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7

2016.10.05

인터뷰

“중립국 스웨덴도 고민했던 핵무장, 100% 확실한 선택은 없다”

니클라스 스반스트롬 스웨덴 안보개발정책연구소 소장

  • 황일도 동아일보 화정평화재단 연구위원 | shamora@donga.com

    입력2016-09-30 18: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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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세중립국 스웨덴.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격랑 속에서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대외정책으로 생존을 구가한 이 나라는, 6·25전쟁 종전 이후 중립국감독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머나먼 거리에도 한반도 현대사와 여러 모습으로 얽혀 있다. 1970년대 이후 북한과도 꾸준히 외교관계를 유지해왔고 서방국가 국민의 영사 문제가 발생하면 평양 주재 스웨덴대사관이 연락업무를 담당하곤 한다. 이를테면 지구상 최고 폐쇄국가와 서방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니클라스 스반스트롬 스웨덴 안보개발정책연구소(ISDP) 소장(사진)은 흡사 이 기묘한 위상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스웨덴 웁살라대에서 평화·분쟁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미국과 중국에서 오랜 기간 수학했고, 2007년 스톡홀름에서 동아시아 전문 연구기관인 ISDP를 창립한 이후 한반도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뤄왔다. 1990년대 초반 이래 북한을 방문한 것만 25차례 내외라는 게 본인의 설명.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북핵 문제에 천착해온 셈이다. 5차 핵실험과 반복되는 미사일 발사로 북한의 핵개발 행보가 정점을 찍은 9월 하순, 제삼자의 눈으로 본 상황 평가를 듣고자 만남을 청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ISDP 소장실은 연구소 공간이 넉넉해 보이는데도 좁은 방 하나를 임원 두 사람이 함께 쓰고 있었다. 북유럽 특유의 실용주의가 짙게 묻어난다.



    핵무장 고민, 스웨덴의 경험

    ▼ 먼저 최근 상황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다. 바로 이 시점에 북한이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이례적 수준으로 속도를 내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먼저 기술적 측면을 이유로 들 수 있다. 핵폭탄 원료를 플루토늄에서 우라늄으로 교체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반복적인 실험은 필수적이다. 한반도 주변 상황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미 양국이 진행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에 대해 어떻게든 ‘응징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중국일 것이다. 올해 초만 해도 중국이 한국, 미국과 공조해 대북제재를 강화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이 나온 이후 평양은 추가 핵실험을 해도 베이징이 워싱턴과 손발을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물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논란도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북한의 판단은 정확했다. 핵개발을 기정사실로 만드는 데 지금보다 더 나은 시점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따라서 올해 안에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단행될 개연성도 충분하다. 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찾기 어렵다. 북한을 어떻게 다룰지 국제적 합의도 없고, 지속적인 행동을 처벌하기 위해 택할 만한 실질적 조치도 마땅치 않다. 북한과 국제사회의 대립이 지속되는 한 평양 정책결정자들은 핵·미사일 실험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희망적 신호는 찾아보기 어렵다.”

    ▼ 북핵 고도화에 따라 한국에서는 독자 핵무장이 논쟁 주제로 떠올랐다. 이를 지지하는 여론이 60%를 넘나들 정도다.

    “스웨덴 역시 소련의 군사력이 급팽창하던 1960년대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다 접은 일이 있다. 지리적으로 스웨덴 남부는 소련이 대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이고, 북부는 북극으로 나가는 창구였다. 유사시 두 지역을 어떻게 지켜낼지가 우리의 안보적 사활이었다. 중립국 정책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미국과 동맹을 맺지는 않았지만, 만에 하나 소련이 침공한다면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개입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암묵적 계산이 있었다. 미국과 핵우산 제공에 공식적인 합의를 맺는 대신 주요 나토 회원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핵개발을 대신했다. 물론 불안감이 없지 않았다. 위기 상황에서 과연 이들이 우리를 구하려 목숨을 걸까. 당시 우리는 나토의 군사적 개입이 실행되기까지 사흘이 걸릴 것이라고 봤고, 그동안 소련군을 저지할 군사력을 유지하는 일을 안보 목표로 삼았다. 전쟁을 지연하는 전략이었다고 할까. 미국이 도와주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다만 소련이 스웨덴 침공을 결심할 수 있는 확률을 극단적으로 낮추는 게 목표였다. 이를테면 불확실성과의 동거였던 셈이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나토 가입은 오히려 냉전에 휘말려 소련의 침공 가능성을 높일 공산이 컸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내 핵무장 여론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특히 11월 미국 대통령선거(대선)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염려가 더욱 커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길로 가든 불확실성은 있다. 한국의 핵무장은 일본의 핵무장 논의로 이어질 테고, 파장은 분명 예상 못 한 방향으로 번지게 될 것이다. 100% 확실한 선택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 한국은 핵무장 국가에 위협당하는 비핵국가, 이를테면 피해자다. 국제사회의 우호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핵개발을 선택하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핵무장은 매우 미끄러운 내리막길(slippery slope)이다. 한번 꺼내놓으면 되돌리기 극히 어렵다. 대안 가운데 하나일 수는 있지만 좋은 대안은 아니다.”



    ▼ 그와 함께 자주 거론되는 주제가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반입 문제다. 독일 등 유럽국가의 사례를 들어 한미 양국이 핵무기 발사 결정권을 공유하면 강력한 핵 억제력이 될 것이라는 견해다.


    “마찬가지다. 한국의 전반적인 안보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공산도 있다. 당장 중국 핵무기가 주한미군 핵무기 보관시설을 목표물로 삼을 텐데, 그러한 전개가 과연 한국의 국익에 부합할까. 핵무기 발사 권한을 공유한다 해도 여전히 한국은 미국의 전적인 동의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반면, 미국은 한국 동의 없이도 어디서든 핵을 날릴 수 있다. 지금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이 안보 문제를 다루는 데 지금보다 미국의 이해관계에서 독립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술핵 재반입은 그와 정반대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앞서 말했듯 스웨덴 역시 냉전시기 내내 불안감이 없지 않았지만, 한국 역시 더는 약소국이 아니지 않은가. 자신의 역량과 가치를 믿을 필요가 있다.”



    6자회담 대신 2+2+2라면?

    ▼ 한국과 미국에서는 6자회담 등 대북 핵협상에 회의감이 높은 반면, 당신은 적극적인 개입을 강도 높게 주장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기존 논의 틀의 한계를 뛰어넘을 로드맵이 있나.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층적 접근이다. 미국은 비핵화만을, 북한은 평화협정 체결만을 다루기를 원한다는 게 현 상황의 가장 큰 한계다. 관련 주제를 한꺼번에 논의하는 경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외부 시선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가운데 하나는, 군사적으로는 북한의 생화학무기가 핵무기 못지않게 위협적인 존재지만 정작 한국 국민은 크게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전쟁이 벌어질 경우 평양이 서울에 핵·미사일을 발사할 개연성보다 생화학 공격을 가할 확률이 훨씬 높을 것이다. 한국은 핵 문제 이전부터 위기관리나 신뢰 구축이 가장 필요한 당사자였다는 뜻이다. 이러한 위협도 함께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미국이 협상에 나선다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미국을 타깃으로 장거리 타격 능력을 동결하고 비확산을 약속받는 수준의 불완전한 합의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 경우 한국만이 북한 핵의 유일한 인질로 남는다는 염려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직접 대화 국면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서울과 평양이 가진 안보 우려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최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불행하게도 그간 북핵 문제와 관련한 담론은 대부분 미국 측 학자들에 의해 미국 측 이해관계에 맞게 만들어져왔다. 그러다 보니 미국을 위협하는 ICBM이나 제3국으로의 핵 기술 이전 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쟁점인 것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핵 문제가 지금처럼 북한과 미국 사이의 이슈로 있는 한 자칫 한국만 인질로 남을 수 있는 구도는 바뀌기 어렵다. 그나마 작금의 워싱턴은 협상이나 의견 교환에 나설 생각조차 없지 않은가. 북·미·중 세 나라가 상황을 이끄는 구도는 한국의 이익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나가야 한다. 특히 내년 대선을 통해 들어설 새 정부는 어떻게 하면 주도적 당사자가 될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생명력을 잃은 6자회담 대신 2+2+2 형식의 논의 틀을 만든다면 어떨까. 핵심 의제는 남북한이 협상을 진행하고, 미·중, 일·러 사이의 대화가 뒤를 받쳐주는 구조다. 물론 북한은 미국과 얘기하고 싶다고 하겠지만, 중요한 주제는 남한과 논의하라고 못 박는 것이다. 북핵 문제 교착이 벌써 7년째다. 내가 너무 비관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6·25전쟁 이후 지금처럼 문제가 심각했던 적은 없었다고 본다. 국제사회가 남북 간 논의를 우선순위에 두고 압력을 가하는 구도를 만들어야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진짜 목표를 알려면

    ▼ 그간 방북으로 느낀 소회가 궁금하다.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남북한이나 북·미 사이의 1.5트랙(반관반민) 대화 테이블을 주선해온 것으로도 알고 있는데.

    “내 경험만 놓고 보면 북한 체제는 매우 안정적인 편이라고 생각한다. 김정은 본인을 만난 적이 없어 평가가 이르긴 해도, 내부 위협이나 권력에 대한 도전이 가능하다는 징후를 본 적이 없다. 그럴 만한 인물이나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제재에 동참해 북한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게 유일한 시나리오지만, 지금으로서는 가능성이 없다. 남북 혹은 서방과 북한 사이의 비공식 대화 주선과 관련해서는 가급적 얘기하지 않는다는 게 내 원칙이다. 우리가 나서서 어떤 얘기가 오가는지 언급하면 그게 공식 버전이 되고 만다. 당사자들이 주도하도록 돕는 정도가 맞는 자세라고 믿는다.

    연말 전까지 또 한 번 방북을 계획하고 있지만 5차 핵실험 이후 상황이 녹록지 않다. 북한이 아니라 우리 정부와의 문제다. 지금까지 스웨덴 정부는 북한과 접촉을 금지한 적도, 독려한 적도 없지만 제재가 강화되면 우리 역시 방북이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현장에서 보고 대화채널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평양에는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많은 사람이 있고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생각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상대의 진짜 목표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내가 뭔가 의견을 내놓으면 한쪽에서는 북한을 끌어안으려 한다고 분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너무 비판적이라고 탓한다. 누군가 나를 가리켜 ‘죽어 마땅하다(deserve to die)’고 말하는 것도 들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에게 비판받고 있다면 그건 십중팔구 내가 충분히 중립적이라는 방증 아니겠나. 그렇게 믿으려 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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