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7

2012.10.08

“친환경 종이컵, 우린 몰라”

구매 의무화 규정에도 공공기관에선 사용률 0%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2-10-08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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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환경 종이컵, 우린 몰라”
    “추석에는 일회용 종이컵이 말도 못할 정도로 많이 나온다. 주말에는 하루 평균 50kg이 족히 나오니까 명절에는 더 배출될 거다. 우리 휴게소만 해도 아이스크림, 구운 감자, 타코야키, 토스트, 떡볶이, 꼬치어묵, 치킨, 팝콘, 김밥, 커피를 담기 위해 종이컵을 쓰는데 우리보다 품목이 더 다양한 휴게소는 종이컵을 더 많이 쓰지 않겠나.”(휴게소 관리자 A씨)

    경기도에 위치한 한 고속도로 휴게소. 전국 172개 고속도로 휴게소 가운데 영업실적이 중간에 속하는 이곳은 하루 1만여 명이 방문한다. 기자가 이곳을 찾은 9월 25일은 평일인데도 방문객이 많아 분리수거함에 종이컵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휴게소 관리자 A씨는 “전국 평균치에 속하는 우리 휴게소에서 하루 25kg씩 나오니까 전국 172개 휴게소에서 하루에 배출하는 종이컵은 4300kg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휴게소 뒤편에는 성인 키만한 비닐봉지 서너 개에 종이컵이 가득 담겨 있었다.

    문제는 종이컵 대부분이 알려진 것과 달리 폐기 처리된다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분리수거된 종이컵은 펄프 함량이 높아 제지공장에서 파쇄 과정을 거쳐 펄프로 재탄생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종이컵은 오염물이 묻은 채 버려지는 경우가 많아 재활용하기 어렵다. 종이컵을 수거할 때 부피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도 재활용을 방해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다음은 이 휴게소에서 종이컵을 수거하는 재활용품 수거 업체 대표의 말이다.

    재활용률 1%… 대부분 소각장으로

    “종이컵에는 음식물뿐 아니라 담뱃재, 침 등이 묻어 있어 종이컵만 따로 수거하기는 어렵다. 종이컵을 깨끗이 씻었다고 해도 수거 비용이 많이 든다. 5t 차에 일반 파지는 3t 정도 실을 수 있는 반면 종이컵은 700kg밖에 못 싣는다. 종이 1kg에 60원을 쳐주니까 5t 차 한 대에 4만2000원어치 종이를 운반하는 셈인데 누가 그 돈 받자고 종이컵을 회수하겠나. 이런 이유로 종이컵 재활용률은 1%도 안 되고 대부분 소각장으로 간다.”



    이처럼 재활용되지 못한 종이컵은 소각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업계 관계자들은 “종이를 태울 때 이산화탄소가 발생할 뿐 아니라 폴리에틸렌으로 코팅한 종이컵을 태울 때 화학적 냄새가 나는 것만 봐도 유해성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폴리에틸렌으로 코팅한 종이컵 자체의 유해성 여부에 대해서만 알려졌을 뿐 폴리에틸렌으로 코팅한 종이컵의 소각 유해성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없다. 다만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일회용 종이컵을 코팅할 때 쓰는 폴리에틸렌이 녹는 온도는 105~110℃인 반면 물이 끓는 온도는 100℃이기 때문에 끓는 물에는 폴리에틸렌이 녹지 않아 위험하지 않지만 튀김, 순대 등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종이컵에 담아 전자레인지에서 데우면 폴리에틸렌이 녹거나 벗겨질 수 있다”고 경고할 뿐이다.

    정부는 자원소모량을 줄이려고 2002년부터 일회용 종이컵 보증금 제도를 시행한 바 있다. 패스트푸드점과 테이크아웃 커피점 등 18개 업체가 자발적 협약 형태로 참여해 소비자가 일회용 종이컵을 원할 경우 환경부담금 50~100원씩 받고 종이컵을 반납하면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자원 낭비를 방지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종이컵 회수율이 낮은 데다, 소비자에게 보증금을 부과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이 제도를 2008년에 폐지했다.

    이후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시행하면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제한하고 있지만 이 또한 유명무실하다. 법에는 일회용품 사용을 억제하도록 명시했지만 ‘혼례, 회갑연, 상례에 참석한 조문객, 하객 등에게 음식물을 제공하는 경우’ ‘음식물을 배달하거나 고객이 음식물을 가져가는 경우’ ‘자동판매기를 통해 음식물을 판매하는 경우’ ‘그 밖에 특별자치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이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해 인정하는 경우’ 등에 일회용품 사용을 허가하며 사실상 일회용품의 무분별한 사용을 묵인하는 상황이다. 설사 사업장이 협약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해도 간담회를 열어 재활용을 독려하는 것 외에 마땅한 규제 수단이 없다.

    다만 정부는 ‘녹색제품 구매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공공기관의 녹색제품, 즉 환경표지 인증제품 구매를 의무화하고, 공공기관 산하의 다중집합시설(휴게소, 공항, 철도 등)에 친환경녹색인증 일회용품 구매촉진 협조를 요청하면서 ‘일회용품 사용에 따른 폐해를 줄이기 위한 대안 찾기’에 나선 상태다. 굳이 일회용품을 사용해야 한다면 환경적으로 덜 유해한 녹색제품을 사용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가령 폴리에틸렌으로 코팅한 일반 종이컵이 썩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친환경 인증을 받은 종이컵의 경우 생분해되는 자연 추출물로 코팅해 60일이면 저절로 썩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유해하다.

    “친환경 종이컵, 우린 몰라”

    추석 연휴가 끝난 10월 2일 서울역에 사람들이 버린 일회용 종이컵이 쌓여 있다.

    일회용품 사용 제한 실효성 없어

    하지만 ‘녹색제품 구매촉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다고 해도 처벌받지 않을뿐더러, 법률에 ‘그 밖에 긴급한 수요의 발생 등 불가피한 사유로 인해 녹색제품의 구매가 어렵다고 공공기관의 장이 판단하는 경우’는 녹색제품 구매 의무를 지우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해놓아 법 강제성은 없는 셈이다. 그야말로 정부는 일회용품 사용 가이드라인만 제시할 뿐 실효성 있는 방안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친환경 종이컵 가격이 일반 종이컵에 비해 비싸기 때문인지 공공기관 가운데 친환경 종이컵을 사용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다만 사기업인 신한은행이 친환경기업을 표방하면서 전 지점에서 친환경 종이컵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사무총장은 “원칙적으로 일회용 종이컵 사용에 따른 환경오염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부가 일반인의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제한할 수 없다면 가능한 친환경 제품을 ‘여러 번’ 사용하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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