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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경제와 인권은 상생 가치 박근혜 정부는 달라야 한다”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경제와 인권은 상생 가치 박근혜 정부는 달라야 한다”

“경제와 인권은 상생 가치 박근혜 정부는 달라야 한다”
안경환(65)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손꼽히는 인권전문가다. 2006년 10월부터 2009년 7월까지 제4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위원장을 지냈다.

재임기간 중 1년 2개월은 노무현 정부, 1년 5개월은 이명박 정부에 속한다. 성격이 서로 다른 두 정부에서 인권기구 수장으로 일하며 꼼꼼하게 메모를 남긴 안 교수는 그 기록을 토대로 2011년부터 월간 ‘신동아’에 회고록을 연재했다. 최근 그 글을 묶어 ‘좌우지간 인권이다’(살림터)라는 책도 펴냈다.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인권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 표지에는 초록색 바탕에 굵은 글씨로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문구가 적혔다. 그 아래엔 ‘인권은 좌(左)도 우(右)도 아니고 보수도 진보도 아닌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문장도 썼다. 안 교수가 인권위원장 퇴임 당시 이임사에서 언급한 내용이자, 평소 기회 있을 때마다 밝혀온 소신이다. 그는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인권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좋은 인권정책을 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냈다”고 했다.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 지향

“제가 일한 두 정부는 인권정책이 사뭇 달랐습니다. 인권위를 대하는 두 대통령 태도도 매우 달랐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중 한 번도 제 업무보고를 받지 않았고, 저는 끝내 대통령을 대면하지 못한 채 퇴임했어요. 그것이 대통령 개인 문제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인권과 인권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주위 사람들이 대통령을 막았기 때문일 거예요.”

그는 “당시 인권은 결코 ‘좌파’ 이슈가 아니라고 얘기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나라 인권기구가 국제사회에서 어떤 위상을 갖는지에 대해서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적어도 인권이라는 측면에서는, 국제사회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에 따르면, 인권위는 본질적으로 정부와 긴장 관계일 수밖에 없다. 주업무가 국가기관의 인권 침해를 감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양자 간 충돌이 없지 않았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NEIS)에 인권 침해 소지가 많다는 의견을 인권위가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대통령이 이에 격노했다고 들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적 자리에서는 언제나 인권위가 ‘쓴소리’를 해야 하는 기관임을 인정했다. 2003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5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얼마 전 인권위원회가 정부와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인권위원회 주장과 정부 주장이 부딪히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그야말로 당연한 현상이고, 그런 현상이 서로 존중되고 수용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연설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달랐다. 그의 회고록에는 “정권이 교체돼도 인권위 업무엔 변화가 없을 것”이라던 믿음이 서서히 깨져가는 과정이 기록돼 있다. 2008년 5월부터 전국을 뒤덮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는 인권위와 정부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다. 당시 인권위는 “촛불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과도한 무력을 사용해 시위 참가자들 인권을 침해했다”고 발표했고, 이에 정부는 인권위에 대한 특별감사와 정원 21% 축소로 대응했다.

“2009년 초 정부는 인권위 정원 208명을 164명으로 축소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원이 2% 이상 감축된 기관이 없어요. ‘괘씸죄’에 걸린 거죠.”

안 교수는 이 조치 내면에는 ‘인권위에 대한 근본적인 몰이해’가 자리한다고 설명한다. “인권위는 정부가 한 일에 대해 시민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몰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시위 과정에서 경찰도 다쳤는데 왜 시위대 편만 드느냐’고 반발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건 경찰과 검찰이 다룰 영역이죠. 촛불시위 기간 인권위에 청원이 쇄도했어요. 그중 경찰이 과도하게 시위대 인권을 침해한 부분이 있었고요. 그래서 특정 사건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지적한 겁니다.”

그러나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9년 3월 30일 인권위 업무와 인원을 축소하는 대통령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우리나라 인권위를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여기던 국제 인권단체가 한국 상황을 우려하는 공개서한을 잇달아 보내왔고,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 보고관이 현장조사를 위해 서울을 찾기도 했다. 안 교수는 이 일을 ‘국제적 수치’라고 회고했다.

인권위에 대한 근본적 몰이해

“경제와 인권은 상생 가치 박근혜 정부는 달라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틈날 때마다 ‘국격’을 얘기했지만, 정작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높은 위상을 가진 나라인지 잘 몰랐어요. 우리나라는 경제후진국에서 벗어나자마자 곧 민주화 선진국 문턱에 진입한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각별한 관심을 받고 있었죠. 우리나라 인권위는 2010년 3월 유엔 회원국 국가인권기구들로 구성된 국제조정위원회(ICC) 의장국이 되기로 사실상 정해진 상태였고요. 당시 제가 ICC 부의장을 맡아 그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세계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예요.”

안 교수는 인권위 축소를 막으려고 대통령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까지 청구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감원 대상을 정해 명단을 발표한 날 인권위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려 “제 육십 평생에 가장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았습니다. 누구를 선택하기도, 버리기도 힘든 인사권자로서 ‘사람은 운명 아래서만 죽을 수 있다’는 비장한 수사를 떠올리게 됩니다”라며 고통스러운 심경을 토로했다. 이 작업을 마친 뒤인 6월 30일 안 교수는 사직서를 제출했고, 7월 8일 사임했다. 인권위원장 3년 임기를 넉 달 남겨둔 상태였다. 그가 당시 발표한 이임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법이 보장한 임기 만료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앞서 물러나기로 결심한 사유는… 정부의 지원 아래 새로 취임할 후임자로 하여금 그동안 심각하게 손상된 국제사회에서의 한국 인권의 위상을 회복하고 인권 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할 전기를 마련해드리고 싶은 강렬한 소망과 충정 때문입니다.”

안 교수는 “내가 인권위 기구 축소에 항의하는 뜻에서 사표를 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인권위 독립성 수호를 위해 기관장이 임기를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물러난 이유는 후임자가 이듬해 3월 열릴 ICC 의장 선거를 충실히 준비하도록 돕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가 좋은 후임자를 임명하면 그가 한국 인권위 대표로서 ICC 의장이 되도록 지원하는 것이 내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했다”는 설명이다. 이미 정부와의 공식 소통 창구가 막힌 상태였지만 여러 통로를 통해 이런 뜻을 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 교수 후임으로 국제인권학계에서 신인이나 다름없는 인물이 정해졌고, 그는 ‘인력과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ICC 의장 선거 출마를 포기했다.

“나의 나라 사랑, 나의 인권 사랑은 도박이었다. 프로 벽창호를 상대로 한, 당초부터 무모한 나의 도박은 처참하게 실패했고, 나는 마지막 넉 달을 참아내지 못하고 좌절 속에 중도하차한 비겁한 위원장이 되고 말았다.”

안 교수의 회고록 내용이다. 그가 인권위 비화를 집필하기로 결심한 건 이때부터다. 차기 정부에서는 인권과 인권위에 대한 몰이해가 반복돼선 안 된다는 전임자로서의 사명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평소 “지위와 신분이 보장된 교수의 책무 가운데 하나는 정부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을 제기하는 것이라 믿는다. 역대 어느 정권 창출에도 직접 또는 간접으로 기여한 바 없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던 그가 지난 대통령선거(대선)에서 민주통합당 새정치위원장을 맡아 문재인 후보 지원 활동을 한 배경에도 이때의 참담함이 놓여 있다. 당시 정치 참여 이유를 “이명박 정부가 연장되면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밝혔던 안 교수는 “50일짜리 기간제 임시직이라는 마음으로 대선에 임했다. 선거가 끝나면 결과에 관계없이 연구실로 돌아올 생각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선거 이후 야권에서 들려온 여러 하마평에도 그는 연구실을 지키고 있다.

‘국민 어머니’ ‘국민 누님’ 되길

안 교수는 “인권위 관련 사안들로 수년간 언론에 오르내렸지만, 나는 평생 법학자로 살았고, 인문학적 주제로 집필을 계속해왔다. 회고록 출간을 계기로 내 삶에서 ‘인권위’ 부분을 마무리 짓고, 이제는 학자이자 서생인 본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이 책은 “새 정부에 ‘중립적 처지에서’ 한국 인권 상황과 인권위 문제를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설명이다.

안 교수가 전직 인권위원장으로 박근혜 정부에 전하려는 고언은 이명박 정부의 실수를 답습하지 말라는 것. 그는 “이명박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때로 실제 이상의 비판을 받았다. 내용 전달을 잘못하거나 태도가 문제였던 경우가 많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운동 중 나주 어린이 성폭력 사건을 언급하며 ‘사형제가 필요하다’고 했다는 언론 기사를 봤는데, 그런 발언도 국제사회에서 비판받는 빌미가 될 수 있다. 현재 세계 문명국가는 사형제를 폐지하는 추세다. 유럽연합(EU)은 사형제 폐지를 가입 전제 조건으로 삼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역시 15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2007년부터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됐는데, 이제 와 다시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것인가. 박 대통령 말은 세계에 ‘한국 인권이 후퇴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줄 수 있다. 이제는 국내 정치뿐 아니라 국제사회 흐름까지 유념해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불어 “배려 미덕을 발휘해 여러 자식 가운데 못난 자식에게 더 마음을 주는 ‘국민 어머니’ ‘국민 누님’이 되길 바란다”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청년에 관심을 두고 국정을 이끌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빈다. 유신시대 정치관이나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을 극복하고, 진정한 선진국이 그러하듯 경제와 인권은 서로 상극이 아니라 상생 가치임을 입증해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을 쏟아냈지만, 사실 안 교수는 세간에서 분류하는 ‘좌파’와 거리가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인권위원장에 임명됐을 때 일부 언론과 시민사회단체가 ‘보수인사’라는 이유로 반대했을 정도다. “지식인의 기본 색깔은 회색”이라고 여기는 그는 ‘참여연대’에 적을 둔 채 ‘조선일보’에 고정 칼럼을 썼을 만큼 유연한 태도를 견지해왔다. 스스로 말하듯 “낭만주의자, 자유주의자”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정년퇴임하는 그는 요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고삐를 조이고 있다. 마지막 강의가 될 ‘인권사상사’ 수업 준비에 몰두 중이다. 이슬람과 아프리카 등 비서구 지역 인권에 대한 것으로,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다. 서울대 도서관 자료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연구 활동을 하자는 마음으로 집필에도 매진한다. 퇴임 전까지 한국 현대사 한 인물과 미국 판사에 대한 전기를 완성하고, 널리 알려진 고전 교양도서를 새로운 시각에서 번역, 해제를 더한 책도 출간할 계획이다.



주간동아 876호 (p44~46)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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