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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선처럼 살고 싶었지 꿈으로 그쳤지만”

시집 ‘사는 기쁨’ 펴낸 황동규 시인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신선처럼 살고 싶었지 꿈으로 그쳤지만”

“신선처럼 살고 싶었지 꿈으로 그쳤지만”
서울 동작구 사당동 20층짜리 아파트. 20년째 이 아파트 8층에 사는 황동규(75) 시인은 한 달에 한 번 사당동패 문인 5명과 만나 “지방방송(이야기 주제가 갈리는 것) 없이” 어울린다. 일주일에 한 번 문지(문학과지성사 사무실)에 들러 문우 10여 명과 “말없이 저녁을 먹다 필요할 때만 얘기하고”, 일주일에 두 번 서울대 영문학과 명예교수로서 전 직장(서울대 명예교수 4명이 사용하는 사무실)에 나가 공부한다. 그리고 1년에 5~6차례 지방 강연을 다니면서 그리워하던 풍광과 사람을 만난다. 같은 아파트 4층에 사는 99세 노모는 삶의 구심점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책을 읽고 시를 쓰는 것이다. 행여 영화 보는 재미에 빠져 글을 소홀히 할까 봐 영화관을 멀리할 정도로 엄격한 그가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는 술이다. 저술이란 노동행위를 끝낸 뒤 한잔하던 것이 습관이 됐다. 즐겨 마시는 주종은 진과 베르무트를 섞은 칵테일 마티니. 술 때문일까. 새벽 3시가 되면 소변을 보려고 일어난다. 그리고 잠결에 불현듯 뭔가가 떠오르면 지나치지 않고 메모지에 적거나 컴퓨터 모니터를 켠다.

‘이번 시집이 최고가 아닐까’

“시 쓰는 게 피곤하진 않아요. 미완성 시와 매일 만나려고 하지. 어느 피아니스트는 피아노를 하루 안 치면 자기가 알고, 이틀을 안 치면 관객이 알고, 사흘을 안 치면 전 세계가 안다고 했다는데, 내가 안 하면 누가 알겠어. 나만 알지(웃음). 시를 매일 만나지는 못하지만, 한 달에 16~17일은 미발표 시들과 만나요. 이게 은퇴 후 10년 동안 한 일이에요.”

신작 시집 ‘사는 기쁨’(문학과지성사)은 그가 4년 동안 공들인 결과다. 과거 3년에 한 번씩 시집을 내던 것에 비하면 이번엔 시일이 더 걸렸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문학과지성사 사무실에서 2월 15일에 만난 시인은 “기가 떨어져 준비 기간이 오래 걸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전력투구했다”고 자부했다. 인터뷰 시작 30분 전 도착한 시인에게서 삶에 임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이 시집이 황동규 작품 가운데 최고’라는 말을 못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 말을 꽤 여러 번 들었어요. 물론 그 말을 다 믿는 건 아니에요. 노인에 대한 예의 차원의 발언일 수 있거든. 그래도 배에서 뛰어내려야 할 때 (내 시집 중) 한 권만 가지고 가야 한다면 이걸 택할 수밖에 없을 거야. 내 시 가운데 제일 유명한 ‘즐거운 편지’도 이만큼 깊지는 않겠지.”

유명 시인 중에는 젊은 시절 쓴 시가 대표작인 경우가 많다. 10대 때 ‘즐거운 편지’를 발표한 황동규 시인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그 안에 머물지 않은 채 끊임없이 시와 만났고 노년에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시로 표현했다.

“삶이 기쁘지만은 않잖아요. 나도 신선처럼 살고 싶었어요. 진도에 가면 운림산방이라고, 신선이 살 만한 곳이 있어요. 그런 곳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내게) ‘상상력을 버리고 오라’고 하는 것 같아 안 갔어요. ‘사는 기쁨’도 그래서 썼죠. 고통 속에서 삶의 찬가를 부른 거지.”

느낌과 상상력을 비우고 마감하라는 삶의 끄트머리가/ 어찌 사납지 않으랴!/ 예찬이여, 아픔과 그리움을 부려놓는 게 신선의 길이라면/ 그 길에 한참 못 미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간간이 들리는 곳에서 말을 더듬는다./ 벗어나려다 벗어나려다 못 벗어난/ 벌레 문 자국같이 조그맣고 가려운 이 사는 기쁨/ 용서하시게’(‘사는 기쁨’ 중에서)

“이 시가 (시집에서) 가장 중요한 시예요. 인간 아픔이 없는 신선은 안 되겠다고 얘기한 거지. 실은 경남 통영에서 살고 싶었어요. 기왕이면 담 없는 주택에서. 그런데 어머니하고 와이프가 있는 한 여길 못 떠나. 두 사람 모두 생활 근거지가 여기니까. 하는 수 없이 아파트에서 살다 죽겠지. 세상 살다 보면 꿈으로 끝나는 게 어디 한두 가지야?”

현실 체념일지도 모를 감정이 긍정으로 전해지는 이유는 뭘까. 시인은 산문집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문학동네)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1950년대 중반은 정말 ‘나의 길’이 눈에 보여도 그것을 택하기가 힘들었다. 아버님은 후회 없이 살 용기만 있다면 무슨 일을 해도 좋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지금 내 자식에게도 하고 제자에게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가 나를 쓰고 있어”

“6·25전쟁이 끝나고 나니 세상이 모두 폐허였어요. 이집트처럼 장엄한 폐허가 아니라, 말 그대로 폐허였지. 명동에 가면 그야말로 똥오줌이야. 그래서 시각적 즐거움이 없다면 청각적 즐거움이라도 누리자 싶어 작곡가 꿈을 키웠어요. 그러다 우연히 내가 발성음치란 사실을 알고 접었지. 음악과 가장 비슷한 시를 택한 거예요. 좋은 문학을 읽으려면 외국어를 알아야겠다 싶어 그나마 6년 배운 영문학을 고른 거고(웃음).”

그의 아버지는 소설 ‘소나기’로 유명한 소설가 황순원. 아버지 후광 때문에 아들은 자신만의 빛을 내기 어려웠다. 도스토예프스키, 앙드레 지드, 카뮈, 셰익스피어 책을 읽는 한편, 여행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은 그만의 몸부림이었다. 첫 여행지는 광주. 문학지 ‘학원’을 통해 알게 된 광주 친구를 무작정 찾아갔다. 친구와 조우할 수 없었지만, 오며 가며 사람 사는 모습을 보고, 광주에서 좋은 영화도 봤다. 대학생 시절 소록도에 가 나병환자들 삶도 보고, 강원도 민박집에선 돈 대신 쌀을 내밀었다. 한 번은 새벽에 낙산사에 있는 초 30개에 ‘아무도 모르게’ 불을 붙여 위험한 아름다움에 취했다. 시인은 장학금을 받고 과외교사 노릇을 하며 여비를 모아 떠났고, 세상은 그때마다 너른 품으로 안아줬다.

“아버지와 아들은 체험을 공유하기 때문에 부자 모두 문인으로 입지를 세우긴 어려워요. 경험 교집합이 많은 아들은 아버지 그늘에서 자유롭기 어렵지. 그래서 아버지가 문학잡지를 읽으시면 나는 철학책, 역사책을 많이 읽었고, 아버지보다 여행을 더 즐겼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아버지 아들로 평가했는데, 그것이 가히 즐겁진 않았어요. 그래도 이제는 (나도) 어느 정도 문학적 성과를 내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은퇴 후 찾아온 비문증(시야에 모기가 날아가는 듯한 증상)은 노력에 대한 방증이다. 책을 많이 보는 대학교수 절반이 앓는다는 비문증에서 그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가 그를 다잡아줬다. 그는 “시인을 행복한 직업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건 결과론”이라면서 “나는 고민만 하다 사그라질 수 있었는데, 운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어느 날 벼락같이 시가 나한테 얘기하는 거야. ‘날면 어때’라고. 그다음부터는 시야에서 모기가 날 때마다 그 생각을 했더니 그 증상이 없어졌어요. 시가 나를 고쳐준 거지. 나는 시와 대화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를 쓴다는 말 대신 시와 만난다고 하죠. 시한테 배우는 게 있다고 봐. 시는 나보다 더 높은 삶을 요구하니까. 시가 나를 쓰고 있어.”



주간동아 876호 (p66~67)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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