, SNS상에서 누가 내 글에 ‘좋아요’(동의를 나타내는 버튼)를 눌렀다는 알림부터 5주 전 취재차 내려받은 소개팅 앱에 접속하라는 광고까지 24시간 동안 소비했어야 할 ‘웹 소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과연 나는 이런 웹 연결이 모두 필요했던 것일까. 웹 없는 현대인의 삶은 이제 더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새삼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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