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7

2016.10.05

커버스토리 | 국민은 빚잔치 공기업은 돈잔치

‘신의 직장’ 성과급엔 국민도 모르는 꼼수

기재부 경영평가 따라 널뛰는 연봉…공공이익은 뒷전, 실적 챙기기에 혈안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9-30 16: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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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기관이란 말 그대로 공공의 이익에 복무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최근 공공기관들의 행보는 국민 이익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한국전력공사(한전)는 기록적인 폭염에도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월간 주택용 전기요금이 8월, 역대 최고액을 경신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은 지속적인 보험료 과다 징수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이 국민의 원성에도 전기요금과 보험료 체계를 개편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경영 실적 때문이다. 매년 기획재정부(기재부)가 공공기관의 경영 내용을 평가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는 것.

    좋은 성과를 낸 기관에게 주는 상이 있다면 저성과자에 대한 벌도 있게 마련이다. 기재부 평가에서 일정 등급 이하 성적표를 받으면 경고와 함께 정부가 지급하는 공공기관 경비가 조정된다. 각 기관이 국민보다 기재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기재부의 평가가 각 기관이 본분을 잘 수행하고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최근 기재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 성적표를 보면 좋은 평가를 받은 기관은 대부분 단순히 경영실적이 좋은 곳이었다. 일각에서 기재부의 평가 때문에 공공기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 불만 폭발해도 기재부는 칭찬

    한전은 지난해 눈부신 이익을 기록했다. 매출 총액에서 원가와 판매 및 일반 관리비를 뺀 영업이익이 약 11조 원을 기록한 것. 이 결과 한전은 S~E까지 6등급으로 나뉜 기재부의 ‘2015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에서 A등급(우수)을 기록해 높은 성과급을 받게 됐다. 같은 A등급을 받았던 2011년 한전 직원의 인당 성과급은 평균 1774만 원. 물가상승과 기타 변동 사항을 감안하면 올해는 인당 평균 2000만 원 성과급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좋은 성과에 따른 합당한 대우라면 박수칠 일이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와 올해 기록적인 폭염 탓에 국민은 ‘폭탄’이라 할 만큼 많은 전기요금을 물어야 했고, 그 기저에는 누진제라는 비합리적인 요금제도가 있다. 이 때문에 실적을 앞세운 한전의 성과급 잔치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 없다.

    한전은 이번 성과급이 누진제와 관련 없다고 주장한다. 전력공기업 종사자를 주축으로 한 전국전력노동조합(전력노조)은 9월 28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올해 경영평가 성과급 증가는 비용 절감을 위한 자구 노력과 해외사업 매출 증대 등으로 ‘포브스’ 선정 기업순위 평가에서 전력사 가운데 세계 1위에 오르는 등 실적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며 “실제 정부에서 지급한 한전의 성과급도 인당 1000만 원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전의 실적 개선에는 폭염으로 가정에서 에어컨 등 냉방기기 사용이 크게 늘면서 전기 판매 수익도 함께 상승한 영향이 확실히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9월 27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은 공익제보자와 발전자회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기반으로 2015년 한전 및 발전자회사의 생산 원가와 기업 활동을 유지할 정도의 적정이윤을 함께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한전과 발전자회사들은 지난해 적정이윤 외 전기요금으로 4조9349억 원을 더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이익 11조 원 가운데 절반가량이 전기요금인 것.

    산업용, 일반용(영업용) 전기요금이 원가 이하이거나 원가보다 조금 높은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주간동아’ 1051호 ‘요금폭탄 누진제의 진실, 기업용 못 올리는 진짜 이유’ 참조) 이 추가분은 대부분 주택용 전기요금으로 벌어들인 수익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의원은 “지난해 한전이 국민으로부터 거둬들인 전기요금이 총 54조 원임을 고려하면 국민 인당 적정요금의 10%가량을 더 낸 셈”이라고 주장했다. 한전은 올해 상반기에만 지난해 상반기보다 46% 증가한 6조3097억 원의 영업이익을 남겼다. 게다가 8월 주택용 전기요금 사용료가 1조 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해 한전은 내년에도 기재부의 평가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전 성과급이 인당 1000만 원이라는 해명도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성과급은 ‘경영평가 성과급’과 ‘기타 성과 상여금’ 두 종류로 나뉜다. 경영평가 성과급은 기재부의 평가에 따른 성과급으로 1, 3분기에 지급된다. 기타 성과 상여금은 기관 내부에서 다시 성과 우수자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직원은 이 금액을 2, 4분기에 받는다. 외부 평가와 내부 평가에 따른 지급이라는 게 다르지만 사실상 이 둘은 동일한 성과급이다.

    한전의 성과급 목록을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기재부의 공공기관 경영실적 통계에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지급된 성과급 목록을 보면 매년 900만 원가량이 기타 성과 상여금으로 직원들에게 지급됐다. 그러나 A등급을 받은 2011년에는 오히려 이 기타 성과 상여금이 100만 원 남짓으로 줄었다. 그 대신 경영평가 성과급으로 1774만 원이 지급됐다.


    건강보험 흑자 재정의 내막

    2011년에 기타 성과 상여금이 유독 적은 이유는 집계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한전 관계자는 “기타 성과 상여금에도 기재부 지침에 따라 지급되는 부분이 있는데, 2011년까지는 내부 성과급(기타 성과 상여금) 가운데 기재부 지침에 따라 지급되는 것을 전부 경영평가 성과급으로 기록해 수치 변화폭이 큰 것”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통계에서 올해 기타 성과 상여금으로 한전 직원에게 지급될 금액은 인당 평균 1000만 원. 전력노조의 주장에 따라 경영평가 성과급으로 받을 1000만 원을 합산하면 연간 한전 직원이 받는 평균 성과급은 2000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건보공단도 꾸준한 실적 향상으로 올해 기재부 평가에서 A등급을 받은 우등생이다. 기재부 통계 시스템에 공시된 공공기관별 경영정보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2011년 누적흑자 1조5600억 원, 2012년 4조5767억 원, 2013년 8조2203억 원, 2014년 12조8072억 원, 2015년 16조9800억 원, 올해 상반기 20조1766억 원을 기록했고 흑자 폭도 크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건보공단은 매년 보상을 받아왔다. 9월 22일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임직원들에게 총 2200억 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최대 누적흑자를 기록한 지난해에는 성과급 총 481억9000만 원이 건보공단 임직원에게 돌아갔다. 임직원의 해외연수 비용도 크게 늘었다. 건보공단 직원이 해외연수로 사용한 금액은 2011년 3억9200만 원에서 2015년 7억5500만 원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좋은 성적과 그에 다른 성과급 잔치의 이면에는 건강보험료 과다 징수와 낮아진 건강보험 보장률이 자리한다. 7월 울산에서는 태어난 지 19개월 된 유아 앞으로 건강보험료 고지서가 날아오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가구주인 아버지가 군에 입대하자 건강보험료를 유아에게 직접 청구한 것이다. 2014년 10월에는 대구 한 아동보호시설에서 살고 있는 김모(7) 군이 6개월분 건강보험료 10만 원을 납부하라는 독촉 고지서를 받았다. 같은 해 3월 김군은 아버지와 계모의 학대 및 폭력에 시달리다 6월부터 아동보호시설 ‘그룹홈’에 거주해왔다. 건보공단은 주민등록상 단독 가구라는 이유로 7세 아동에게 건강보험료 납부를 통보한 것이다. 김군은 2014년 7월 의료급여 대상자로 등록됐지만 올해 5월까지 계속 독촉 고지서를 받았다.

    그러나 경제력이 없는 미성년자에게까지 건강보험료를 받지 않아도 건보공단은 충분히 많은 보험료를 징수하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의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건보공단의 보험료 징수율은 99.4%로 완전 징수에 육박한다. 징수액도 계속 올랐다. 건강보험료는 2011년 보수월액의 5.64% 수준이었지만 올해 6.12%까지 올랐다. 높은 징수율에 보험료도 올랐으니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나 수준이 나아져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보장 수준이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 김승희 의원이 건보공단과 국내 생명보험사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건강보험 보장률은 2010년 63.6%에서 2014년 63.2%로 오히려 0.4%p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비급여 본인 부담률은 15.8%에서 17.1%로 1.3%p 늘었다. 전체 진료비 중 건강보험의 비중은 줄고 환자의 진료비 부담은 늘어난 것이다.



    검든 희든 돈만 잘 벌면 좋은 공공기관?

    기동민 의원은 “국민의 소중한 보험료로 만든 건보공단의 재정 흑자 결과가 국민이 아닌 임직원에게 성과급으로 돌아갔다”며 “건보공단은 흑자 재정을 국민 건강을 위한 보장성 확대, 저소득층 지원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스스로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 건보공단 관계자는 “건강보험 보장률이나 흑자 재정 등은 하나의 평가 항목일 뿐 재정건전성 외에도 계량·비계량 등 다양한 항목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A등급이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처럼 공공기관이 본연의 기능을 잊고 재정 확대에 혈안이 된 이유는 기재부의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 때문이다. 기재부가 6월 16일 발표한 ‘2015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 결과’에 따르면 △재정건전성 △방만경영관리 △임금피크제 △구조조정 △경영실적 등이 주 평가 요소였다. 즉 민간기업과는 전혀 다른 목적을 띠는 공기업에 민간기업의 잣대를 들이대 평가한 것이다. 실제로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 시스템에 공시된 통계에 따르면 올해 A등급을 받은 공공기관 20곳 중 예금보험공사와 한국감정원을 제외한 18곳이 지난해보다 높은 수익을 기록했거나 지속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록해온 곳이었다.

    기재부는 공공기관이 어떤 실책을 해도 경영실적만 괜찮으면 좋은 평가를 주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A등급을 받은 한국마사회(마사회)는 경영실적평가 발표 2개월 전인 4월 14일 감사원으로부터 주의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장외발매소에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법정 입장료 외 시설 이용료를 별도로 부과해 부당이득을 취했기 때문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전국 30개 장외발매소에는 최대 3만8000원에 달하는 시설 이용료를 따로 내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는 좌석이 전체의 76%에 달한다. 현행법상 장외발매소 입장료는 2000원을 넘지 못하게 돼 있지만 감사 결과 마사회에서는 이용자의 소득계층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2000원짜리 좌석 비율을 24%로 제한하고 나머지 좌석에서는 시설 이용료를 추가한 입장권을 판매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9월 28일에는 마사회 직원이 비자금을 사용해 용산화상경마장 개장 찬성 집회에 지역 주민을 불법동원한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는 사건도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조사 결과 마사회 직원 5명이 지역 주민을 불법동원해 용산화상경마장 개장 찬성 집회를 열게 하고 이들이 실제 쓴 비용보다 더 큰 금액을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그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주는 방법으로 인당 10만원씩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다음 달까지 관련자 5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마사회가 불법행위로 이득을 취한 사실이 확인됐음에도 경영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사안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여러 항목을 평가하는 만큼 비도덕적 행위로 감점을 받더라도 다른 실적이 월등하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며 “마사회의 감사 결과나 한전, 건보공단에 대한 나쁜 여론도 평가 결과에 반영됐지만 경영실적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좋은 등급이 나온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공공기관 직원들 “성과급 아닌 평가급”

    사실상의 태업에도 공공기관 직원들이 정부의 칭찬과 성과급을 모두 챙기니 국민은 납득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공공기관 직원들은 성과급이 전혀 반갑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받았다는 성과급이 사실상 ‘평가급’에 가깝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성과급은 민간기업 성과급과 성격이 다르다. 민간기업 성과급이 높은 성과에 대한 추가적 보상인 데 반해, 공공기관 성과급은 높은 성과를 내야 자신이 계약한 실제 연봉을 받을 수 있게 돼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직원의 연봉 가운데 일부는 계약 당시 차감된다. 이 차감된 금액은 기재부의 공공기관 평가 성적에 따라 각 기관이 정한 비율만큼 분기마다 성과급이라는 명목으로 직원에게 다시 돌아간다. 즉 기재부의 평가에 따라 공공기관 직원이 그해 연봉을 전부 받을 수 있을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결국 공공기관 직원은 기재부의 평가 기준에 따라 좋은 경영실적을 내려고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태업의 책임이 기재부의 잘못된 평가에 있는 만큼 기재부 내부에서도 공공기관 평가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9월 23일 서울 중구 소공동 더플라자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공공기관 경영평가와 경영자율성’ 포럼에서 이승철 기재부 공공혁신관은 “현재 공공기관 평가제도는 각 기관의 책임성 확보보다 관료적 통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있다”며 “경영 성과와 성과급을 연계한 인센티브, 잦은 제도 변경과 평가단의 비전문성 및 폐쇄성, 기관의 과도한 평가 부담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단기 성과 위주인 평가 지표를 중·장기 성과 지표로 보완하고 계량 지표 위주에서 비계량 지표와 계량 지표의 조화, 수익성 강조에서 공공성 보완, 표준화한 지표에서 맞춤형 평가 강화 등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평가단 인력 풀도 다양화해 전문성과 신뢰성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 평가 문제 있다”  공공기관 총파업

    연봉 깎아 만든 평가급을 성과급이라는 이름으로 받아오며 억울해하던 공공기관 직원들이 성과급연봉제를 반대하며 파업에 나섰다.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공공노련)이 9월 22일 서울역 광장에서 성과급연봉제 폐지를 요구하며 ‘공공노동자 총력투쟁 결의 대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공공·금융 부문 5개 산별 노동조합(노조)은 성과급연봉제 확대 도입을 저지하는 연쇄 총파업을 이어갔다. 23일에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1차 총파업 집회를 열었고 27일부터는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 파업을 시작했다. 28일과 29일에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이 각각 파업에 들어갔다.

    정부는 공공기관 노조의 총파업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엄정 대처하겠다고 나섰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9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공공 부문이 국회가 법적으로 정한 임금체계 개편을 반대하고자 총파업을 하는 것은 이기적 행태”라며 “무노동·무임금의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공공노련은 9월 27일 성명서를 통해 “공공기관 노조 총파업은 정당하다”며 “공공기관 성과 측정은 단기 경영 실적 위주로, 기준에 공정성과 객관성이 없다. 잘못된 평가 기준은 기관에 종사하는 개인과 소속 사업장, 공공기관을 모두 단순 실적 경쟁에 매달리게 하고, 성과 측정 후에는 오히려 각 기관의 본분인 공공성이 심하게 훼손됐다. 기관의 본질을 해치는 공공기관의 성과급연봉제를 전면 무효화해 각 기관의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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