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9

2017.03.15

사회

대통령 수사 넘겨받은 검찰의 딜레마

지지세력 반발 등 수사 외적 부담 커져…대기업 ‘독박’ 가능성도

  •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입력2017-03-13 18: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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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외부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사법 정의를 추구하고 싶지만, 지휘부는 그렇게 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3월 10일 헌법재판소(헌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한 직후 검찰 조직 내부에서는 김수남 검찰총장을 위시한 수뇌부의 말에 촉각을 세우는 모습이 역력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한 검사는 “박영수 특검에 넘긴 사건을 도로 받았지만 이번에는 지휘부가 칼을 빼들라고 지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특검팀으로부터 ‘최순실 게이트’ 수사 기록을 넘겨받아 검토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 검사도 그 같은 심경의 일면을 보였다. 노 차장은 3월 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특검에 3개월 있다 다시 돌아온 사건을 맡은 소회를 말해달라”는 질문을 받고 “열심히 해야겠지만 (소회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처럼 검찰이 고민하는 이유는 지난해 특검에 이 사건을 넘길 당시와는 달리 대통령이 탄핵됐다는 엄청난 상황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법적 잣대로만 이 사건을 처리하기에는 버거운 상태가 된 것이다.

    탄핵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헌법 제84조에 명시된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은 검찰의 부담으로 작용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특검에 넘기기 전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했다. 검찰의 1차 수사 결과는 대통령 탄핵소추의 중대한 사유가 됐다. 그런데 헌재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전 이 사건이 검찰로 다시 넘어왔다. 특수본이 특검으로부터 넘겨받은 수사 기록만 10만 쪽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우병우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의 비위 의혹 관련 자료가 각각 약 2만 쪽, 삼성 뇌물공여 관련 자료가 약 3만 쪽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 수사, 가라앉지 않을 파장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수사를 언젠가는 매듭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 시기와 상황에 따라 수사 옵션과 파장은 크게 갈린다.

    헌재 결정 전 검찰이 쓰던 카드는 박 전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대면조사를 받는 것이었다. 불소추특권을 가진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강제 수사권을 동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검찰의 부담도 적은 편이었다. 대면조사가 이뤄졌다면 검찰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최초 대면조사라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민간인 신분으로 바뀐 3월 10일 이후에는 이 카드를 더는 쓰기 어렵다.

    탄핵안 인용 결정으로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체포나 구속 등 강제 수사력을 동원해 재판에 넘길 수 있다. 이 경우 수사 외적 변수가 검찰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박 전 대통령 지지세력과 반대세력 간 갈등이나 국론 분열, 탄핵안 인용 결정 이후 대선 국면이 그 예들이다. 검찰 한 고위 간부는 “수사팀이 2004년 5월 이인제 전 자유민주연합 의원 지지자들의 가스통 농성 같은 사태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자금 수수 의혹을 받던 이인제 의원은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체포영장 강제 집행에 맞서 충남 논산시의 의원 사무실에서 지지자 50여 명과 함께 사무실 정문에 차량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가스통과 석유통 등을 곁에 둔 채 농성을 벌였다.

    이른바 ‘태극기집회’에 참가하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등도 검찰의 법 집행에 강력하게 반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이인제 지지자들보다 규모가 훨씬 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심하게 반발할 수 있기 때문에 검찰이 강제 수사 카드를 꺼내기 어렵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서울동부지방검찰청장을 지낸 석동현 변호사는 “헌재 결정 뒤 진행되는 검찰 수사는 아무리 사법적 공정성을 내세운다 해서 본질적으로는 정치적 성격을 벗어나기 어렵다”며 이 같은 전망에 동감했다. 헌재가 정치적으로 재단한 사건을 검찰이 두 번째로 수사하는 만큼 검찰의 형벌권 행사도 그 같은 사정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박 전 대통령 지지자를 중심으로 한 정치 세력의 반발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거세질 수 있고, 검찰 수사에 따른 여론 분열과 국정 불안정은 검찰이 감당하기 힘든 지경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국민 통합 차원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합의할 경우 검찰이 박 전 대통령 수사를 피해갈 가능성도 남아 있기는 하다.



    우병우 전 수석 전담팀 구성

    검찰이 곧바로 박 전 대통령 수사 카드를 꺼내기 힘든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대통령선거(대선) 때문이다. 60일 이내  대선을 치러야 하는데, 그사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 이는 선거판에서 폭풍을 일으킬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 경우 검찰 수사가 자유로운 후보 선택권을 방해한다는 목소리가 불거질 수 있다. 특수본 관계자도 “박 전 대통령 조사가 대선에 미칠 영향을 검찰이 무시한 채 강제 조사를 진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헌재 결정 이후 대선이 끝날 때까지는 박 전 대통령 수사가 중단되거나 소강 국면을 맞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그렇지만 박 전 대통령 반대세력이 촛불집회 등을 통해 “박 전 대통령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고 압박할 경우 검찰도 수사를 늦출 명분을 찾기 쉽지 않다. 검찰은 우 전 수석이나 대기업 수사를 대대적으로 먼저 할 공산이 크다.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는 곧바로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수본 내부에서 우 전 수석을 전담하는 수사팀이 꾸려진 데다 가족회사 정강의 불투명한 자금 입금 명세 자료도 특검에서 검찰로 넘어간 상태다.

    이번 검찰 수사의 초기 단계에선 박 전 대통령보다 특검의 칼날을 피한 대기업들이 상대적으로 홍역을 치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출연금을 낸 대기업 가운데 삼성그룹만 특검의 집중 공세를 받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뇌물 공여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삼성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도 기소됐다.

    그러나 이번 검찰 수사에서 칼날을 피하기 어려운 대기업은 SK그룹, 롯데그룹, CJ그룹이다. SK는 최순실의 재단 설립에 111억 원을 출연하고 그 대가로 최태원 회장이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한 뒤 K스포츠재단에 70억 원을 기부하고 다시 돌려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CJ는 이재현 회장의 사면을 두고 청와대와 거래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CJ는 박근혜 정부의 역점 사업인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 1조4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한 대가로 사면을 받았는지 여부가 검찰 수사에서 가려질 예정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대기업 수사가 초반에는 박 전 대통령 수사처럼 저속 모드로 가다 여론 동향에 따라 대대적인 압수수색이나 총수 재소환 같은 카드가 재등장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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