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0

2016.08.10

국제

첫 여성 유엔 사무총장 기대감 모락모락

남녀 각 6명씩…‘여성 선출하자’ 국제사회 여론이 변수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6-08-05 17: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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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 유엔 사무총장 자리를 놓고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연말 반기문 사무총장이 물러날 예정인 가운데 도전장을 낸 후보가 12명이나 된다. 후보가 많은 이유는 유엔 사무총장을 뽑는 방식이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유엔 사무총장은 그동안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이 밀실에서 자신들 입맛에 맞는 인물로 정해 국제사회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지난해 9월 유엔 총회는 사무총장을 투명한 절차를 거쳐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 내용을 보면 안보리와 총회는 193개 회원국에 사무총장 선출 절차를 알리는 공동서한을 발송하고, 회원국들로부터 후보자를 추천받는다. 이들 후보자 이름은 상세한 이력서와 함께 총회에 회람된다. 이후 각 후보자는 총회에서 자신의 이력과 유엔을 이끌어갈 비전을 밝히는 프레젠테이션(청문회)을 해야 한다. 유엔이 각 회원국으로부터 사무총장 후보자를 추천받는 것과 후보자 청문회를 실시하는 것은 이번에 새로 도입된 절차다. 사무총장 자격도 새롭게 규정됐다. 사무총장 후보자는 입증된 지도력과 관리 능력을 갖춰야 하고, 국제관계에 폭넓은 경험이 있어야 하며, 뛰어난 외교력과 의사소통 능력, 다중 언어 구사력을 지녀야 한다.

    후보들은 4월부터 최근까지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청문회를 가졌다. 7월 12일에는 TV 토론도 했다. 후보자 12명 중 10명이 참석한 이 토론회에서 제비뽑기로 두 그룹으로 나뉜 후보들은 국제현안에 대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청문회에 TV 토론까지

    후보자 면면을 보면 여성이 6명, 남성이 6명이다. 여성 후보는 헬렌 클라크 전 뉴질랜드 총리를 비롯해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국장(불가리아), 나탈리아 게르만 몰도바 부총리, 수사나 말코라 아르헨티나 외교부 장관, 베스나 푸시치 크로아티아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전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장(코스타리카) 등이다. 남성 후보는 안토니우 구테헤스 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포르투갈)를 비롯해 스르잔 케림 전 유엔 총회 의장(마케도니아), 이고르 루크시치 몬테네그로 외교부 장관, 다닐로 튀르크 전 슬로베니아 대통령, 부크 예레미치 전 유엔 총회 의장(세르비아), 미로슬라프 라이차크 슬로바키아 외교부 장관 등이다.

    이례적으로 여성 후보가 대거 출마한 것은 양성평등에 따라 여성 유엔 사무총장을 선출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여론에 따른 것이다. 유엔 창설 이후 지난 70년간 사무총장 8명이 배출됐으나 모두 남성이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여성을 지지하는 친구들의 모임’이라는 국제시민단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여성 후보가 차기 사무총장으로 고려된 적이 없었다면서 여성이 유엔에서 최고 지위를 차지할 때가 됐다고 주장한다. 193개 회원국 상당수도 여성이 사무총장으로 선출될 때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최근 들어 영국을 비롯해 각국에서 여성 지도자가 잇달아 등장하고 있는 만큼 유엔을 이끌어갈 사무총장에 여성이 선출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동유럽 출신 후보도 8명이나 된다. 그 이유는 지역 순환 원칙이라는 관례에 따라 이번에는 동유럽 출신이 사무총장을 맡는 순번이기 때문이다. 역대 사무총장은 그동안 서유럽(북미 포함),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등 4개 지역에서 배출됐다. 이들을 출신 지역으로 분류하면 서유럽 3명, 아시아와 아프리카 각 2명, 중남미 1명이다. 이 때문에 동유럽 국가는 이번에는 자신들 차례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동유럽 출신 여성 후보가 차기 사무총장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조건에 맞는 후보로는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국장이 유력하다. 또 동유럽 출신 남성 후보인 튀르크 전 슬로베니아 대통령도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하지만 동유럽 출신 여성이나 남성 후보가 차기 사무총장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유럽 출신 후보가 미국에 우호적이라면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테고, 그 반대면 미국이 막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네스코와 사사건건 대립해온 미국은 친러시아 성향의 보코바 사무국장을 선호하지 않는다. 또 지역 순환 원칙을 무시하고 다른 지역 출신 여성 후보가 차기 사무총장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클라크 전 뉴질랜드 총리가 유력한 후보다. 클라크 전 총리는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총리를 역임했고, 2009년부터 지금까지 유엔개발계획(UNDP) 총재로 일하고 있다. 클라크 전 총리는 유엔 사무국과 산하 기구들에서 그동안 상당한 지지를 받아왔다. 물론 여성도 동유럽도 아닌, 다른 지역 후보가 차기 사무총장이 될 수도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안보리 15개 이사국(5개 상임이사국과 10개 비상임이사국)은 7월 21일 스트로 폴(straw poll·예비투표)이라는 방식으로 첫 비공개 투표를 실시했다. 이 투표는 안보리 이사국들이 후보 12명을 놓고 ‘권장(encouraged)’ ‘비권장(discouraged)’ ‘의견 없음(no opinion)’ 등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밀짚(straw)을 날려 바람의 방향을 알아낸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이 투표는 부적합한 후보들을 탈락시키고 각 이사국의 후보 선호도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첫 스트로 폴의 내용을 보면 구테헤스 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가 ‘권장’ 12표를 받아 1위를, 튀르크 전 슬로베니아 대통령이 11표를 받아 2위를 차지했다. 보코바 사무국장, 예레미치 전 유엔 총회 의장, 케림 전 유엔 총회 의장이 각 9표씩을, 클라크 전 총리가 8표를 얻었다. 안보리 이사국들은 앞으로 2~3개월간 이런 식의 투표를 여러 차례 실시한 뒤 9월 30일부터 시작되는 유엔 총회에 최종 후보를 추천할 예정이다. 안보리 이사국들이 최종 투표를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12명 후보 외 다른 후보가 이 기간 중 출마할 수도 있다.   

    그런데 차기 사무총장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은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의 의중이다. 이번에 차기 사무총장을 뽑는 과정이 공개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변하지 않은 점이 있다면 5개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차기 사무총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5개 상임이사국이 유엔의 모든 사항을 좌지우지한다. 유엔 사무총장이 명예만 높고 실권은 없는 자리란 비판을 들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 대통령’ ‘지구촌 최고 외교관’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막강한 자리다. 세계 최대 국제기구 유엔의 수장인 사무총장은 국제분쟁 예방을 위한 조정과 중재를 해야 한다. 국제적으로는 국가원수 예우를 받는다. 또 4만여 직원, 수십 개 산하기구, 대규모 예산 등을 총괄한다. 특히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우크라이나 사태 등 국제현안을 놓고 날카롭게 대립하는 미국, 중국, 러시아의 처지에선 누가 차기 사무총장이 되느냐가 매우 중요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앞으로 차기 사무총장 선출에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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