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6

2013.02.25

코리아 명품에 홀딱 반했어!

국내 장인들 손 거친 고품질·고품격 제품 세계인 사로잡아

  • 이윤진 객원기자 nestra@naver.com

    입력2013-02-25 09: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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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 명품에 홀딱 반했어!
    어느 순간부터 ‘명품’은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벗어나 단순히 ‘고가 해외 브랜드 제품’을 가리키는 단어로 전락했다. 그 결과 한국 소비자를 ‘봉’으로 여기는 해외 브랜드들과 ‘명품’이라는 단어만 붙으면 품질이나 본인 경제력에 관계없이 무조건 동경하는 속없는 소비자가 양산되면서 명품과 명품 소비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됐다.

    하지만 명품은 분명 많은 미덕을 지닌다. 경쟁에 의한 부(富) 축적을 권장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부여를 미덕으로 삼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명품은 동경 대상이자 자기표현의 한 수단이며, 궁극적인 미 형태로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소비자 기대에 부응하려고 늘 최상의 디자인과 품질을 유지해 브랜드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명품 제작자들은 결과적으로 시장을 이끄는 선구자 구실을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극소수 명품 브랜드 소속 유명 디자이너가 패션시장 트렌드를 이끄는 것이니, 명품 없이는 패션시장 자체가 유지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수많은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이탈리아, 프랑스가 세계 패션시장을 선도하는 사실을 감안하면 영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모자·백·화장품 등 호평 쏟아져

    확실히 한국은 명품 불모지였다. 이탈리아, 프랑스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 기술자에게 일감을 맡길 정도로 ‘제조’ 분야에선 세계 최고 기술과 실력을 자랑하지만, 정작 자체 제작을 할 만한 능력과 ‘브랜드’가 없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에서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해외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유명 패션하우스에서 실력을 쌓은 디자이너들이 이끄는 브랜드가 호평받으면서 해외 브랜드 일변도의 명품시장에서 ‘made in Korea’ 제품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대표적 브랜드가 모자 전문 브랜드 ‘루이엘’이다. 루이엘의 디자인을 담당하는 천순임 실장은 프랑스 파리 모자전문학교 CMT(Cours Modeliste Toiliste)를 졸업하고, 아시아인 최초로 최고 모자 장인에게 부여하는 모디스트(modiste·모자 제작인) 칭호를 받은 실력파 디자이너다. 그런 그가 고국으로 돌아와 남편 조현종 씨와 함께 설립한 ㈜샤뽀의 브랜드 루이엘은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에서도 유럽 모자 브랜드를 뛰어넘는 호평을 받으며 그 품질을 인정받는다.

    순수 국내파 장인이 이끄는 브랜드 중에서도 ‘명품’을 찾을 수 있다. 최근 ‘박근혜 백’으로 입소문을 탄 ‘호미가’가 대표적이다. 스페인어로 ‘일개미’를 뜻하는 호미가의 주력 상품은 악어백과 타조백 등 특수 가죽으로 만든 가방류다. 가방 장인 경력 35년을 자랑하며 평생을 일개미처럼 살아온 정윤호 대표와 악어백 하나 제작에 닷새가 걸리는 복잡하고 섬세한 수작업 공정을 정성스레 해내는 호미가의 가방 장인들이 만들어낸 백은 별다른 홍보 없이 ‘강남 사모님’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국산 명품에 등극했다.

    나전칠기 장인 윤태성 씨가 만든 나전칠기 가구는 일본에서 더 유명한 명품으로 꼽힌다. 1980~90년대 강남 사모님의 혼수 필수품으로 꼽히면서 인기를 끈 윤씨는 2000년대 들어 전통 나전칠기 방식만을 고집하는 소량 생산으로 제작방식을 바꾸고, ‘제품이 완성되기까지 기다림을 견딜 수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제품 제작에 들어갔다. 그 결과, 지금은 일본 최고 부촌으로 꼽히는 아자부, 유서 깊은 가문이 즐비한 가마쿠라에서도 주문이 들어오는 등 일본 부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해외에서 먼저 명품으로 인정한 경우도 있다. 바로 아모레퍼시픽이다. 아모레퍼시픽은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편이지만 미국, 유럽, 일본 화장품에 비해 다소 ‘처지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브랜드 가치뿐 아니라 기능 면에서도 한수 아래로 여겨지던 아모레퍼시픽은 2002년 미국 뉴욕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자사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미국 시장에서 승부수를 띄웠다.

    천연성분에 관심이 높은 미국 시장을 공략하려고 녹차 성분을 강화한 제품을 내놓는 등 품질관리에 힘을 쏟은 결과 시에나 밀러, 우마 서먼, 힐러리 더프 등을 비롯한 다수의 할리우드 스타가 아모레퍼시픽 스파나 제품을 이용할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얻으면서 명품 화장품 대열에 합류했다.

    이 밖에도 세계적 패션스쿨인 영국 런던 센트럴세인트마틴을 졸업한 스티브 J(정혁서)와 런던 칼리지 오브 패션을 졸업한 요니 P(배승연) 부부가 만드는 ‘스티브 J · 요니 P’ 의류, 독특한 색감 및 디자인과 높은 품질로 젊은 여성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끄는 국산 백 브랜드 ‘쿠론’ ‘브루노말리’, 그리고 뉴욕, 상하이에 진출해 호평받는 화장품 브랜드 ‘닥터자르트’가 한국 명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코리아 명품에 홀딱 반했어!
    수입 브랜드 ‘봉’ 노릇은 이제 그만

    명품에 대한 책 ‘명품의 조건 : 샤넬에서 스와치까지 브랜드에 숨은 예술 이야기’(아트북스) 저자 조혜덕 씨는 명품 조건으로 “사랑이 있을 것, 완벽함을 추구할 것, 자유를 탐닉할 것, 환상에 빠져들 만큼 상상력이 있을 것”을 꼽는다. 조현종 ㈜샤뽀 대표는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더 내걸었다. 바로 ‘제품과 브랜드 전통’이다.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에르메스, 티파니 같은 서구 명품 브랜드처럼 진정한 명품으로 인정받으려면 오랜 기간에 걸쳐 제품을 완성하고, 그만큼 다양한 세대와 계층에게서 사랑받으면서 브랜드 가치를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앞에서 소개한 한국 명품들은 분명 명품 조건을 빠짐없이 갖췄지만, 만들어진 지 10~20년밖에 되지 않아 ‘전통’을 논하긴 어렵다. 브랜드 자체 전통도 짧지만, 그 브랜드가 앞으로 얼마만큼 이어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 것. 그러니 정확히 말하자면 앞서 언급한 브랜드들은 ‘명품’보다 ‘명품 후보’ 내지 ‘명품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브랜드’인 셈이다.

    조 대표는 “루이엘이 명품으로 불리기엔 역사가 짧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브랜드 전통은 소비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랜드 하나를 명품으로 만들려면 제조자와 소비자가 브랜드 정신을 공유하고 함께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그의 강변을 통해 명품 탄생에서 소비자 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명품’은 업계 트렌드를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힘을 지닌다. 그런 ‘절대반지’를 해외 업체만 독점하게 하는 건 장기적 관점에서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게 분명하다. 국산과 해외산에 얽힌 선입견을 걷어내고, 국산 브랜드에만 유독 ‘원가’를 따지면서 대대적인 할인가를 원하는 욕심을 없애보자. 이탈리아, 프랑스 사람들이 제품 진가를 알아보고 지속적으로 지지를 보내면서 함께 전통을 쌓아온 것처럼, 우리도 한국산 명품 브랜드를 발굴해 세계적인 제품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언제까지나 ‘명품 소비국’으로 ‘봉’ 노릇이나 하며 지갑을 털리는 것보다 훨씬 더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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