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5

2013.04.29

월드컵 키즈 ‘빅리그 점령 작전’

한국 축구 5인방 유럽무대서 최고 활약 기대

  • 윤태석 스포츠동아 스포츠2부 기자 sportic@donga.com

    입력2013-04-29 13:4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국 축구는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첫 동메달을 따며 새 역사를 썼다. 그 역사의 중심에는 ‘2002 한일월드컵 키즈(kids)’가 있었다.

    이들 월드컵 키즈는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 태어나 학창 시절 2002 한일월드컵을 보고 자란 세대를 일컫는다. 월드컵 키즈의 성장은 2002 한일월드컵 이후 크게 발전한 축구 인프라와 유소년 축구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의 성과다. 월드컵 키즈는 축구 선진국인 유럽무대에서도 맹활약하며 한국 축구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의 기성용(24),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 카디프시티의 김보경(24),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의 구자철(24)과 지동원(22)이 대표적이다. 분데스리가 명문 함부르크의 손흥민(21)은 런던올림픽에서는 뛰지 못했지만 최근 놀라운 활약으로 ‘제2의 차붐’이라고 불린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유럽무대에서 주축 선수로 성장하기까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점이다.

    # ‘스텝 바이 스텝’ 김보경

    ‘분데스리가의 전설’ 차범근 SBS 해설위원 이후 유럽무대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를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박지성(퀸즈 파크 레인저스)이다.



    박지성은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해 4년을 뛴 뒤 2002 한일월드컵 이후 휘스 히딩크 감독을 따라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에 진출했다. 초반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잠시 어려움을 겪었지만 보란 듯이 재기했다. 이어 2005년 여름 세계 최고의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 입단해 7년간 활약했다. 유럽의 4대 빅리그(잉글랜드,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중에서도 가장 큰 시장인 ‘꿈의 무대’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첫 한국 선수였다. 박지성은 ‘아시아(일본)→유럽 중소 리그(네덜란드)→유럽 빅리그(영국)’ 단계를 차근차근 거쳤다. 해외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의 롤모델이라 할 만하다.

    김보경은 ‘제2의 박지성’이라는 별명답게 선배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랐다. 2009년 김보경은 J리그 세레소 오사카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동안 J2(2부 리그) 오이타 트리니타에서 임대 생활을 한 뒤 다시 세레소 오사카로 복귀해 1년 반 동안 팀 에이스로 활약했다. 2012년 여름 독일과 잉글랜드 빅클럽들이 김보경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김보경은 의외의 선택을 했다. 잉글랜드 챔피언십 카디프시티에 전격 입단한 것이다. ‘스텝 바이 스텝’ 계획의 일환이었다. 김보경의 에이전트인 이반스포츠의 이영중 사장은 “잉글랜드 2부 리그에서 게임을 뛰며 적응한 후 프리미어리그 중위권 팀에 가고 나중에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수 있는 팀으로 옮기겠다는 장기 계획의 일환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계획은 결과적으로 적중했다. 카디프시티는 올 시즌 챔피언십 정상에 오르며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확정했다. 챔피언십에서 충분한 적응기를 거친 김보경은 내년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좋은 활약이 기대된다. 바야흐로 ‘포스트 박지성’ 시대가 열린 것이다.

    # 빅클럽 직행 능사 아냐

    김보경과 달리 기성용과 구자철, 지동원은 K리그에서 유럽으로 진출했다. 단, 큰 틀에서는 비슷해 보이지만 세부적으로는 차이점이 있다.

    기성용은 FC서울에서 빅리그가 아닌 유럽 중소 리그에 해당하는 스코틀랜드 셀틱으로 갔다. 유럽에서도 거칠기고 소문난 스코틀랜드에서 경험을 쌓고 빅리그로 가겠다는 복안이었다. 기성용도 셀틱에서 초반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주로 벤치를 지켰고,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을 앞두고는 경기 감각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극복해냈다. 약점이던 수비력을 보강하면서 붙박이 주전이 됐고, 결국 지난해 여름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에 입단하며 빅리그 진출의 꿈을 이뤘다.

    구자철과 지동원은 기성용과 달리 K리그에서 곧바로 빅리그로 직행했다. 구자철은 독일 볼프스부르크, 지동원은 잉글랜드 선덜랜드에 입단했다.

    이들 3명은 빅리그 적응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스코틀랜드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은 기성용은 거침이 없었다. 스완지시티에서도 곧바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 출신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축구 본고장인 잉글랜드에서 성공한 사례는 기성용이 처음이다. 반면, 빅리그 직행열차를 탄 구자철과 지동원은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언어, 문화에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둘은 다행히 ‘임대’로 돌파구를 찾았다. 나란히 독일 분데스리가 하위 팀인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됐고 서서히 출전 시간을 늘리며 적응해갔다.

    이들의 행보는 유럽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무조건 빅리그, 빅클럽을 고집하기보다 유럽 중소 리그나 2부 리그 등 중간 단계에서 충분히 적응한 뒤 본격적으로 도전하는 것이 성공 확률이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 한 편의 만화 손흥민 성장기

    월드컵 키즈 ‘빅리그 점령 작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구자철(왼쪽)과 지동원 선수.

    손흥민은 가장 독특한 사례다. 그의 성장 과정은 마치 한 편의 만화 같다. 축구선수 출신인 손흥민의 부친 손웅정 씨는 부상으로 23세 젊은 나이에 축구화를 벗었다. 춘천으로 낙향해 유소년 지도자로 새로운 길을 찾은 손 감독은 차남 손흥민을 독특한 방법으로 지도했다. 손흥민은 원주 육민관중 3학년 때야 제도권 축구에 데뷔했다. 15세가 될 때까지 아버지 밑에서 철저히 기본기를 닦았다. 축구 명문 동북고에 입학했지만 분데스리가 진출을 노리고 1학년 때 미련 없이 자퇴해 함부르크 유소년 팀에 입단해 유럽 진출 꿈을 이뤘다.

    손흥민은 18세 때 분데스리가에 데뷔해 3골을 터뜨리며 현지 언론으로부터 ‘슈퍼 탤런트(Super Talent)’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올 시즌 함부르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축 공격수로 성장했다. 그는 4월 14일(한국시간) 마인츠 원정에서 2골을 작렬하며 시즌 10, 11호 골을 기록했으며, 차범근 SBS 해설위원에 이어 분데스리가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린 두 번째 한국 선수가 됐다.

    # 유럽무대 격돌 관심

    월드컵 키즈가 내년 시즌 유럽무대에서 벌일 경쟁으로 벌써부터 분위기가 뜨겁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웨일즈의 오랜 라이벌인 기성용이 몸담은 스완지시티와 김보경이 소속된 카디프시티가 격돌한다. 둘 다 주전이 예상돼 팬들은 오랜만에 제대로 된 한국인 프리미어리그의 맞대결을 감상할 수 있을 전망이다.

    손흥민의 새 시즌 행보는 최대 관심사다. 그는 함부르크와 계약기간이 1년 남은 가운데 재계약과 이적을 놓고 고심 중이다. 유럽 언론에 따르면 토트넘, 아스널, 맨유, 첼시(이상 잉글랜드)는 물론, 인터 밀란(이탈리아)에서도 손흥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 등 독일 클럽들도 손짓을 보낸다. 손흥민이 어떤 클럽을 택할지가 올여름 이적시장의 가장 뜨거운 화두다.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아우크스부르크와 임대기간이 끝나는 지동원, 구자철의 다음 행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올 시즌 활약상으로 미뤄볼 때 어느 팀에 가든 제몫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