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3

2016.08.31

정치

새누리당 투톱의 불안한 동거

친박 당대표 이정현과 낀박 원내대표 정진석…우병우 사태 시각차 커, 특검 시 행보 주목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08-29 17: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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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4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대통령 민정수석의 진퇴, 특별감찰관의 직무 부적합 언행이 논란입니다’로 시작하는 정 원내대표의 글은 ‘국민이 주권자’인 공화국의 원리를 상기케 하고, ‘백성은 무겁고 왕은 오히려 가볍다’는 맹자의 말까지 거론한 뒤 ‘공직자의 공인의식을 생각게 하는 시절입니다’로 마무리됐다. 직접적으로 우병우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의 ‘사퇴’를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우 수석 사퇴 불가피성’을 여러 측면에서 강조한 것.

    이에 앞서 정 원내대표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 수석을 직권 남용과 횡령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한 8월 18일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특별감찰관의 수사 의뢰가 제기된 상황에서 (민정수석이) 직책을 계속한다는 것은 법리상 국민 정서상 불가하다’면서 ‘우병우 수석은 대통령과 정부에 주는 부담감을 고려하여, 자연인 상태에서 자신의 결백을 다투는 것이 옳다’며 우 수석의 결심을 촉구한 바 있다.

    정 원내대표의 거듭된 우 수석 사퇴 촉구는 8월 9일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오른 이정현 대표의 행보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이 대표는 우 수석 거취와 관련해 8월 24일까지 대체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당대표와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을 이끄는 투톱. 그런 두 사람이 주요 정국 현안에 다른 시각을 드러냄으로써 당 운영에도 불협화음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역도, 출신도 상반돼

    이정현, 정진석 투톱의 불협화음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지금은 두 사람이 당대표와 원내대표로 호흡을 맞춰가며 함께 당을 이끌고 있지만, 이명박(MB)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각각 걸어온 길은 서로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 이 대표는 MB정부 5년 동안 ‘대변인격’으로 ‘박근혜의 입’ 노릇을 해왔고,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는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거쳐 당대표에 오른 진박(진짜 친박근혜) 중 진박 인사. 그런 이 대표가 ‘우병우 지키기’에 나선 청와대의 뜻을 거스르려 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에 비해 정 원내대표는 MB정부에서 대통령실 정무수석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비박(비박근혜)계의 지원으로 19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에 오른 정의화 의장이 임명해 국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MB정부 이후 정 원내대표는 친이(친이명박)계와 비박계의 길을 줄곧 걸어와 대표적 친박(친박근혜)계 출신인 이 대표와는 결이 다르다.

    또 다른 차이점은 무수저와 금수저라는 정치적 배경의 차이. 이 대표는 자신을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라고 칭했다. 정치인 가문 출신이 아닌 이 대표는 당직자로 오랫동안 실무를 담당해오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을 때 그를 상근수석부대변인으로 발탁하면서 정치적 출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대표의 정치적 배경이 곧 박 대통령인 셈이다. 그에 비해 정 원내대표는 대를 이어 정치를 해온 정치인 가문 출신. 부친인 정석모 전 의원이 10대부터 15대까지 내리 6선을 기록했고, 박정희 정권에서 충남도지사, 내무부 차관(5공 때 내무부 장관 역임)을 지내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에서 정 원내대표의 부친이 도지사, 차관을 지낸 사실은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 때 친박계가 정 원내대표를 지원하는 구실이 되기도 했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의 얘기.

    “정진석, 나경원, 유기준 세 후보가 맞붙은 원내대표 경선 때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결선 투표까지 가게 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그런데 정 원내대표는 1차 투표에서 총 투표수 119표 가운데 과반을 훌쩍 넘는 69표를 얻었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온 데는 친박계의 조직적인 지원, 그리고 정책위의장 후보로 TK(대구·경북) 출신 김광림 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삼은 것이 위력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정 원내대표의 부친이 박정희 정권에서 차관을 지낸 점도 정 원내대표에 대한 친박계의 거부감과 의심을 줄이는 후광으로 작용하는 플러스 요인이 됐다. 또한 충청 출신 정 원내대표와 TK 출신 김광림 정책위의장 후보의 절묘한 조합이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의 투표수를 대폭 끌어올린 측면이 있다.”



    샤워실의 바보? 이젠 마이웨이

    정 원내대표가 당선 이후 원내부대표 인선 때 친박계를 대거 배려하자, 친박계의 지원에 대한 ‘보은’이란 얘기가 많았다. 그러나 정 원내대표는 원내부대표 인선 때와 달리 혁신위원장에 비박계 김용태 의원을 임명하고,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때도 비박계 인사를 대거 중용했다. 그러나 김용태 혁신위원장과 비박계 비상대책위원 인선안은 당내 주류인 친박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당 상임전국위원회에 상정되지도 못한 채 무산됐다.

    원내부대표 임명 때 친박계를 대거 임명해 친박계로 기운 듯하다, 다시 비박계 비상대책위원 인선으로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정 원내대표에 대해 ‘문화일보’는 5월 26일자에서 “‘샤워실의 바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샤워실에서 뜨거운 물에 놀라 차가운 물을 너무 세게 틀어 온도 조절에 실패하는 바보처럼 정 원내대표가 친박과 비박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는 것.

    새누리당 비박계 한 인사도 “김용태 혁신위원장 인선을 친박계가 비토하자 이번에는 친박계가 선호하는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을 인선했고, 그다음 유승민 등 탈당 당선인을 전격 복당시키는 데 앞장섰다”며 “정 원내대표는 현안에 따라 진폭이 너무 커 종잡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출신은 친이계인데, 친박계의 지원을 등에 업고 원내대표에 오른 원죄 때문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는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 원내대표는 친박과 비박이 서로 마주 보며 달리는 고속도로 한가운데 서 있는 중앙분리대 같은 심정이라며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주변에 토로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 수석 사퇴를 촉구하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정 원내대표. 그가 앞으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새누리당 운영은 물론, 하반기 국회 운영의 방향도 크게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새누리당 한 인사는 “우 수석과 관련한 검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야당에서는 특검을 요구할 개연성이 높다”며 “이정현 대표는 특검을 반대할 텐데, 정 원내대표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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