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3

2013.09.02

난, 재벌가 딸의 소장품이었다

가장 가슴이 아픈 남자 ①

  • 마야 최 심리상담가 juspeace3000@naver.com

    입력2013-09-02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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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소문을 통해서였다.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여자 돈을 등쳐먹고 튄 남자’ ‘시민운동의 리더처럼 행동하는 가짜’ ‘수많은 얼굴을 가진 가면의 남자’ 등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처음부터 색안경을 끼고 그 사람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스스로 편견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고 다짐해왔던 나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그런 그가 공표를 했다. 3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 여성은 친구로 만나지 않겠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흥미로운 캐릭터군.’

    거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단지 여자혐오증은 아닌 듯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재호(51·가명) 씨,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왠지 약간 흥분됐다.

    그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았는데, 행동은 친절했지만 속된 말로 껄떡대지는 않았다. 그런 점 때문에 그가 연구 대상이란 생각이 더 들었다.



    “안녕하세요.”

    그의 인사는 간결했다. 뭔가를 더 물으려는 나의 마음을 읽은 듯 멀찌감치 도망치기 일쑤였다. 중요한 것은 상담시간의 유연성에 대한 요구였다. 자기 돈을 지불하면서 한 마디만 하고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 보통은 낸 돈의 배는 기본이고 3배, 4배 혹은 10배까지 본전을 뽑고자 하는 심리가 사람에게는 있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상담이 길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상담가의 책상 위엔 초침까지 움직이는 시계가 상담자를 향해 놓여 있다. 종료 10분 전을 일러주기 위해서다.

    “이제 10분 남았으니 마무리하시죠.”

    그는 달랐다. 그는 제 맘대로였고, 상담을 길게 끄는 법이 없었다. 어떤 때는 너무 황당하게도 인사말만 하고 자기는 바쁘다며 등을 돌렸다. 애가 타는 쪽은 나였다. 나에게는 지불받는 비용에 해당하는 서비스를 정해진 시간 안에 내담자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었다. 물론 나도 안다. 이것 역시 내 오만이라는 것을. 어찌 사람이 사람을 돌볼 수 있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다. 단지 그것을 모를 때 살짝 건드려 일깨워주는 것이 상담가의 기본자세다. 그러나 그는 심해도 너무 심했다. 나는 점점 그에게 상담료를 받는 것이 미안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상담을 중단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특이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밀쳐내는 가면의 남자

    가끔 허황된 이야기 같은 것을 하기도 했다. “어떤 여자가 시민운동 자금으로 돈을 줬다. 그런데 그 여자의 꿍꿍이는 따로 있었다. 그 여자는 나를 ‘소유’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돈으로 매수하면 내가 넘어갈 줄 알지만 나는 이미 재벌가의 딸을 아내로 두고 있다”와 같은 식의 이야기였다. 처음엔 나도 이 사람의 정체가 뭘까 골똘히 생각했다. 진지한 질문을 하면 그는 도망쳤다.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는 캐릭터라 나는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그가 화를 냈다. 나는 옳거니 했다. 화를 낸다는 것은 최소한 내게 반응을 보인다는 의미였다. 화를 내는 그는 굉장히 냉소적으로 변했다. 나를 괴물 보듯 했다.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아프다는 것은 그가 아픈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많이 아팠어요? 왜 그렇게 사람을 밀쳐내죠? 그러면 자신이 더 아픈 것을….”

    나의 말이 그의 정곡을 찌른 듯했다. 그가 처음으로 말했다. 내가 자신이 친하게 지내는 친구 한 명과 비슷할 정도로 좋게 생각하는 또 다른 한 명이라고.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어쩌면 내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전해보고자 이야기를 걸었는데, 그는 또 황망히 도망쳤다. 나는 딜레마에 빠졌고, 머릿속에서 그를 지워낼 수 없었다.

    도대체 그 사람의 정체는 무엇인지 틈만 나면 생각했다. 왜 그는 그렇게밖에 사람과 관계를 맺지 못할까. 나는 기다림에 점점 지쳐갔다. 그럴 즈음 그가 엉뚱한 질문을 했다. 최소한 내 처지에서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세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이런 노래 아세요?”

    그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노래 한 곡을 틀어줬다. 레너드 코헨의 ‘버드 온 어 와이어(Birds on a Wire)’였다. 나는 그가 소통하는 방식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가 돌아간 후 나는 그 노래의 가사를 찬찬히 음미했다.

    ‘전선 위의 새처럼, 한밤의 술 취한 주정뱅이처럼 자유로워지려고 했죠.

    내가 만약 친절하지 않다면 그냥 지나쳐 가도 돼요.

    내가 만약 진실하지 않았다 해도 당신에게만은 그렇지 않았음을 알아줘요.

    이미 죽은 사산아처럼, 뿔이 있는 야수처럼 내게 다가오는 모든 이에게 상처를 줬죠.

    하지만 이 노래에 맹세해요.

    내가 한 모든 잘못을 걸고

    당신에게만은 잘할게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언제까지 도망 다녀야 할지…

    다음 상담시간에 나씨는 스스로 입을 열어 아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아내에게서 수없이 도망쳤어요. 아내와의 만남도 장난 같은 것이었는데, 임신을 했다는 거예요. 발목이 잡힌 겁니다. 선생님은 제 아내를 몰라요. 그녀는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가의 딸이에요. 그녀가 어떤 사람인 줄 아세요? 뭔가 값비싼 물건을 샀어요. 그런데 쓰다가 어떤 부위에 흠집이 난 거예요. 그럴 때 부자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 같아요? 새로 살까요? 아닙니다. 진짜 부자들은 일단 자기 손안에 들어온 것을 포기하는 법이 없어요. 사는 비용이 1000만 원이고 수리비가 999만 원이라고 해도 수리를 합니다. 무슨 뜻인 줄 아시겠어요?”

    “단단히 걸리셨군요.”

    나도 모르게 마음속 이야기가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말해놓고 나 스스로도 흠칫 하는데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나를 만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맞아요. 언제까지 아내의 눈을 피해 도망 다녀야 나를 놔줄까요? 그녀는 나를 소유하고 싶은 것뿐이에요.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를 자기 손아귀에서 절대 놓질 않을 겁니다.”

    “그럼 부인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까요?”

    내 질문에 그가 피식 웃었다. 매우 자조적이어서 마음이 아팠다.

    “자존심이라고 했나요? 소장품에도 자존심을 내세우는 사람이 있답니까?”

    이 말에 나는 그의 ‘어쩔 수 없음’에 대한 절망을 느꼈다. 그는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아내로부터. 그녀는 그를 놔줄 생각이 없었다. 사랑 없는 육체적 관계는커녕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어도 그는 ‘영원한’ 그녀의 소유물이었다.

    “그럼 죽지 않고서는 벗어날 길이….”

    내가 말해놓고도 움찔했다. 너무 무서운 말이었다. 죽어야만 벗어나는 관계라니! 아무리 권력과 부가 있어도 다른 사람의 자유를 구속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던 나는 그가 해준 이야기로 철저히 패배했다. 그런 관계가 실제로 존재하니까.

    “또 있죠. 수리 불가 판정이 떨어진다면….”

    담담히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나는 그의 격심한 고통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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