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1

2012.06.11

왜 미국 무기만 선택하는가

한미동맹에 발목 잡힌 세계 최고의 ‘무기 종속성’

  •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jongchoi@yonsei.ac.kr

    입력2012-06-11 09: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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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미국 무기만 선택하는가

    한미공군의 맥스썬더 훈련기간인 5월 15일 가상공중전이 끝난 뒤 박신규 공군작전사령관(왼쪽)과 주아스 미7공군사령관이 대화하고 있다.

    14조 원에 달하는 외국산 무기 도입 사업이 2012년 결정된다. 이명박 정권 말기에 추진되는 대형 무기 도입 사업에는 공군 차기전투기(약 8조2000억 원), 공군 KF-16 전투기 성능개량(1조8052억 원), 육군 대형 헬기(약 1조8384억 원), 해군 해상작전헬기(약 5538억 원), 공군 고고도 무인정찰기(약 5000억 원)가 포함되며, 계약금만 총 14조 원에 이른다.

    이 금액은 2011년 국방예산(31조4000억 원)의 3분의 1을 넘을 뿐 아니라, 미국 2011회계연도 무기 수출액 461억 달러(약 50조 원)의 30%에 가깝다. 국제공항평가 세계 1위인 인천공항의 2단계 사업까지 들어간 비용이 총 8조7241억 원임을 감안하면 대형 무기 도입 사업예산은 실로 큰 액수이며 이는 고스란히 국민 세금으로 집행된다. 게다가 실제 도입과정에서는 그 비용이 20조 원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美 무기의 43% 한국에 수출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통상국가다. 내수시장보다 해외시장 확대를 통한 수출 증대로 지속적인 성장을 모색하고 있으며 2010년 412억 달러, 2011년 333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따라서 수출 경쟁력은 대한민국의 심장과도 같다. 수출 경쟁력이 강해질수록 한국의 성장동력은 그만큼 강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첨단 정보기술(IT), 철강, 조선, 자동차 기술 강국인 한국이 유독 무기시장에서만큼은 매우 비정상적인 수입 국가의 모습을 보인다.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펴낸 ‘2011 국제무기거래 경향’에 따르면, 아시아와 오세아니아가 2007~2011년 세계 재래식 무기 거래량의 44%를 차지했으며, 특히 한국이 세계 무기 수입 거래의 6%를 차지했다. 이는 2003~2007년 세계 5위 무기 수입국이던 한국이 2007~2011년에는 2위로 껑충 뛰어올랐음을 뜻한다.



    이 통계를 유심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 무기 수출시장의 30%를 차지하는 미국은 자국의 무기 수출량 가운데 43%를 한국에 수출한다. 한국은 수입 무기의 74%를 미국에서 들여온다. 2010년 한국 정부는 무기 도입에 사용한 예산 1조2373억 원 가운데 9822억 원을 미국에 지급했다. 또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65억3000만 달러어치의 미국 무기를 수입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세계 4위 규모다.

    이 수치는 각종 정비 지원과 후속 부품 지원 등을 제외하고 장비 도입액만 계산한 것으로, 실제 금액은 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예를 들어 F-15 전투기를 한국 공군에 공급한 보잉사는 2002~2008년 10조 원에 이르는 판매실적을 올렸다. 그 밖에 통합정밀직격탄(JDAM)과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SLAM-ER) 도입 계약을 통해 수천억 원대의 영업실적을 기록했다.

    대미(對美)무역에서 100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할 정도로 우리가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지만, 유독 무기시장에서만큼은 장비 도입, 무기 운용과정, 기술 개발 등 모든 면에서 미국에 종속됐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어떠한 무기제품도 수입하지 않는다. 엄청난 무역 불균형인 셈이다.

    최첨단 산업 기술력을 보유한 한국이 왜 무기시장에서는 기형적 대미의존성을 보이는가. 국제 무기시장에서 세계 2위 수입국일 정도로 큰손인 한국이 왜 거래량의 75%에 달하는 독점적 거래를 미국에 용인하는가. 이러한 상황은 한국 방산업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무기 수입국의 다변화는 불가능한 것일까.

    한국의 대미 무기종속을 거론하면 일종의 필연론을 그 원인으로 지적하곤 한다. ‘미국과 동맹관계로서 미국산 무기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런데 미국과 동맹관계인 국가들이 미국산 무기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전투기 무기체계를 예로 들면, 사실상 100% 미국에 의존하는 우리와 달리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독일,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는 유럽산 전투기와 미국 전투기를 동시에 전략화해 사용한다.

    더욱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도 단일화한 전투자산보다 다변화한 전투자산을 냉전 시기부터 전력화했는데, 이는 우리의 필연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한국의 대미 무기 수입 종속에는 한미동맹이라는 요소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같은 동맹환경 속에서도 무기 도입의 다변화와 생산 국산화를 추진한 유럽의 경우를 상기해볼 때 한국적 특수성과 함께 무기 수입의 보편성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한번 도입한 무기체계 계속 사용

    왜 미국 무기만 선택하는가

    F-35.

    군사동맹관계, 특히 한미동맹처럼 한쪽의 전력 의존도가 높은 비대칭 동맹관계에서는 미군과의 상호운영성(inter-operability)을 중시한다. 즉 미군에 크게 의존하는 전력과 통신, 데이터링크, 무기체계 및 훈련체계가 유사하고 상호호환적일 때 동맹전투력이 강화된다는 논리다. 따라서 안보동맹의 수혜자인 한국의 경우 미국의 전력체계와 동일성 혹은 유사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러한 상호운영성에 기초한 미국 무기의 필연성은 대미 무기의존이라는 강력한 경로종속성을 탄생시킨다. 이로 인해 다른 국가의 무기체계를 고려하는 시도는 견고한 정서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특히 전투기와 공격형 헬기 같은 항공자산은 정보 분석, 자체방어체계, 소요무기체계가 입체적으로 작동할 때 최대의 전투력을 발휘한다. 초기에 도입한 항공전력을 다른 생산자의 기종이나 체계로 전환하기란 경제적, 군사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한번 도입한 무기체계를 계속 사용하고자 하는 타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무기체계를 수입할 때는 수명주기비용을 고려한다. 30년간 소요되는 부품, 수리, 운영비 등이 이에 해당한다. 대미 무기의존도가 높은 이유는 한번 무기를 수입하면 상당 기간 그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형 무기 도입 사업이 진행될 때마다 등장하는 ‘정책적 고려’란 한미연합작전 능력과 무기체계의 호환성, 그리고 외교적 요소를 고려했다는 뜻이다. 이러한 경로종속성은 강력한 무기의존성을 창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럽의 경우를 보더라도 NATO 체제 내에서 유럽산 지상, 항공 무기체계가 미국산 무기와 여러 면에서 상호운영성을 적절히 유지하며 전력화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상호운영성과 무기체계의 다변화가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한국적 특수성은 대형 무기 도입 사업에서 미국 군산복합체의 강력하고도 전방위적인 로비가 존재한다는 점으로도 나타난다. 동맹강화론을 앞세운 미국의 주요 정책 결정자들이 직접 한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미 군수업체 사장단은 한국을 방문할 때 생산공장이 있는 주의 상하원 의원을 대동한다. 동행한 정치인은 한국 대통령이나 장관급 인사들과의 면담을 통해 자국 무기 구매를 노골적으로 요청한다.

    또한 한미 정례 안보협의회 같은 양자 공식회담에서 미국 고위 관리가 “한국의 무기 도입 사업은 미국으로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식으로 언급하면서 은근히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더욱이 주한미군사령관이 “급격히 증가하는 북한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한미동맹의 군사적 운영 측면에서 상호운영성은 매우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상기하면 한국 처지에선 미국산 무기를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최근 방중(訪中) 후 귀국길에 잠시 한국을 방문한 미 국방부 장관은 “중국의 스텔스 전력이 상당히 위협적이니 한국도 스텔스 능력이 있는 5세대 전투기가 필요하다”고 우리 측 최고위층에게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이 군수업체-행정부-의회의 복합적 로비와 압력은 한국 정부를 전방위로 압박한다. 이처럼 새로운 무기 공급자가 한국시장에 진입하기엔 너무나 많은 정치적 장벽이 있어 무기 수입의 다변화가 어려운 실정이다.

    선진국에서 최첨단무기를 수입하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기술력을 습득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우리의 민간산업은 제품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기술을 습득했다. 그런데 군수 분야에서는 공급자와 구매자 간 사전협의 없이는 이러한 기술이전이 불가능하다.

    미국은 정부보장판매방식(FMS)을 통해 첨단무기의 주요 부분을 직접 관리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우리에게 많은 무기를 수출했다. 현재 한국의 주력 전투기인 F-16의 최첨단 레이더 장비 타이거아이는 우리 공군이 수리할 수 없고 분해도 하지 못한다. 이는 내가 구입한 자동차 엔진을 내 마음대로 열어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 미국 무기만 선택하는가

    F-16.

    구매자는 철저히 실리 따져야

    더욱이 미국 군산업체들의 독과점체제는 한국과의 절충교역 비율, 즉 기술이전 비율을 낮게 책정해 한국으로의 주요 기술이전을 어렵게 한다. 어차피 미국산 무기를 구입할 수밖에 없는 한국에 기술이전을 해줄 동기가 없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방위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독과점체제의 폐해는 기술력 수혜가 어려운 데 그치지 않는다. 현재 미국의 원천기술을 적용한 한국산 방산무기는 수출이 금지됐거나 미국으로부터 사전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한미 간에 체결한 ‘방산 로열티 협정’인데, 사실상 한국 방위산업의 수출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많은 사람이 14조 원대 무기 도입이라는 대형 국책사업이 정권 말기에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가장 큰 사업은 약 8조20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공군의 차기전투기 도입이다. 이는 전투기 가격일 뿐 이후 소요될 수명주기비용과 기타 파생비용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은 우리의 맹방이다. 따라서 ‘정책적’ 고려라는 이름의 ‘정치적’ 고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대형 무기 도입 사업은 대한민국 안보를 위한 국책사업이며, 국민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점이다. 전투기가 우리 영공을 비행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국민의 혈세 덕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은 안보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최소 비용으로 최적의 안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처럼 무기 도입 사업은 우리의 국방력 강화를 위한 것인 만큼 특정 국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안을 우리 측에서 자진해 내놓을 이유가 없다. 어떠한 무기를 어느 국가로부터 구매하든, 구매자 처지에서 실리를 철저히 따져보고 한반도 전략환경에 적합한 것을 충분히 획득할 때 우리의 안보환경은 최적화된다. 즉 무기체계 선정 및 계약 단계에서부터 우리 안보의 현재와 미래를 복합적으로 고려해 최적의 조건을 확보해야 할 의무가 정부에 있는 것이다.

    더욱이 미래 방산사업에도 도움이 되는 기술이전 문제와 국산 방산제품의 대응구매 요구는 중요한 고려 사항이 돼야 한다. 우리 정부가 대형 무기를 도입할 때 미국산이 아닌 다른 공급자를 선택함으로써 얻을 경제적, 기술적 실리가 미국산 무기를 포기함으로써 생기는 군사·외교적 손실을 능가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한 대미 무기종속체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미국산 무기의존도가 어쩔 수 없다는 필연론은 정서적 장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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