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표절하냐” vs “업무방해 고소”

드라마 ‘아이리스2’ 제작 앞두고 표절공방 2라운드

  • 이윤진 객원기자 nestra@naver.com

    입력2012-10-22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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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표절하냐” vs “업무방해 고소”

    ‘아이리스2’ 제작사에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힌 박철주 작가.

    9월 19일 태원엔터테인먼트(이하 태원)는 드라마 ‘아이리스2’ 캐스팅을 확정 짓고 장혁, 이다해, 오연수, 임수향, 김민종, 다니엘 헤니와 ‘아이리스’ 원조 멤버인 김영철, 김승우 등 톱스타 출연진을 발표했다. 이어 23일에는 공동연출자로 표민수·김태훈 PD, 24일에는 카라 강지영, 엠블랙 이준을 포함한 2차 캐스팅 라인을 발표하면서 화려한 볼거리를 예고했다. 10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아이리스2’에 대해 KBS에선 2013년 2월 편성을 검토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이리스2’ 제작발표와 관련해 마냥 반가운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리스’가 1999년 출간한 자신의 소설 ‘후지산은 태양이 뜨지 않는다’를 무단으로 표절했다며 2009년 12월 제작사 태원과 작가 김현준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던 박철주 작가가 ‘아이리스2’의 제작발표 소식을 듣고 표절에 대해 민사소송을 제기할 뜻을 공표하면서 ‘2차 소송전’에 돌입한 것이다.

    박 작가는 10월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표절한 작품으로 또다시 작품을 만드는 것은 2차 표절”이라며 “표절에 대한 반성 없이 연속해서 표절작품을 생산해내려는 ‘아이리스’ 제작팀의 계획을 사전에 저지하고 막기 위해 ‘아이리스2‘ 근간이 되는 ‘아이리스‘에 대해 다시 고소를 제기한다”면서 법적으로 표절시비를 가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민사소송 제기하겠다”

    이에 대해 태원 측은 15일 보도자료를 배포해 “‘아이리스’ 표절 주장은 표절과 상관없다는 검찰의 무혐의 결정과 항고에서조차 무혐의를 받은 내용”이라며, “그 저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이는 당사를 해코지하려는 소행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내용”이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어 박 작가에 대해선 “그동안 표절시비를 통해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었어도 그냥 넘어갔다”면서 “터무니없는 이유로 업무를 방해하는 만큼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등 형사고소를 통해 법에 의한 강경한 대처를 해나갈 방침”이라며 법적대응을 예고했다.



    박 작가가 ‘아이리스’가 자신의 저서 ‘후지산은 태양이 뜨지 않는다’를 162군데에 걸쳐 무단 도용했다고 주장하며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시작한 소송 시비는, 태원 측이 밝힌 대로 검찰 측의 무혐의 판정으로 기각된 바 있다. 재판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는 승산 없는 싸움을 또다시 시작하는 셈이다. 이미 결과가 나온 문제를 3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박 작가는 “‘아이리스’가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고 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격려를 받기 때문에 아무리 표절한 작품이라 해도 절대 기소 및 재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인의 만류가 있었다”면서 “이미 표절 무혐의 결정을 내려놓고 억지 논리와 주장으로 수사를 몰고 가는 느낌”이 든다며 조사과정에 의혹이 있었음을 내비쳤다. 납득할 수 없는 판결로 창작물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기에 ‘아이리스’가 방송된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안에서 표절시비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것이다.

    박 작가는 드라마 속 인물 설정, 상황 묘사와 줄거리가 자신의 소설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태원 관계자는 전화통화를 통해 “자꾸 설정문제를 걸고 나오는데 그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며 박 작가의 주장을 일축했다. 과연 박 작가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설정’을 놓고 ‘자신의 창작물’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일까.

    “또다시 표절하냐” vs “업무방해 고소”

    표절시비 관련 자료.

    박 작가는 소설 속 설정에 대해 “해군장교로 재직한 내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창작물”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최초로 ‘군첩보소설’이라는 장르를 표방한 작품인 만큼 군 관련 설정이 많이 들어가는데, 대부분 해군 부함장으로 재직할 당시의 경험과 주위 동료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한 것들”이라며 “드라마 각본을 쓴 김현준 씨가 드라마 설정들을 ‘자신의 창작물’이라고 주장하려면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군사기밀에 가까운 군 관련 설정들을 어디에서 참고했는지 출처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작가가 표절이 확실하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또 있다. 바로 국문학계 원로인 김병욱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문학평론가)의 감정평가다. 소송이 한창 진행되던 2010년 2월 김 명예교수는 ‘아이리스’가 소설 ‘후지산은 태양이 뜨지 않는다’를 표절했다는 결론의 감정평가를 내렸다. 김 명예교수는 감정결과서에서 “작품 전체 줄거리를 살펴보면 ‘아이리스’는 내용 일부분에서 ‘후지산은 태양이 뜨지 않는다’와 전후가 바뀌어 있으나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차이가 없다”며 “지명과 인물만 달리할 뿐 포괄적인 줄거리에서는 ‘후지산은 태양이 뜨지 않는다’와의 동일성이 그대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아이리스’가 ‘후지산은 태양이 뜨지 않는다’를 표절했음이 명확하다”며 박 작가의 손을 들어줬다.

    박 작가는 “검찰 결정은 전문가의 감정결과에 완전히 위배되는 내용이었다”면서 “이번 소송에선 공정성을 기하려고 외부 감정기관에 감정을 의뢰해 정확한 감정결과를 얻어낼 것”이라며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화제작들 어김없이 표절 시비

    2009년 소송을 제기한 이후 박 작가에 대해 “드라마 인기에 편승해 책을 팔아먹으려는 의도”라는 누리꾼의 악플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그 책은 이미 절판됐다”며 “절판된 책을 따로 구해서 팔 수도 없고 전업작가도 아니니 노이즈 마케팅으로 이득을 볼 이유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그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는 “지난 3년간 심하게 마음고생을 했기 때문에 이번 소송을 통해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명예회복을 하고 싶은 바람”이라면서 “드라마 제작과정에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표절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번에는 끝까지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사실 인기 드라마를 둘러싼 표절 공방은 ‘아이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태왕사신기’ ‘선덕여왕’ ‘49일’ ‘스타일’ ‘최후의 사랑’ ‘신의’ ‘다섯손가락’ 등 최근 몇 년 동안 화제작으로 떠오른 작품들은 어김없이 표절의혹을 받았다. 논란이 된 내용을 살펴보면 일부 억지스러운 주장도 있지만 일반인의 눈으로도 표절이 의심되는 부분을 상당수 발견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드라마작가는 “시청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견디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짜집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외국 드라마나 만화, 소설, 인터넷 에피소드 등을 들고 와 ‘적당히 짜깁기하라’고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소송에 들어가지 않은 만큼 결과를 예측하긴 어렵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법원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든 그 판결은 표절을 둘러싼 업계 인식을 좌우할 중요한 잣대가 되리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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