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0

2016.08.10

사회

결국 철회할 것을… ‘평생교육 단과대학’이 뭔데?

이화여대 교수들 “아무도 모르는 사업”, 교육부 묵묵부답…“학벌 이용한 등록금 장사” 비판 직면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8-05 16: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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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내 일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학생들을 보호하고 구성원의 의견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철회하기로 했습니다.”

    8월 3일 낮 12시 15분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학교 본관 앞에 섰다. 이날 오전 10시 ‘이화여대가 평생교육 단과대학인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철회를 결정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은 후 총장의 첫 공식 발표였다. 최 총장 뒤에 있던 이화여대 학생들은 마스크를 쓴 채 연좌농성을 지속하며 침묵했다. 교육부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 계속 시위하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교육부는 이날 오후 “대학 의사에 따라 이화여대의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이화여대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평단사업)은 이화여대생들의 농성 돌입과 함께 ‘학위장사’ ‘졸속행정’이라는 비판 여론이 들끓은 지 7일 만에 전면 철회됐다.



    ‘입학정원 확정 기한’ 어기면서까지 무리수

    교육부의 평단사업은 대학의 평생교육 시스템을 4년제 단과대학에 반영, 흡수하는 제도다. 수많은 대학이 운영 중인 평생교육원의 교육을 질적으로 제고한다는 목표로 올해 처음 도입됐다. 교육부는 5월 26일 “교육 분야 개혁과제 가운데 하나인 일-학습 병행 확대 추진을 위해 양질의 평생교육을 제공한다”며 “고졸 취업자 등 성인 학습자들이 대학에서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성인 전담 평생교육 단과대학 개편 방안’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고졸 또는 30세 이상 취업자에게도 학사학위 취득 기회를 넓혀 경력개발에 보탬을 준다는 취지였다.

    이에 5월 4일 6개 대학(대구대, 명지대, 부경대, 서울과학기술대, 인하대, 제주대)이 1차 사업지원 대상으로 선정됐고, 7월 15일 4개 대학(동국대, 이화여대, 창원대, 한밭대)이 추가로 선정됐다. 교육부는 당초 10개교에 학사 개편, 교수 지원 등 목적으로 약 30억 원씩 총 300억 원 예산을 배분할 계획이었다.



    이 사업을 둘러싸고 비판받는 대상은 이화여대만이 아니다. 교육부도 ‘졸속행정’이라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 1차로 선정된 모 대학의 관계자에 따르면 교육부는 1월 18일 각 대학에 평단사업 신청 공고를 냈다. 그 후 4~6개월 만에 10개 대학이 선정됐다. 이화여대를 제외한 나머지 9개 대학은 예정대로 2017학년도부터 평생교육 단과대학 신입생을 모집한다. 대학 입학제도를 바꾸거나 단과대학을 설립하려면 최소 수년 전부터 준비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 사업은 신입생 모집까지 6~8개월 앞두고 결정됐다.

    입학 정원이 5~7월에 정해진 것 역시 기존 제도를 위반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2차로 선정된 모 대학의 A교수는 “매해 입학 정원은 전년도 4월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2017학년도 신입생 정원을 올해 5~7월에 정했다면 이러한 사항을 어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간동아’가 대교협 관계자에게 질의하자 이 관계자는 “4년제 대학은 매해 4월까지 차년도 입학 정원을 대교협에 보고해야 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이번 평단사업 대상 대학이 왜 5월 이후 발표됐는지 잘 모르겠다. 교육부에 문의해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는 평단사업을 담당하는 교육부 관계자에게 질의서를 보내고 수차례 전화로 연락했지만 8월 4일 오후 3시 현재까지 답신을 받지 못했다.

    급하게 추진된 행정은 대학 내 소통 부재를 낳았다.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회원인 B교수는 “7월 30일 언론보도가 나기 이틀 전 교무처로부터 평단사업을 알리는 전체 e메일을 처음 받았다. 그 전에는 평단사업과 관련해 교수, 학생들에게 고지하거나 함께 논의한 내용이 전혀 없었다”며 “평단사업이 교육부와 학교 사이에서 졸속으로 진행되면서 학내 구성원의 의견은 철저히 배제됐다”고 말했다. 시위에 참여한 이화여대 학생들은 “학교 측과 수차례 대화를 시도했지만 수용되지 않아 농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평단사업의 구체적 내용도 모호하다. 각 대학의 평단사업은 전공과 입학 정원 정도만 확정됐을 뿐이다. 이화여대는 뉴미디어산업, 웰니스산업, 융합설계 등의 전공을 새로 구성하고 입학생 150명을 선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이 전부다. 각 전공이 구체적으로 어떤 학문을 포괄하는지, 학사 행정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B교수는 “교수 임용, 입학 자격과 선발 기준, 수업 진행 등과 관련해 교수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C교수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신입생은 4년이 아닌 2년 반 만에 학사학위를 취득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 여부는 모르겠다”고 했다. 8월 1일 이화여대 건물 내부에 붙은 한 자보에는 ‘미래라이프대학은 야간, 주말수업으로 학위 취득’이라고 쓰여 있었다.



    평단 배치 꺼리는 교수 간 갈등도

    소문과 억측의 확산에는 학교 측의 무대응도 한몫했다. ‘주간동아’는 8월 1일 전화상으로 이화여대 홍보실 직원으로부터 “e메일로 질의서를 주면 확인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평단사업의 구체적인 계획과 내용을 e메일로 질의했다. 하지만 8월 2~3일 10차례가 넘는 통화 시도에도 홍보실 측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평단사업이 예정된 다른 대학들은 큰 논란 없이 사업을 추진하는 모양새다. 명지대 관계자는 “사업 신청 전 학생과 교수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인하대 관계자는 “기존 ‘융합기술경영학부’ 재직자 특별전형을 운영하고 있기에 이번 사업과 관련해 학내 반발은 없었다”고 말했다. 동국대 총학생회는 7월 31일 페이스북 공식 계정을 통해 “평생교육 단과대학은 ‘학위장사’와 대학 기업화의 문제점이 있지만 정원 축소나 폐과 등을 통한 대규모 구조조정이 예고되는 사업은 아니다”라며 “이를 통한 국고 지원이 대학 교육과 환경 개선 측면에서 기존 구성원들에게 이로울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다만 8월 3일 “평단사업 추진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 과정이 없었으므로 5일 기획처와 간담회를 갖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화여대 외 9개 대학 구성원들도 평단사업을 둘러싸고 일정 부분 갈등하고 있다. 모 대학 D교수는 “교수들은 평생교육 단과대학에 서로 가기 싫어하는 눈치다. 새로운 단과대학에 가면 ‘수준 낮은 교수로 낙인찍힐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라며 “머지않아 그곳에 배치되지 않으려는 교수들 간 밥그릇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다른 모 대학 재학생 E씨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학생들을 ‘학부 동문’으로 인식하긴 어려울 것 같다. 치열한 입시 경쟁 없이 입학한 학생들에게 이질감을 느낄 듯하다”고 우려했다.

    결국 아무도 모르고, 세부 내용도 정해지지 않은 평단사업은 수입원이 필요한 대학과 교육부의 ‘밀실행정’이란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기획처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교육부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30억 원으로 평생교육 단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은 대학이 등록금을 꾸준히 걷을 수 있는 장사다. 수입이 궁한 대학 측에서는 ‘재정 지원’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거부하기 어렵다”며 “교육부는 이해할 수 없고 실체도 없는 사업을 무리하게 강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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