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2

2001.07.12

시대의 거인들, 유쾌한 뒷모습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5-01-06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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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 거인들, 유쾌한 뒷모습
    시대의 거인들, 유쾌한 뒷모습

    붉은 바탕 위에 검정색 이미지의 카를 마르크스. 은박을 입혀 번쩍거리는 제목 ‘마르크스 평전’만 아니라면 영락없이 ‘체 게바라 평전’(실천문학사 펴냄)이다. 지난해 3월 출간한 ‘체 게바라 평전’은 지금까지 6만 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도톰하면서도 한 손에 쥐어지는 붉은색 표지의 이 평전을 들고 다니는 게 멋스러운 일로 여겨졌고 그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티셔츠도 함께 유행했다(포스터·티셔츠의 유행 다음에 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프랜시스 윈의 ‘마르크스 평전’에서 우리는 게바라 열풍을 이어가려는 출판사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넓은 이마에 머리카락과 턱수염이 새까맣고 검은 눈이 반짝거리는, 약간 땅딸막한 남자’(마르크스)가 ‘베레모를 쓴 제임스 딘’(게바라)의 인기를 능가하기는 어렵겠지만, 게바라에 이어 마르크스 평전도 꽤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갈기머리를 늘어뜨린 채 어딘가를 응시하는 게바라와 조금 낮은 곳에 머물긴 했지만 강렬한 마르크스의 눈빛은 닮은꼴이다. 돈이 된다면 사회주의와 혁명까지 팔아먹는 놀라운 자본주의의 위력에 내둘리지 않더라도, 열정 없는 시대를 사는 사람은 기꺼이 그 눈빛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두 평전은 재미있다. 의사, 혁명가, 게릴라 전술가, 쿠바 국립은행 총재, 재무장관, 외교관, 독서광에 뛰어난 저술가 등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온 체의 인생은 그 자체가 소설이지만, 이 책을 쓰기 위해 10여 년간 체의 흔적을 따라다닌 장 코르미에의 노고 또한 치하 받을 만하다. 그는 체에 대해 남겨진 모든 자료를 섭렵했고, 체의 아버지를 비롯해 체가 생전에 관계한 수많은 사람과 인터뷰해 기록에도 없는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들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시대의 거인들, 유쾌한 뒷모습
    프랜시스 윈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마르크스 평전’을 완성했다. 그러나 두 평전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코르미에가 체를 향한 애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새로운 신을 창조했다면, 윈은 마르크스의 위대함 뒤에 가려진 약점까지 솔직하게 드러내며 신을 지상으로 끌어냈다. 코르미에는 평전을 쓰면서 체의 ‘온화한 인간성’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르트르가 말한 ‘그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으로서 체를 완성한 것이었다. 책을 펼치면 부드러운 눈빛으로 체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정말 가슴에 불을 지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윈의 평전에서 마르크스는 진지한 철학자였지만 술과 담배와 농담을 좋아하는 낙천가였고, 아내와 자식을 끔찍이 사랑했지만 생활인으로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가장의 면모를 감추지 않았다. 심지어 하녀 헬레네 데무트를 건드려 아들 프레데리크를 낳았는데 온 가족이 얼마나 철저하게 이 사실을 은폐했는지 1962년에 와서야 이 문제가 공개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마르크스가 파리로 와서 ‘독일-프랑스연보’를 발행할 때 필자로 참여한 바쿠닌은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내가 감상적인 관념론자라고 했는데 그의 말이 옳다. 나는 그가 허영심 많고, 의리 없고, 교활하다고 했는데, 내 말도 맞다.” 이것이 전 세계 인구의 반을 마르크스주의자로 만든, ‘신’이나 다름 없는 한 남자의 이면이다.

    이 책의 서평 가운데 “역사 유물론의 창시자를 사소한 존재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신화적 존재가 아닌 인간으로 그려내 매우 유쾌한 평전”이라는 언급이 있는데 우리는 이 ‘유쾌한’에 주목해야 한다. 천재적 철학자이며 역사가, 경제학자, 언어학자, 문학비평가요 혁명가였던 사람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에 접하는 일은 유쾌하다. 저자 윈은 마르크스의 작품에 담긴 정신을 역설·풍자·모순 세 단어로 요약하고, 이것이 마르크스의 삶을 구성하는 개구쟁이 삼총사라 했다. 이 세 가지 개념으로 마르크스의 삶을 재구성해 보니 비로소 “신화적인 괴물이자 성자가 인간이더라”는 것이다. 시기별로 마르크스를 가리킨 이 책의 목차만 보더라도 저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아웃사이더, 귀여운 멧돼지, 풀을 먹는 왕, 다락의 쥐, 무시무시한 요귀, 메갈로사우루스, 굶주린 이리떼, 불독과 하이에나, 비루먹은 개, 광포한 코끼리, 털 깎은 고슴도치….

    ‘체 게바라 평전’은 가슴을 뜨겁게 만들고, ‘마르크스 평전’은 머리를 차갑게 한다. 냉온탕을 오가는 두 평전을 끼고 지루한 장마를 견디는 것도 방법이리라.

    ㆍ 마르크스 평전/ 프랜시스 윈 지음/ 정영목 옮김/ 푸른숲 펴냄/ 588쪽/ 2만원

    ㆍ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실천문학사 펴냄/ 668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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