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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수출 싹 틔우는 ‘토종 씨앗’

양파·고추 등 한국 종자산업 경쟁력 확보…정부도 ‘골든 시드 프로젝트’로 적극 지원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수출 싹 틔우는 ‘토종 씨앗’

수출 싹 틔우는 ‘토종 씨앗’

8월 19일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경기도 농업기술원에 마련된 종자종합검사실에서 연구원들이 종자의 품질 검정을 하고 있다.

8월 6일 대구 한 호텔에서 작은 파티가 열렸다. 우리나라 종자기업 농우바이오가 일본에 양파 씨앗 수출을 시작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 참석자 50여 명은 하나같이 감회에 젖은 모습이었다. 서성진 농우바이오 홍보부장은 “우리 회사가 양파 씨앗 개발에 뛰어든 1990년대 말 무렵 우리나라 양파 농가는 대부분 일본산 씨앗을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 기술로 좋은 종자를 개발하자’고 마음먹고 노력한 지 10여 년 만에 일본 수출까지 하게 돼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 바이오에너지작물센터 이을태 연구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도 국내 생산 양파의 60~70%는 수입 종자를 사용한다. 농우바이오를 비롯한 여러 기업이 토종 씨앗을 개발, 생산하지만 농민 사이에는 ‘외국 종자가 좋은 작황을 낸다’는 믿음이 남아 있다. 서 부장은 “양파 농업 종주국처럼 여겨지는 일본에서 우리 씨앗을 수입하면서 우리 종자의 우수성이 입증됐다”며 “이번 수출이 농가의 선입견을 깨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종자 개발에 나서는 업체 늘어나

최근 우리 종자산업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국내 주요 종자기업을 다국적기업이 인수합병하면서 ‘종자 주권’ 문제가 제기된 지 10여 년 만이다. 당시 국내 5대 종자기업 중 흥농종묘, 청원종묘, 서울종묘, 중앙종묘가 다국적 기업에 팔렸다. 국내 종자 상당수도 해외 기업에 넘어갔다.

종자는 식물 생명 정보의 집합체로, 세계 각국은 종자의 산업적 가치를 법으로 보호한다. 농가는 씨앗을 구매할 때마다 개발 회사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당시 국내 종자회사가 갖고 있던 종자 특허가 해외 기업으로 넘어가면서, 우리나라의 로열티 부담은 그만큼 커졌다. 우리나라의 종자 로열티 지급의무 품목은 1998년 27개에서 2008년 223개로 급증했다. 외환위기 당시 국내 5대 종자기업 중 유일하게 독자 생존한 농우바이오가 최근 신품종으로 일본 시장을 공략하는 것은 눈길을 끈다.



외환위기 이후 생겨난 크고 작은 종자업체들도 종자 개발에 나서고 있다. 바이오 벤처기업 ‘고추와 육종’은 탄저병에 강한 고추 품종을 개발해 내수 판매와 세계시장 진출을 노린다.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탄저병은 매년 장마와 태풍이 지난 뒤 발생해 우리나라 고추농가의 20~30%에 피해를 입힌다. 농진청 추산 연간 피해액이 1000억 원에 이른다. 동남아시아와 중국, 인도 등에서도 골칫덩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대만의 아시아채소연구개발센터(AVRDC)와 몬산토, 신젠타 등 글로벌 종자회사가 탄저병에 강한 고추 종자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준대 ‘고추와 육종’ 육종팀장은 “탄저병 내성 고추 종자를 개발한 건 우리가 세계 최초”라며 “2005년 회사 설립 후부터 계속해온 장기 프로젝트의 결실”이라고 소개했다. 이 회사 연구진은 고추 유전체에서 탄저병 저항성을 나타내는 염기서열을 확인해 특허를 받았다. 이를 기반으로 개발한 고추 품종은 현재 농가에서 재배시험을 하는 상태. 빠르면 내년부터 일반 판매를 시작한다. 농진청은 이 씨앗을 상품화할 경우 국내뿐 아니라 인도,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에서 인기를 끌 것으로 내다본다.

최근 종자산업은 의약·재료산업과의 융복합 및 나노기술 접목을 통해 첨단 생명과학 기술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선진국은 종자산업을 국가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인식해 지원을 강화하고, 글로벌 거대 종자기업도 원천기술을 선점하려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다. 관련 업계 자료에 따르면 미국 종자기업 몬산토의 연구개발(R·D) 투자금은 연간 13억 달러(약 1조5000억 원) 수준. 우리나라 한 해 농식품 분야 연구개발 예산(약 1조 원)을 능가한다. 이를 바탕으로 내놓는 신품종 씨앗은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국제 환경단체인 ETC 그룹에 따르면 세계 10대 다국적기업의 종자시장 점유율은 1996년 14%에서 2007년 67%로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독자적인 품종을 개발해 세계 시장에 판매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로 평가받는다. 농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해외 로열티 지불액은 2008년 124억3000만 원, 2009년 150억5000만 원, 2010년 153억1000만 원, 2011년 172억6000만 원으로 증가하다가 지난해 163억 원으로 감소했다. 농진청은 “최근 다양한 국산 신품종이 개발되면서 우리 씨앗의 경쟁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기후변화 대비한 원천기술 개발 필요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이어지려면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기환 연구위원은 “현재 세계 종자시장은 상위 4개 기업이 유통되는 종자의 50% 이상을 공급하는 구조”라며 “종자기업의 집중화, 대형화가 계속되는 만큼 우리나라도 융·복합산업화, 수출 확대, 글로벌 종자전문기업 육성 등의 방향으로 종자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지구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세계 기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다국적 종자기업이 내(耐)재해성 식물 유전자를 선점하는 것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펴낸 ‘종자산업의 동향과 국내 종자기업 육성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몬산토 등 대형 종자기업은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투입해 가뭄, 침수, 고온, 저온 등에 견디는 능력을 지닌 식물 유전자를 탐색하고, 관련 특허를 출원하고 있다.

박기환 연구위원은 “국제기구나 NGO(비정부기구) 등을 중심으로 원래부터 생명체에 존재하던 인류 공동의 재산을 개별 기업이 소유하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유전자에 대한 특허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상황”이라며 “우리도 국제 연대 등을 통해 글로벌 기업의 특허경쟁에 대응하면서 기후변화에 대비한 원천기술 개발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최근 ‘골든 시드 프로젝트(Golden Seed Project)’를 추진하며 종자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골자는 올해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4911억 원을 투입해 금보다 비싼 수출전략형 종자 ‘골든 시드’를 개발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7월 농우바이오 등 민간업체와 충남대 등 대학, 국립식량과학원 등 국공립연구소 등 49곳을 프로젝트 연구기관으로 선정했다. 2020년까지 종자수출 2억 달러, 2030년엔 30억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정부는 또 2015년까지 전북 김제에 국립 민간육종연구단지(시드 밸리·Seed Valley)를 짓기로 하고 최근 ‘고추와 육종’ 등 20개 입주 기업을 확정했다. 우수 종자기업으로 선정된 이들 업체에는 육종 연구용 대지를 장기 임대하고 연구시설도 제공한다. 조만간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황금 씨앗’이 세계 무대에서 꽃을 피울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주간동아 2013.09.02 903호 (p24~25)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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