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9

2017.03.15

안보

김한솔 망명 공작, 逆공작, 逆用공작

김한솔 동영상 유튜브 공개 둘러싼 남북한, 중국의 치열한 공작전

  • 이정훈 기획위원 hoon@donga.com

    입력2017-03-13 16:15:35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북한 김정은 정권의 김정남 암살, 아들 김한솔 망명으로 이어지고 있는 ‘김씨 패밀리’ 주연의 드라마가 흥미를 더해간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작과 이를 받아치는 역(逆)공작, 그리고 상대의 공작을 타고 들어가는 역용(逆用)공작이 난무하고 있다. 정보의 꽃은 ‘예측’과 ‘공작’을 통해 자국에 유리한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3월 8일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김한솔 망명 소식부터 살펴보자. 마카오에서 살아온 김한솔 가족은 중국 정부의 보호와 감시를 받아왔기 때문에 중국 허가 없이는 절대로 망명할 수 없다. 김한솔도 이를 잘 알기에 유튜브 동영상에서 “중국 정부에 감사한다”고 인사했다. 김정남이 암살된 지금 김한솔은 김정은을 대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백두혈통’이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 김정은이 제거되는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중국은 김한솔을 집어넣어 친중(親中)정권을 세울 수 있는데, 이를 포기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파탄 난 중국의 삼각관계 전술

    그 해답은 중국의 ‘내공’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중국은 남북한 등거리 외교를 해왔다. 경제는 한국에, 정치·군사는 북한에 집중하며 실리를 극대화하는 ‘꽃놀이패’ 전술을 구사해온 것이다. 이는 앙숙관계인 한국, 일본 모두와 동맹을 맺고 있는 미국과 비슷하다. 중국은 남북한, 미국은 한일과 삼각관계를 만들어온 것이다. 두 이성(異性)으로부터 경쟁적으로 러브콜을 받을 땐 하늘을 날 것 같지만, 두 이성이 모두 돌아섰을 땐 처연하기 그지없는 게 삼각관계다.

    1992년 한중수교 후 중국은 남북한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왔지만 최근 수년 동안은 실패를 거듭해왔다. 대표적 사례가 북한 핵실험과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막지 못한 것이다. 삼각관계가 괜찮게 유지되던 시절 중국은 남북한을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이 때문에 미국조차 중국에 6자회담 의장국 지위를 맡겼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 핵개발을 저지하지 못했고, 그 반작용으로 한국의 사드 배치도 막아내지 못했다. 두 집 살림이 사실상 파탄 난 셈이다.



    중국은 김정은, 김정남과도 삼각관계를 형성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삼각관계를 오래 지속하면 오히려 상대가 ‘둘 중 누구를 선택하겠느냐’고 최후통첩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중국은 간과했다. 2013년 장성택 처형은 김정은의 권력 의지가 강력하다는 분명한 신호였다. 그렇다면 중국은 김정은과의 관계를 개선하거나, 김정은을 없애고 김정남을 투입하는 것 가운데 하나를 선택했어야 하는데, 시간만 보냈다. ‘영악한’ 김정은은 이를 꿰뚫어보고 대담하게 행동했다.

    중국에 통보하지 않은 채 두 차례 핵실험을 하고 수십 차례 미사일을 쏜 것이다. 그래도 남북한 등거리 외교를 의식한 중국이 북한을 제재하지 못하자, 김정남 암살이라는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경쟁자를 제거함으로써 중국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김정은을 선택하게 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독립을 원하는 티베트와 위구르족 등의 테러 때문에 반(反)테러 활동에 적극적이다. 김정남 암살은 명백한 테러인데도 중국은 북한과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해 그에 대해 찍 소리도 못 하고 있다.

    중국 처지에서 김정남 암살은 2010년 천안함 격침 사건과 비슷한 도전이다. 그때 한국은 국제사회를 움직여 북한을 제재하려 했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 그러한 노력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제사회의 관심은 중국이 김한솔을 말레이시아로 보내 김정남의 DNA와 대조하게 해줄 것인지에 쏠려 있었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중국의 반테러리즘과 인도주의는 의심받게 된다. 그래서 중국은 김한솔 일가의 망명 허용이라는 카드를 쓴 것이다.

    중국은 북한이 어떤 망나니짓을 해도 버릴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리고 DNA 대조하는 부담을 한국 측에 넘겨버렸다. 공작을 비밀 ‘절도’나 혐오 인물 ‘암살’ 정도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큰 공작은 상대의 국가 전략을 흠집 내는 일이라서 흔히 인도주의와 외교술로 치장된다. 중국의 김한솔 일가 망명 허가는 인도주의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일가가 한국으로 오면 남북관계는 바로 경색된다. 이 경우 유일하게 남북한과 통할 수 있는 중국이 큰 힘을 발휘한다. 중국은 다시 삼각관계를 끌고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은 “자체 분석 결과 동영상에 나오는 인물은 김한솔이 맞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만 밝힌 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김한솔 일가를 망명시킨 세력도 ‘신의 한 수’를 던졌다. ‘천리마 민방위’라는 괴조직을 내세워 동영상을 공개함으로써 북한을 비롯한 전 세계에 김한솔 망명 사실을 한순간에 알린 것이다. 이는 김한솔을 노렸을 북한을 자극하면서 북한과 중국을 계속 대립하게 하려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한국행이 힘든 까닭

    김한솔을 마카오 바깥으로 빼돌리는 데 개입한 ‘무명(無名)국가’는 대만으로 보인다. 천리마 민방위는 중국에 적대적인 국가도 동원한 것이다. 또 김한솔로 하여금 “네덜란드와 미국 정부에도 감사한다”는 인사를 하게 해 우군을 묶는 효과도 가져왔다. ‘천리마 민방위’는 40초짜리 동영상을 통해 적을 분열시키고 아군은 뭉치게 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앞으로 관심은 김한솔이 말레이시아로 가서 김정남과 DNA를 대조할지와 김한솔 일가가 한국으로 올지 여부다. 김한솔이 쿠알라룸푸르로 간다면 말레이시아는 북한을 추궁하기 위해서라도 철통같은 경계를 서며 그의 방문을 공개할 수밖에 없다. 이것에 자극받은 북한이 공작조직을 움직인다면 국정원은 더 많은 역용공작 기회를 잡게 된다. 국정원은 말레이시아 정보부와도 관계를 더 돈독히 할 수 있다.  

    김한솔 일가가 한국으로 온다면 남북관계는 경색된다. 김정은에게 도발 명분을 줄 수도 있다. 김한솔 일가의 한국행을 점치고 싶다면 김영삼 정부 말기 한국에 온 황장엽 씨와, 이한영 씨의 비극을 떠올리면 된다. 황씨 망명 직후 한국에는 2번의 좌파정권이 들어서며 황씨의 행동을 제약했다. 이씨는 북한이 보낸 공작조직에 의해 피살됐다. 이씨가 피살된 후 러시아 모스크바를 떠난 이씨의 가족은 유럽으로 망명했다. 스위스에서 김정은을 돌봤던 이모 고영숙 가족도 미국으로 망명했다.

    한국은 김한솔 일가를 제3국으로 망명시켜 남북관계 경색을 피하면서도 남북한 문제에서 지렛대 구실을 하려는 중국을 견제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국내 정세가 잠잠해지고 김정남-한솔 사건에 대한 관심이 잦아들면 새로운 공작을 성사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그 공작은 김한솔을 빼돌린 지금 이미 시작됐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