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0

2016.08.01

정치

파격 발탁 이면에 담긴 대통령의 인사 코드

정윤회, 김기춘, 우병우의 공통분모…맹목적 충성심+고독한 늑대형+진돗개의 집요함

  • 이종훈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6-08-05 16: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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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은 우병우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경질할까. 요즘 세간의 최고 관심사다. 당연히 우 수석의 전격적 발탁과 중용 배경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우 수석은 검사장 승진에 두 차례나 탈락했다. 이후 검찰을 떠나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런데 1년 만에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됐다. 누가 추천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이런 와중에 재미동포신문 ‘선데이저널’의 보도가 눈길을 끈다. 2014년 5월 우 수석의 민정비서관 임명 당시 기사다. ‘우 변호사를 민정비서관 자리에 밀었던 인사가 정윤회 씨라는 말도 들린다. 우씨의 장인은 수도권 K골프장의 오너로 몇 년 전 사망했지만, 정씨와 친밀한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우 변호사의 임명에는 이런 인연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히 확인되지 않은 정윤회 추천설이다.

    우 수석이 민정비서관 임명 직후 처리해야 했던 최대 현안은 바로 정윤회 감찰문건 유출 파동이었다. 이 파동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풍비박산 난 상태에서 민정비서관으로 들어간 그는 이를 잘 정리해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2015년 1월 파격적으로 민정수석으로 발탁됐다. 청와대에 입성한 지 8개월 만의 일이다. 당연히 검찰과 정치권은 충격에 빠졌다.

    민정비서관 임명 이후 그가 민정수석 보고를 생략한 채 곧바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에게 직보한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우 수석은 ‘리틀 김기춘’이라 불리며 청와대 핵심 실세, 이른바 ‘문고리 3인방’급으로 급성장했다. 이런 이유로 우 수석은 ‘김기춘 작품’이라는 말도 들린다. 발탁은 정윤회, 중용은 김기춘으로 정리되지만 어디까지나 확인 안 된 가설일 뿐이다.

    누군가 추천했다 해도 역량 검증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김기춘 전 실장이 우병우 비서관에게 직보하라고 한 것은 아닐까 가정해볼 수 있다. 김 전 실장이 우 수석을 청와대 근무 전부터 알고 지냈다는 정황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확실한 사람이 추천하지 않고서야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김 전 실장이 우 비서관에게 덜컥 직보를 허락했을 리 없다. 역량 검증을 거쳐 합격 판정을 내린 결과가 바로 민정수석 발탁이 아니겠느냐는 추론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우 수석은 김 전 실장의 대체이자 정윤회 씨의 대체 인물이라는 추정도 해볼 수 있다. 그러면 우 수석에 대한 박 대통령의 전폭적 신임이 설명되고, 민정비서관 임명 8개월 만에 민정수석이 되는 기적도 이해가 된다.

    박 대통령의 파격 발탁은 우 수석 전에도 있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윤창중 전 대변인 발탁이 그러했고,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 발탁도 그러했다. 너무 파격적이어서 혹시나 특별한 것을 기대했지만, 역시나 실망으로 끝나고 만 인사다. 여기에서 우리는 박 대통령의 파격 발탁 이면의 인사 코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가장 오랫동안 신임한 정윤회, 김기춘, 우병우의 공통분모에 주목해야 한다. 그 공통분모는 첫째 맹목적 충성심, 둘째 고독한 늑대형, 셋째 진돗개 같은 집요함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배 째라는 놈은 진짜 째준다’

    흥미로운 점은 박 대통령 역시 그런 인자를 가졌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를 향한 충성심은 거의 맹목적일 정도다. 적극적으로 사람을 만나기보다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즐긴다. 한 번 아니면 끝까지 아닌 집요함 역시 그동안 선거과정에서 충분히 보여줬다. 박 대통령은 실제로 진돗개를 좋아한다. 정윤회 감찰문건 유출 파동 당시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의 원수라며 공무원들이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처럼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자신의 분신, 곧 아바타를 원하는 것이라 하겠다.

    앞서 세 가지 요건만 충족되면 나머지는 무시하고 넘어간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나머지는 깃털, 그러니까 지엽적 문제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생각이 문제일 수 있다.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맹목적 충성심을 보이는 사람보다 직언도 불사하는 사람, 다른 사람과 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고독한 늑대형보다 다른 사람과 잘 어울려 대인관계가 원만한 사람,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집요한 사람보다 선선히 양보도 하고 타협도 잘하는 사람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는 상식 말이다.

    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 계속 불통 논란에 시달렸다. 대통령 자신도 소통 지향적이지 못했지만 참모들 역시 비슷한 언행을 보였기 때문이다. 참모 중에서도 특히 핵심 참모들이 더 그러했다. 권력 핵심을 구성하는 인물들이 그러하면 정권 자체도 그런 분위기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당연히 국정운영 방식도 일방통행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자신과 유사한 성격의 인물을 측근으로 선호하는 근본 이유는 자기애가 강한 탓이라고 본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만한 사람은 없다는 확신에 찬 자기애 말이다. 자기애도 적당하면 자긍심으로 작용해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나 과도하면 주변에 상처를 준다. 국가 지도자가 그러하면 온 국민이 상처를 받는다.

    물론 이런 자기애는 비단 박 대통령만의 문제는 아니다. 과거 대통령들 역시 정도 차이는 있지만 그런 면모를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성공한 정치인 또는 기업 최고경영자(CEO) 중에도 그런 면모를 보이는 사람이 적잖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유독 강한 편인 것은 분명하다.

    우 수석은 이제 그 존재만으로도 온 국민에게 상처를 줄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검찰 내에서도 그가 남긴 상처가 적잖아 적이 많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야당,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담당해 친노(친노무현) 세력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긴 그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을 정도다.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우 수석은 검사 시절 진돗개처럼 일했다. 별명도 독종이었다. 2008년 한국교직원공제회 수사 당시 그가 남긴 말이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난 배 째라는 놈은 진짜 째준다.’ 김기춘사단의 구호가 ‘우리가 남이가’라면, 우병우사단의 구호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그 사단이 지금 대한민국 사정라인을 장악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그래서 우 수석을 절대 버릴 수 없는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이 우병우라인을 통해 이루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 국민행복, 4대개혁, 제2 한강의 기적, 임기 말 레임덕 방지, 보수정권 재창출…. 그 무엇이든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여 결과를 만들어냈던 개발독재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수단과 방법도 가려가며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시하는 것으로 보이는 세 가지 공통분모인 ①맹목적 충성심
    ②고독한 늑대형 ③진돗개 같은 집요함이 부족한 사람에게 보이는 태도에서도 우리는 박 대통령의 인사 패턴을 읽을 수 있다. 버릴 때는 가차 없다는 점이다. 눈 밖에 나면 정리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후임자도 내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외 출장 중 외교전문으로 교체 사실을 통보받았다.



    대통령 인사 실패 부담은 국민 몫

    물론 외부적 비난 여론 때문에 불가피하게 그만두게 해야 할 경우는 다르다. 이때는 지나칠 정도로 시간을 끈다. 그 나름 배려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배신한 자를 버릴 때는 바로 내치고, 의리를 지킨 자를 버릴 때는 최대한 뜸을 들일 대로 들이다 후임 인사를 단행하다 보니, 실기하는 것은 물론 인사의 안정성과 예측성이 떨어지는 일이 불가피하다. 김기춘 전 실장을 경질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우 수석 발탁과 중용 사례를 중심으로 박 대통령의 인사에 담긴 코드와 패턴을 분석해봤다. 물론 이런 코드와 패턴은 우 수석을 넘어 박 대통령 인사 전반에 깊게 스며들어 있다. 과거 정부에서도 코드 논란과 낙하산 논란은 늘 있었다. 하지만 낙하산도 낙하산 나름이다. 낙하산을 내려 보내더라도 전문성을 먼저 따지는 것이 역대 정부에서는 일종의 관행이었다. 해당 분야 전문가 가운데 우리 편을 골라 보냈다는 얘기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이런 것에는 관심도 두지 않는다. 앞서의 3가지 인사 코드에만 맞는다면 전문성조차 무시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부담을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심적 상처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물적으로도 상처가 깊게 남는다는 것이다. 현 정부 최악의 낙하산 인사가 된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장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직 퇴진 사태가 대표적이다.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의 헛발질, 더 나아가 비리와 부패는 이제 더는 뉴스가 아닐 정도다. 불량 아바타 경보령이라도 내려야 할 지경이다.

    인사는 만사다. 권력도 결국 사람이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수많은 자신의 분신을 정부 곳곳에, 또 전국 곳곳에 까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들이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국정은 본래 박 대통령 자신이 꿈꾼 것하고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 이상과 현실의 괴리도 결국 박 대통령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특별하게 가는 것이 어렵다면 평범하게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사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것이 유난히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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