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6

2013.02.25

“변화와 개혁 방향타 국가전략부터 세워라!”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국가전략원 신설 고려해볼 만”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3-02-22 18: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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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와 개혁 방향타 국가전략부터 세워라!”
    박세일(65)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 5년은 변화와 개혁의 시대”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조광조 같은 개혁 인사를 폭넓게 발탁하고, 국가전략원을 만들어 장기 국가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글자 한 자 못 고친다는 자세’에서 벗어나 국가전략을 갖고 정책 우선순위에 따라 공약 이행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 박근혜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는 무엇이라 보나.

    “과제를 논하려면 현 상황부터 파악해야 한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국가전략이 표류한다는 점이다. 국가전략이 없는 정치, 국정운영이 가장 큰 문제다.”

    ▼ 국가전략이 표류한다?

    “우리는 민주화 과정에서 원심력은 강화됐지만 구심력은 약화됐다. 그럼 국민도, 사회도 각자 이익만 추구한다. 국가의 장기 이익을 고민하지 않는다. 민주화시대 1단계가 지나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국가전략은 표류한다. 생각해보라. 정파적 갈등과 대립, 포퓰리즘에 빠져 국가 본래 이익을 고민하는 정치가 없어진다. 통일은 가까이 오는데 한국 정치는 통일을 관리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대외정책을 보자.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했다. 그럼 북핵 위기를 극복하고 통일시대를 여는, 분단 고착화를 막을 국가전략이 있나. 역대 정부의 대북 유화·강경책은 모두 분단 관리, 현상 유지가 목표였다. 대북 유화론자나 강경론자 주장 모두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대안이 못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은 핵무기가 없고, 만들 능력도 없다’고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 (2006년 1차) 핵실험은 방어용’이라고 했다. 수세적 분단 관리 아닌가. 보수는 압박을 통해 해결하려 하지만, 이 또한 현상 유지고 소극적 분단 관리다. 이명박 정부 역시 원칙을 갖고 대응한 건 좋았지만, 주목적은 분단 관리였다. 북한 체제 변화까지 염두에 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북핵 문제는 풀 수 없다. 3차 핵실험은 이러한 양측 주장이 의미 없다는 걸 보여줬다. 장기 국가전략이 필요하다.”

    국가전략형 정치 시스템 정착을

    ▼ 장기 국가전략이라….

    “북핵 억제책도 없고 북한 행동을 바꿀 수 없다면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를 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통일 문제로 귀결된다. 그럼 우리의 인적, 조직적 역량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버웰 벨 전 한미연합사령관을 만났더니 그는 ‘한국은 전면전 전략은 있지만 (북한) 급변사태 전략은 거의 없다’고 하더라. 동북아 급변사태 개연성을 포함한 국가전략을 먼저 준비해야 한다.”

    ▼ 대내적으로는?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는 세계적 문제이지만, 신문을 보거나 세미나에 참석해봐도 종합적인 정책 제시가 없다. 박 대통령이 복지를 강조하는데, 이는 저성장 문제를 외면하면 풀 수 없다. 양극화를 줄이면서도 성장을 촉진해 일자리 창출과 연결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를 만들어낼 국가전략도, 비전을 가진 정치인도 없다. 대중영합적 복지만 말할 뿐, 풀기 힘든 저성장 문제를 다루려 하지 않는다. 큰 문제다.”

    ▼ 정치인을 싹 바꿔야 하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앞서 말한 대내외적 문제를 풀려면 정당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는 붕당(朋黨)구조 아니었나. 붕당구조를 공당(公黨)구조로 바꾸고 가치 정당을 만들어 ‘국가전략형 정치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

    중국사회과학원 같은 기능 필요

    “변화와 개혁 방향타 국가전략부터 세워라!”
    ▼ 국가전략형 정치 시스템?

    “그렇다. 국가전략을 고민하고 제안하는 시스템을 만들려면 국민통합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헌법과 역사에 대한 존경을 중심으로 국민 간, 여야 간 가치 통합부터 해나가야 한다.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등을 소중히 해야 한다. 최근 길에서 만난 초등학생에게 ‘이승만 대통령 아니?’ 하고 물으니 ‘독재자’라고 하더라. 그 사람 일생에서 그런 시절도 있지만, 일생 중 상당 기간은 대한민국 독립과 6·25전쟁 극복을 위해 많은 일을 하면서 보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일생을 볼 때 잘한 것이 7이고 잘못한 것이 3(功七過三)’이라고 정리했다. 이런 식으로 사실에 기초한 균형적인 역사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통합되고 정치 시스템도 만들 수 있다.”

    그가 말한 박근혜 정부의 우선순위는 △북핵 극복과 통일 노력 △저성장과 양극화 해결 △국민통합을 바탕으로 한 국가전략형 정치 시스템 구축으로 요약된다. 산학협력, 기술개발 같은 문제는 내각에 맡기고 대통령은 ‘크게 놀라’는 뜻이었다. 그에겐 미안하지만, 새 정부 국가전략을 설명하는 그는 무척 신난 초등학생 같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면 그가 꿈꾸는 신세계가 금방이라도 펼쳐질 것처럼 말이다. 그의 책략은 계속됐다.

    “그럼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나가느냐. 국가전략원을 만들어야 한다. 산업화시대에는 경제 중심의 국가전략을 짤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만들었다. 지금은 외교·국방·통일, 경제·산업·문화·예술, 이 모든 분야의 공통 전략을 짤 국가전략원이 필요하다.”

    ▼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가 국가전략원과 비슷한 구실을 하지 않겠나. 정부출연연구원도 있고.

    “글쎄, 미래부는 과학과 연구개발이 중심인데…. 이는 국가전략 가운데 일부다. 정부출연연구원에서 일하는 학자도 1000명은 넘을 거다. 그런데 각자 분야별, 부처별 정책에만 열중한다. 주요 국가전략을 짜려면 외교·안보·통일 전략이 바로서야 하고, 그것을 위해 교육·과학 분야는 어떻게 맞춰가야 하며, 복지나 삶의 질 구조는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종합적 전략을 세워야 한다.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중국사회과학원 같은 기능을 하도록 기존 정부출연연구원을 통합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그래서 국가전략을 연구하게 하고, 연구 결과를 여야 의원과 언론사, 시민단체 지도자들에게 브리핑한 뒤 논의를 거쳐 전략을 추진하는 게 옳다. 그러면 국민통합도 쉬워진다.”

    ▼ 박 대통령이 내놓은 공약 중 대표적인 복지 분야는 어떻게 보나.

    “공약을 지키려는 기본자세와 책임감은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과도한 부분은 수정 보완해야 한다. 복지 확대와 증세 없는 복지, 재정건전성 유지, 이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순 없다. (박 대통령은) 약속은 지키되 우선순위를 조정해 합리적 복지가 되게 해야 한다. ‘글자 한 자도 고칠 수 없다’는 자세는 안 된다. 각 부처에 속한 훌륭한 인재들이 우선순위를 조정해 좋은 대안을 마련하면 (박 대통령도) 수용하리라 본다.”

    ▼ 결국 인사와 조직이 하는데, 박근혜 정부 조각은 어떻게 평가하나.

    “글쎄… 인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국가전략형 인사는 보이지 않는다.”

    ▼ 국가전략형 인사라면 박 이사장이 적격 아닌가.

    “아이고, 그건 아니고(웃음). 박 대통령은 나라를 사랑하고 정치인으로서 장점도 많다. 하지만 국가전략 개념은 전문성도 필요하고 주위에서 도와야 한다. 지금은 개혁과 변화 시대다. 현상 관리 시대가 아니다. 따라서 안팎에서 자신을 보완할 국가전략 인재, 개혁 세력을 찾아야 한다. 주변에 고려 서희, 조선 이이나 조광조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은 자신을 보조해줄 사람보다 자신을 보완해줄 인재를 찾아야 한다. 그것도 넓게. 그래서 집중적으로 ‘돌파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그는 딱 2년 전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 인사에 대해 “보수 정권이라 해도 인사는 합리적 진보를 포함해 그 분야 최고 전문가로 진용을 갖춰야 했는데, 인재풀이 너무 작다. 특정 학교와 교회, 혹은 인연 중심의 인사가 많아지면서 국가 전체도, 보수도 아우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지금까지 정치지도자들은 국가전략을 고민하지 않았다고 보나.

    “정치를 하게 된 계기가 공적 목표보다 사적 이유가 많았기 때문이다. 과거 산업화·민주화 시대를 지나 이제는 국가 경영 시대다. 국가적 과제를 풀면서 보람을 느끼는 정치인이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정당은 확고한 가치와 이념, 정책을 가지고 모인 가치집단이 아니다. 붕당, 사당, 이익집단이다. 그러니 가치와 정책을 소홀히 취급하고, 국민은 정치에 불신을 갖는다.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는 민생 때문 아닌가. 민생을 풀려면 정책을 소중히 다뤄야 하는데, 이러한 한국적 붕당 상황에서는 정치인이 정책을 액세서리로 생각한다. 이는 국민을 액세서리로 보는 것과 같다. 정당 개혁, 그리고 국가전략형 정치 시스템을 시급히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정책을 액세서리 취급하는 정치인

    ▼ 그래서 직접 정치에 뛰어들고 정책 정당을 만들었나.

    “나는 평생 국가가 나아갈 길을 공부한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국가를 정의롭고 풍요롭게 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이를 실현하려고 정치에 뛰어들었는데 수도 분할이라는, 국가 발전에 역행하는 모습을 봤다. 스스로 합리화가 안 됐다. 여야 모두 수도 분할을 찬성하지만 ‘누군가는 아니라고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국회를 나왔다. 해방 후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은 이제 서서히 문제점이 불거질 거다. 이런 포퓰리즘을 극복하려면 국가전략형 정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 국민생각이라는 당을 만들어 지난해 4·11총선에 나섰는데.

    “많이 부족했다. 부끄럽고, 반성도 했다. 그래도 17만여 명이 국민생각을 지지했다. 중도를 키워 좌우 극한 세력을 견제하려 했다. 안철수 전 대통령선거(대선) 후보, 정운찬 전 총리와도 함께하려 했는데 잘 안 됐다.”

    지난해 초에는 ‘안철수 교수가 정치를 한다면 우리와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12월에는 박근혜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안 전 후보 목표는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를 묶는 새로운 정치 세력 조직화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처음에 같이하려 했는데 안 교수는 손에 흙을 묻히려고 하지 않더라. 처음부터 한나라당은 안 된다고 해서 중도가 아니구나 했다. 여야로부터 영입 작업을 하는데 신당(국민생각)행을 막으려는 세력도 있었고…. 나도 할 말은 많다. 국론이 분열될까 봐 말을 안 하지만 시대가 지나면 국민도 다 알게 된다.”

    ▼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지지한 이유인가.

    “당시 문재인, 안철수 후보 단일화가 결정적이었다. 양쪽 대북정책 자료를 다 읽어봤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현충원에서 특정 대통령 묘소만 참배하고, (제주) 강정마을에 가서 자신들이 추진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후보를 보면서 세상을 모르는 건지, 잘못된 생각을 가진 건지 걱정이 컸다. 나라 앞날이 크게 걱정됐다. 국내외에서도 누구를 지지할지 의견을 표명해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박세일 이사장은…

    서울대 법대 교수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발탁해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을 지냈다. 2004년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이던 시절 제17대 총선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으로 좌초 위기에 놓인 당을 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05년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세종시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포퓰리즘의 전형’이라고 비판하며 여의도를 떠났다. 이후 ‘보수 싱크탱크’ 한반도선진화재단을 만들어 선진화와 통일에 대해 연구했고, 2012년 1월 대(大)중도신당을 표방한 ‘국민생각’을 창당해 4·11총선에 뛰어들었지만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정당 지지율 득표에서도 등록취소요건(2%)에 못 미친 0.73%를 얻어 정당 등록이 취소됐다. 하지만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선진화와 통일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등 범(凡)보수 세력이 차용하면서 여전히 현실정치인 입에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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