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6

2011.10.04

샤라포바가 ‘나쁜 모델’이라고?

인간의 뇌 엿보는 ‘뉴로마케팅’의 세계…광고부터 가격 결정, 판매까지 무궁무진 영역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1-10-04 09: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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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라포바가 ‘나쁜 모델’이라고?

    마리아 샤라포바.

    하루에도 수백 개 상품이 시장에 쏟아진다. 그중 살아남는 것은 극소수다.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고객의 뇌 속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뉴로마케팅(Neuro-marketing)’은 소비자의 뇌를 들여다보면서 소비자의 의식 너머 무의식과 잠재의식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이를 마케팅에 활용한다. 이대열 예일대 신경과학과 교수는 “뇌를 지배하는 자가 경제를 지배한다. 심리학과 의학뿐 아니라, 경제학에서도 뇌과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뉴로마케팅 전략을 세우려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뇌 내부의 변화를 포착하는 것은 기본. 시선추적(eye-tracking), 심리검사, 동선추적, 생체신호 등 뉴로마케팅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뉴로마케팅이 한국에 상륙한 것은 4년 전으로 지금까지 기아자동차, LG전자, 삼성전자, 나이키 같은 대기업이 뉴로마케팅을 이용해 마케팅 전략을 수립, 큰 성과를 거뒀다.

    뇌과학은 선택이 아닌 생존 필수

    KT·G 자회사인 KGC라이프앤진은 올 9월 홍삼 함유 스킨케어 화장품을 출시했다. 그런데 스킨케어 화장품은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어서 “부드러워요” “기름져요” 같은 설문 대상 소비자의 ‘말’만으로 기능을 검증하는 데 한계가 있다. 실제 화장품을 발랐을 때 기분이 어떤지, 감정 변화가 어떤지, 얼굴 어느 부위가 불편한지 등을 과학적, 객관적으로 측정해야 한다.

    뉴로마케팅 리서치 전문기관 브레인앤드리서치(Brain·Research)는‘소비자가 생각하는 좋은 피부란 무엇인가’를 시선추적을 통해 조사하기로 하고 먼저 화면에 6명의 얼굴을 띄워놓은 뒤 표본 대상 50명에게 “누구의 피부가 좋은가”를 물었다.



    그러자 말로 의견을 표시했을 때는 응답자의 50.8%가 ‘볼을 보고 판단한다’고 했고 그다음은 눈(32.8%), 이마(7.0%), 코(5.8%) 순이었다. 그런데 화면에 6명의 얼굴을 띄워놓고 응답자 시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동공 크기와 심장박동 등은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파악하니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 39%가 화면 얼굴의 눈을 보고 좋은 피부를 선택한 것이다. 볼을 보고 좋은 피부를 선택한 응답자는 9.7%에 불과했다.

    다음은 뇌파를 이용해 어떤 스킨케어 화장품을 쓸 때 심리적 안정감이 높고 스트레스가 적은지를 측정했다. 뇌파에는 알파파와 베타파가 있는데, 알파파가 높으면 편안하고 베타파가 낮으면 스트레스가 많다. KGC라이프앤진은 이 결과를 토대로 화장품 속 홍삼과 기타 성분의 비율을 조절했다.

    제품 가격을 정하는 데도 뉴로마케팅을 이용한다. CJ오쇼핑은 중국에 진출할 때 어느 가격대로 제품을 판매해야 좋을지 고민했다. 브레인앤드리서치는 중국인 표본을 설정해 fMRI 조사를 펼쳤다. 이 조사는 가격을 불러줬을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브레인앤드리서치는 fMRI 조사를 통해 중국인 소비자는 150위안(약 2만5000원) 이하는 ‘문제가 있는 싸구려 상품’이라 인식하고, 340위안(5만7000원) 이상은 ‘너무 비싸다’고 여긴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150~340위안 정도여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CJ오쇼핑은 당시 제품 선정에 뉴로마케팅 분석 결과를 반영했으며, 현재 중국에 진출한 대형 유통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 중이다.

    윌리엄스가 홍보 효과 훨씬 커

    샤라포바가 ‘나쁜 모델’이라고?
    광고 제작에도 뉴로마케팅을 이용한다. 시청자의 시선 움직임에 따라 제품 노출 위치를 정하고, 시청자의 집중도에 따라 광고모델 노출 시간도 조정한다. 2008년 배우 한예슬이 나왔던 맥주 ‘카스레몬’ 광고를 분석한 결과가 흥미롭다. 오비맥주는 천연 레몬과즙을 함유한 카스레몬을 출시하면서 ‘짜릿하게 트위스트’라는 콘셉트로 광고를 만들었다. 광고는 클럽에서 배우 한예슬이 신나는 음악에 맞춰 트위스트 춤을 추는 내용이다. 한예슬은 오비맥주가 대규모 설문조사를 벌인 후 선정한 모델이었다. 서구적인 외모의 한예슬이 짧은 치마를 입고 경쾌하게 몸을 흔드는 모습은 인터넷 등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 광고를 뉴로마케팅 측면에서 분석하면 그리 좋은 광고는 아니다. 브레인앤드리서치가 이 광고 영상에 대한 남녀 시선을 추적한 결과 △맥주병이 등장했을 때 ‘카스’라는 로고에 시선이 가지 않고 분산되며 △한예슬 등 배우가 병으로 건배할 때 시선 대부분이 맥주병이 아닌 배우 얼굴에 쏠리고(특히 남성 소비자가 심함) △한예슬이 맥주를 마신 뒤 내려놓는 장면에서는 병을 보는 시선이 0%에 가까웠다. 즉, 모델에 대한 집중도가 너무 높아 오히려 제품 홍보 효과는 없었던 것.

    나이키 광고 역시 뉴로마케팅의 재미있는 사례다. 나이키는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마리야 샤라포바와 세리나 윌리엄스를 광고모델로 기용했다. 특히 샤라포바는 실력에 미모까지 겸비해 인기가 높다. 나이키는 2010년 샤라포바와 7000만 달러(약 756억 원)에 종신계약을 맺었다.

    샤라포바가 ‘나쁜 모델’이라고?

    ‘카스’ 광고(위)에서는 한예슬의 얼굴에 시선이 가는 반면 ‘아이포드’ 광고에서는 제품에 눈길이 간다.

    그렇다면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더 나이키 홍보에 도움이 될까. 단순히 생각하면 예쁘고 인기 많은 샤라포바가 더 놓은 광고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브레인앤드리서치의 연구 결과는 달랐다. 시선추적을 한 결과, 샤라포바가 나오는 광고는 얼굴 시선점유율이 74%였고, 모자에 달린 나이키 로고는 4%만 시선을 받았다. 반면 윌리엄스가 나오는 광고는 얼굴 시선점유율이 36%에 불과했지만 모자에 붙은 나이키 로고 시선점유율은 15%에 달했다. 허리춤의 나이키 로고도 샤라포바의 경우 14% 노출에 그친 반면, 윌리엄스는 29%였다. 결국 두 모델 가운데 브랜드를 효율적으로 홍보한 광고모델은 윌리엄스인 셈.

    뉴로마케팅이 아직 확고히 자리 잡은 상태는 아니다. 박정민 브레인앤드리서치 사업부 팀장은 “기존 마케팅과 상충할 때 뉴로마케팅 분석 결과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박정현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뉴로마케팅은 소비자의 뇌에서 어떠한 영역이 활발한 반응을 보이는지를 알려줄 뿐, 사고하는 내용까지는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윤리적 문제를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뉴로마케팅을 통해 인간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엿보고, 기업이 이를 바탕으로 소비자 심리를 조작할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또 실험이 대부분 100명 이하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결과가 지엽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설문 등 기존 마케팅 조사방법을 시행하면서 뇌 영상, 뇌파 조사, 시선추적 등 뉴로마케팅을 접목해 통합적으로 분석한다면 통찰력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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