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6

2011.10.04

금융위기 먹구름 … 한국은 이겨낼까?

유럽 국가 파국 위험성 점점 고조 … 경제 주체들 ‘위기’ 공감대 형성이 중요

  •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juwon@hri.co.kr

    입력2011-10-04 09: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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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위기 먹구름 … 한국은 이겨낼까?

    9월 23일 서울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최근 국내 금융시장이 대혼란을 겪고 있다. 주가는 폭락하고 환율은 급등하는 등 화마(火魔)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이러한 금융시장의 분위기는 어디선가 본 듯 낯설지 않다. 불과 3년 전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바로 이러했다. 누구도 예측지 못했던 대혼란이었다.

    불과 3년 전과 비슷한 상황

    2008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한국 경제는 큰 문제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하반기에 이르러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면서 경제는 곤두박질쳤고, 급기야 2008년 4분기에서 이듬해인 2009년 2분기까지 3분기 동안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저성장 선진국에서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한국 같은 중진국의 성장률이 그렇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이때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작은 나라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2008년 경제위기를 촉발한 것은 전적으로 대외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별로 잘못한 것이 없는데 태풍이 몰아쳐 땀 흘려 일궈놓은 농작물을 모두 쓸어간 꼴이었다.

    주지하다시피 2008년 금융위기는 당시로서는 생소하기 그지없는 미국의 작은 부동산시장 서브프라임(subprime)에서 출발했다. 미국 전체 부동산시장에서 서브프라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미약했기 때문에 초기만 해도 이 시장의 붕괴가 가져올 파괴력이 어느 정도일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작은 찻잔이 깨지는 것만으로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탐욕 때문이었다.

    금융시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실물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경제를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원활하게 활동하는 데 꼭 필요한 영양분과 산소는 돈이고, 이를 구석구석까지 고루 전달하는 혈관이 바로 금융시장이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금융기관은 돈을 찾아 다니는 하이에나처럼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었다.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고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몰려들었다. 파생상품으로 얽히고설킨 금융시스템은 어느 한 곳에서만 문제가 생겨도 시장 자체가 멈춰 서버리는 공멸적인 구조를 배태했다. 바로 그것이 파국을 부른 원인이었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서브프라임 시장이 붕괴하면서 페니 매이(Fannie Mae), 프레디 맥(Freddie Mac) 같은 연방 모기지 회사가 줄줄이 쓰러졌다. 파도는 도미노처럼 베어 스턴스(Bear Stearns), AIG,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등 미국 내 대형 금융기관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는 국제 금융시장의 붕괴로 이어졌고 세계 실물경제에 빙하기가 도래했다. 세계 경제성장률은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5.4%에서 2008년 2.8%, 2009년 -0.7%까지 추락했다.

    현재로 돌아와 보자. 2011년 하반기에 닥친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의 위기를 통상 글로벌 재정위기라고 부른다. 두 위기가 현상적으로는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시작은 사뭇 다르다. 2008년 위기가 부동산 경기 급락에 따른 금융기관 디폴트에서 출발했다면, 지금의 위기는 경제가 감내할 수 없는 재정적자와 대외부채로 국가 단위의 디폴트 가능성이 높아진 데서 출발했다. 이에 해당하는 국가가 흔히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라 부르는 나라다.

    또한 파산의 파급 경로와 범위도 다르다. 3년 전 금융위기가 대부분 미국 내 금융기관에 그쳤다면, 현재는 국경을 넘어섰다. PIIGS 뿐 아니라 이들 국가의 국채를 매입한 프랑스 등 유럽 내 견실한 국가에도 부실의 먹구름이 몰려들 우려가 큰 것이다.

    8월 현재 외환보유고 3122억 달러

    금융위기 먹구름 … 한국은 이겨낼까?
    이렇게 보면 지금 유럽 국가의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 역시 탐욕 때문이다. 2008년 위기가 금융기관의 탐욕이 원인이었다면, 글로벌 재정위기는 정부와 정치인의 탐욕에서 비롯했다. 어느 나라든 유권자는 일을 적게 하고 복지는 더 많이 누리기를 원한다. 항상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은 이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권력을 잡으려면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포퓰리즘 정책의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경제가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의 감내 수준을 넘어 정부 지출이 늘어나고 부채가 증가하면서, 결국 PIIGS는 디폴트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의 상황 전개와 관련해 2008년보다 더 우려스럽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미국 정부라는 사태 수습 주체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나설 엄두를 내지 않는다. 미국조차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했고, 향후 10년 동안 사회보장예산 감축과 증세 등을 통해 3조 달러 이상의 재정적자를 보전해야 하는 처지다. 시장과 경제를 안정시키려면 해결 주체가 분명해야 하고 서로 일정 부분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선진국 간 공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결 방안을 모색할 가능성은 점점 더 멀어져가는 듯하다.

    가장 궁금한 것은 우리의 사정이다. 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체력은 과연 어떤가. 먼저 최악의 시나리오인 국가 디폴트 확률을 점검해보자. 국가 디폴트 문제는 1998년 외환위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현재 한국의 대외 채권과 채무관계, 외환보유고 등이 적정한지를 따져보면 되는 것이다. 2011년 8월 말 현재 외환보유고는 3122억 달러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3월 말의 2642억 달러보다 많다. 그러나 한국처럼 대외의존도와 금융시장 개방도가 높은 국가의 경우 유입돼 쌓이는 외환은 증가 추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

    따져봐야 할 것은 현재의 외환보유고가 지금의 위기 국면에서 고갈될 소지가 있는지다. 외환이 들고나는 주요 통로는 크게 무역과 대외채권채무, 증권투자로 나뉜다. 국가 디폴트는 극단적인 상황이므로 들어오는 외환은 배제하고 단기간에 빠져나갈 수 있는 경우만 계산해보자. 한국의 3개월 수입액과 단기외채를 합할 경우 현재의 외환보유고 3122억 달러는 적정 외환보유액인 2848억 달러보다 274억 달러 많다. 다시 말해 당장 외환 디폴트가 벌어질 확률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외환 디폴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금융시장의 혼란이 지속될 소지를 따져보자. 이 경우 한국 금융시장에 들어온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까지 고려해야 한다.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 이후 8월부터 9월 27일 현재까지 외국인은 국내 증권시장에서 약 1조5000억 원을 순매도했다. 채권시장에서는 6조 원 넘게 사들였지만 주식시장에서는 7조6000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사실 1조5000억 원은 그리 큰 규모가 아니다. 원·달러 환율을 1100원으로 계산할 경우 14억 달러 안팎에 불과하다.

    환율 때문에 외환 쏟아붓기 자제를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외국인이 국내 증권시장에서 빠져나가려고 할 경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를 보면 2008년 한 해 동안 외국인은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서 총 22조 원을 순매도했고, 주식시장에서만 42조 원을 팔아치웠다. 이 매도자금 중 실제 해외로 빠져나간 금액은 259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때의 사례만 놓고 보면 외국인 자금은 아직 빠져나갈 여지가 큰 것이다. 특히 현재 들어온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 5000억 달러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1500억 달러 내외가 유럽계 자금으로 추정된다. 유럽발(發) 재정위기가 심화할 경우 이 자금이 어떻게 움직일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듯 외국인 증권투자금 중 순식간에 빠져나갈 소지가 큰 자금의 규모까지 고려하면, 넓은 의미에서의 적정 외환보유고 수준은 무역이나 대외채무만을 고려한 적정 외환보유고보다 1000억 달러가 많은 3800억 달러 수준까지 높아진다. 현재의 실제 외환보유고로는 크게 모자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예외적으로 극단적인 경우를 가정한 것이고 무역과 외채, 외국인 증권투자 세 부문이 동시에 한국 금융시장을 괴롭힐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외 불안과 혼란이 지속될 경우 금융시장에 참여하는 사람은 바로 그와 같은 ‘예외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다. 주가는 과도하게 내리고 환율은 예상을 넘어 상승한다. 불안감에 시달린 내국인 또한 달러화를 미리 사놓을 수 있고, 가격 변동성이 큰 시장 상황을 기회 삼아 ‘한몫 잡겠다’는 심리가 팽배하기도 한다.

    만약 지금 한국이 보유한 외환이 조 달러 단위라면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현재 상황 같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외환보유고 수준은 2008년 경우처럼 국가 디폴트를 방어할 수는 있지만 금융시장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뜻이다.

    어차피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대외 요인 변화에 따라 시장 상황이 흘러갈 거라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하다. 바로 심리적 안정이다. 환율에 대한 미시적 고민은 버리고 더 큰 틀을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외환 관련 정책이나 정보의 투명성을 높여 시장 심리를 안정시켜 달러화 사재기 같은 투기적 가수요의 발생을 막는 데 주력해야 한다. 특히 선제적인 통화 스왑 확대를 통해 예비 외환보유고를 확충하는 작업에 힘써야 한다. 3년 전 우리 금융당국이 주요국과 체결한 통화 스왑이 시장 안정에 큰 도움을 주었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환율을 잡아보겠다며 많지도 않은 외환을 쏟아붓는 어리석은 행위는 2008년 한 번이면 족하다. 외국인이 주가 하락에 따라 입게 될 투자 손실과 환율 상승으로 인해 입을 환차손을 우리가 보전해주는 꼴이 돼서는 곤란하다.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려 하면 내버려두는 대신 막대한 손실을 함께 떠안고 가게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위기’라는 인식을 정부와 기업, 가계의 모든 경제 주체가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나가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국자들이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나쁘지 않고 금융시장은 안전하며 외환보유고는 충분하다”고 말할 때마다 그 옛날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주가는 폭락하고 환율은 뛰어오르는 3년 전의 공포영화가 다시 방영되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걱정을 멈출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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