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2

2001.07.12

“사랑은 운명인가, 취향인가”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입력2005-01-06 14: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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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운명인가, 취향인가”
    넌 내 취향이 아냐”라는 말로 이별을 고하는 연인이 있다면 참으로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취향’이라는 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다. ‘취향’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사물에 대해 사람의 흥미나 관심이 쏠리는 방향이나 경향’이라 풀이했는데, 사람은 모두 각자의 취향에 따라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까지 무수한 선택들을 한다. 또한 자신의 취향에 맞는 누군가를 선택해 사랑에 빠지고, 취향이 달라 헤어지기도 한다.

    ‘사랑은 운명’이라 굳게 믿는 사람도 많겠지만, 어쩌면 사랑은 자신도 모르게 작동하는 취향의 선택에 의한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소리내지 않는 그녀의 눈웃음에 이끌리고 또 누군가는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대는 그녀의 활달한 웃음소리에 이끌리는 것처럼 우리는 취향에 따라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미워한다.

    사랑이 재미있는 건 이런 개인의 취향에 갑작스런 변화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그(그녀)의 취향을 좇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남자주인공 카스텔라도 그랬다. 아내한테 구박받고 부하직원에게 무시당하며 오로지 먹는 것으로 욕구 불만을 해소하던 중소기업 사장 카스텔라는 어느 날 지루한 연극을 보다가 주연 배우인 클라라를 보고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알고 보니 그녀는 자신에게 영어를 가르칠 개인교사였고, 기꺼이(?) 제자가 된 카스텔라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연극도 보고 그림도 보러 다니며 그녀의 예술가 친구들과 어울리려 하지만 비웃음을 살 뿐이다.

    “사랑은 운명인가, 취향인가”
    사랑을 얻기 위한 그의 노력이 안쓰럽지만 남자는 그 가운데서 자기도 모르던 자신의 취향을 발견한다. 콧수염을 깎고, 서툰 영어실력으로 영시를 읊고, 공장 외벽을 장식할 벽화를 주문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사서 집안에 걸어두고는 흐뭇해하는 카스텔라. 그러나 클라라는 끝내 무덤덤하기만 하고 아내는 집안 전체 인테리어와 맞지 않는다며 그림을 떼어버린다. 그리고 영화에는 또 다른 사람이 등장한다.

    첫눈에 반했지만 서로의 취향을 받아들이지 못해 이별하는 마니와 프랑크, 여자 친구를 미국에 보내놓고 연락이 오지 않아도 순진하게 여자를 믿었다가 그만 채이고 마는 브루노, 다른 사람의 취향을 거부하며 사람과 벽을 쌓고 사는 카스텔라의 부인 안젤리크. 영화는 저마다 취향이 같지 않은 다른 사람의 어울림과 관계맺기를 통해 ‘사람’과 ‘사랑’에 대한 통찰을 시도한다.



    눈길을 잡아 끄는 스타는 없지만, 인물 하나하나가 우리 주위에 있는 누군가처럼 친밀함이 느껴지고 정겹다.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고, 냉철하지만 따뜻한 눈길을 느끼는 이 독특한 프랑스 코미디는 배우 겸 작가 아네스 자우이의 감독 데뷔작. 프랑스에서 코미디 연기로 사랑을 받아온 그녀는 여주인공 클라라 역까지 맡아 호연했다. 남편이자 공동 각본가로 활동해 온 장 피에르 바크리와 함께 시나리오를 썼다니, 영화 속 카스텔라 부부와는 달리 취향이 잘 맞는 부부인가 보다. 요란벅적한 여름영화들 속에서 조용하고 지적인 영화를 찾는 사람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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