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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올림픽 유치 사활 걸었다

경기 회복·깨끗한 베이징 건설 위한 유일한 돌파구 … 가건물 철거, 녹화사업 등 안간힘

  • < 강현구 / 베이징 통신원 > hana@bj163.com

중국, 올림픽 유치 사활 걸었다

중국, 올림픽 유치 사활 걸었다
올림픽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 정치적인 올림픽을 어떻게 더욱 효과적으로 이용하는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현재 2008년 하계올림픽 유치경쟁은 토론토·파리·베이징 3파전으로 좁혀졌고 오는 7월13일 모스크바에서 열릴 IOC총회에서 개최도시를 결정한다. 일각에서는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없는 한 베이징이 유력하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러나 중국인에게, 적어도 베이징인들에게 올림픽은 정치적인 이슈 외에 그들의 자존심과 직결된 문제다. 2000년 하계올림픽 유치경쟁에서 호주에 단 두 표 차로 분패했을 때 베이징인들이 느낀 절망감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당시 패배 뒤에는 천안문 사태라는 정치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그렇다면 그날의 절망감이 채 해소되지 않은 이때 베이징시가 다시 2008년 하계올림픽 유치에 총력을 쏟는 까닭은 무엇일까. 올림픽이 갖는 정치적·경제적 효과를 감안한다 해도 지금의 올림픽 유치를 위한 베이징시의 행보는 분명 지나친 감이 있다.

평가단 방문 땐 공장가동 중지

지난 2월 국제올림픽위원회 평가단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베이징 시 당국은 공장 가동을 중지시켰다. 뿐만 아니라 환경위해업체들을 아예 베이징시에서 나가도록 명령했다. 공장뿐 아니라 일반도로와 주택가를 가리지 않고 가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녹화사업을 진행중이다.

이처럼 베이징시가 올림픽 유치에 매달리는 진짜 이유를 알려면 중국이 2000년 하계올림픽 유치신청을 내던 1998년 상황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98년은 중국경제에서 매우 특별한 해였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중국인에게는 악몽으로 기억될 만한 해였다. 당시 중국은 9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해 온 거시조절정책의 핵심인 국유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의 여파로 시아깡(下崗)이라는 정리해고를 전국적으로 시행하면서 인민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아울러 거시조절정책의 일환으로 주택·교육·의료에 대한 공공정책이 민간부담으로 전환하면서 불만은 더욱 거세졌다. 더구나 중국의 경제성장을 굳건히 받쳐주던 수출전선마저 동남아 경제위기의 유탄을 맞아 휘청거렸다. 96년을 조금 과장해 표현하면 “동북에는 한 집 건너 실업자가 발생해 이들의 소요로 인해 시청의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다 깨졌을 정도고, 베이징에는 때아닌 철거바람이 불어 도시 소시민이 하루아침에 생활의 터전을 날리고, 남쪽에는 서 있는 공장이 수두룩한” 지독한 위기상황이었다. 한국이 IMF위기를 겪고 있을 때 중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 올림픽 유치 사활 걸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로서는 사실상 이렇다 할 대책이 없었다. 가장 손쉬운 해결책인 인민폐 절하도 국내외 사정으로 여의치 않았고, 실업대책이라야 국내 건설경기 활성화 외에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중국정부는 거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전면적인 내수시장 진작에 나섰다. 저축률을 줄이기 위해 이자율을 낮추고, 이자세 도입과 같은 거시정책수단에서부터 이미 시행에 들어간 공공주택·공공교육·공공의료의 전면적인 민간부담 또는 사회보험화 정책을, 내수 진작이라는 하나의 원칙 아래 무자비할 정도로 밀어붙였다.

이러한 정책의 선봉은 무엇보다도 공공주택제도 폐지였다. 단웨이(單位)라는 공공주택(각 직장에서 무료로 제공하던 주택)을 개인 구매로 전환하는 정책은 정부의 대대적인 국책 건설사업과 맞물려 중국 전역에 부동산 붐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로서는 이러한 붐을 계속 이끌어갈 보다 구조적인 장치가 필요했다. 일시적 붐이 아닌 보다 안정적 개발 열기를 유도하기 위해 정부는 두 가지 전략을 구사했다. 비교적 발달이 더딘 내륙지방에서는 서부대개발정책을, 동부 해안지역에는 올림픽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는 전략이다.

어찌보면 당시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올림픽 유치에 나선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매우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현재 베이징시에서 반복되는 철거와 녹화사업을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즉 베이징시가 진행중인 도시개발정책은 단순 내수 진작용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베이징시의 발전전략에 대해서는 천시통(陳希同) 전 시장과 지아칭린(賈慶林, 베이징시 당서기) 현 시장이 매우 대조적인 입장을 취했다. 참고로 천시통 전 시장이 95년 부동산 관련 부정부패 혐의로 체포된 직후 상무부시장이던 왕바오샨(王寶森)이 권총자살을 해 중국인들을 경악케 한 사건이 있었다. 그 후 천시통 전 시장도 16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엄청난 죄를 확인했지만 의외로 천시통 시장에 대한 베이징 시민, 특히 서민의 반응은 우호적이다.

이유는 천시통의 대 베이징 개발정책과 관련이 있다. 천시통의 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얼 하든지 먹고만 살아라”다. 자신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뢰를 했듯, 일반 시민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먹고 살라는 정책이다. 땅이 있으면 가건물을 짓고, 그게 없으면 길바닥에서라도 장사해서 먹고 살아가라는 극히 실용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다. 실제로 이 시기 베이징에는 우후죽순으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었고 일반인들은 물론 공무원·교수들까지 유행처럼 부업전선에 나섰다.

그러나 천시통이 실각한 뒤 96년 정권을 장악한 지아칭린의 생각은 달랐다. 천시통이 ‘개발’시기를 대표한다면, 지아칭린은 이제 먹고 살 만큼 되었으니 우아하게 살자는 주의였다. 먼저 그가 한 일은 베이징개발계획을 다시 세우는 것이었다. 우후죽순으로 생긴 가건물 위주의 상권이 하루아침에 철거라는 철퇴를 맞았다.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개혁·개방을 상징한 농마오스창(農貿市場)들도 마찬가지였다. 바뀐 시 당국은 시장들이 정식건물 속으로 들어가도록 독려했다.

물론 이러한 정책을 쉽게 실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생존권을 위협받은 인민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저항으로 시 당국의 일방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베이징, 새로운 올림픽’(新北京新奧運)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올림픽 유치는 지아칭린에게 분명한 명분을 주었다. 결국 지아칭린은 올림픽 유치를 무기삼아 보다 깨끗한 베이징 건설에 매진하고자 했다.

중요한 것은 베이징 인민의 반응이다. 초기 소극적으로나마 저항하던 서민의 목소리는 이제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대신 초고속 성장의 결과로 많아진 중산층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들은 물론 깨끗한 베이징, 자랑스러운 베이징을 원한다. 결국 올림픽 유치를 통해 내수 진작을 노린 중앙정부의 의도와 깨끗한 베이징 건설이라는 지아칭린의 정치적 의도는 모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올림픽 유치에 실패한다면, 자존심이 상한 중국인의 충격은 크겠지만 그렇다고 이미 실시중인 정책적 변화의 물줄기를 되돌리지는 못할 것이다.

문제는 오히려 이 과정에서 양으로 음으로 부활하고 있는 중국인의 대국주의다. 개발 시기의 궁핍함에서 벗어나 번영의 길목에 서 있는 많은 중국인에게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한 시각 변화들이 자신감을 넘어 그 이상으로 나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중국 정치인들은 그런 상황을 반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간동아 2001.07.12 292호 (p62~63)

< 강현구 / 베이징 통신원 > hana@bj163.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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